선의가 주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에서 대부분의 경우 그 선의는 무신경함이나 아집이지만, 어쩌다 정말로 상대를 아껴서, 그리고 상대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 자신이 되고자 보인 선의, 그 배려가 묻어나는 이야기를 보면 어찌 그리 감동적이고 절절할 수 있을까 싶음. 리즈와 파랑새는 그런 이야기임.
1.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인데, 저는 리즈와 파랑새에서 노조미를 열등감에 매몰된 위선자라고 보는 관점에 동의하기 힘들어요.
노조미의 바람은 미조레를 자신에게 의존적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미조레와 동등하게 올라서고 싶었던 거라고 봅니다. 본인도 직접 그렇게 말하기도 했고요.
저는 "이런 대단하고 나는 평생 쫓아가지 못할 미조레가 나한테 의존하도록 두고 싶어!" 가 아니라, "미조레의 곁에 있기에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겠어!" 가 노조미의 행동원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미조레의 세계는 점점 노조미를 향한 애정으로 가득해져갔고, 노조미는 그 세계를 지탱하기 위해서 더욱 강하고 사교적이고 노력하는 자신을 유지할 필요가 생겼던 거고... 그것은 노조미 나름대로 자신에게 애정을 지닌 미조레에게 마음을 되돌려주려는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미조레의 입장에서는 노조미의 겉으로는 화려한 면모들이, '노조미에겐 나 말고도 넓은 세계가 있다'로 받아들여진 거죠. 그렇기에 미조레는 그런 노조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을 했을 겁니다. 미조레가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않은 것은, '노조미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노조미가 플루트에만 매달리게 만들어서 부담을 가지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양쪽이 나타난 거라고 봐요.
서로는 서로에게 증명할 게 필요한 동시에 그것을 일정 정도는 (어중간하게 알았다는 게 오해를 부른 원인이지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엇갈린 배려를 한 거라고 생각해요.
좋아해 허그를 할 때 미조레는 노조미의 좋은 점을 하나하나 열거하는데 노조미는 너의 오보에를 좋아한다는 단 한마디만 한 건, 결국 서로가 서로의 어떤 부분만을 보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무엇을 담아두었는지에 대한 고해라고 봅니다. 미조레는 자신의 '애정으로 이루어진 세계' 속 노조미를 사랑했는데 노조미는 그런 미조레의 세계를 지탱하기 위해 속을 말하지 못하게 되었고, 노조미는 미조레의 앞선 부분을 좇아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 노력했지만 좌절을 맞이하자 서로 멀어질 것을 두려워해 덩달아 미조레를 불안하게 만들어버렸고. 그것에 대해서 털어놓을 수 있게 된 것이 전환점이 되지 않았을까 해요.
2.
어쩌면 그 생각은 노조미에게서 '내가 본 것'이 아니라 '내가 바란 것'이 아닐까?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이론적으론 일관적이고 이상적일 수 있어도, 그것만은 아니니까요. 긍정적인 향상심만으로 누군가와 누군가가 좋아하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온다, 그것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죠.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잘못된 거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반드시 '이 사람이 다른 걸 다 제끼고 나만 봐줬으면 해'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이 사람이 어떻게든 나와 연결되어 있어야만 해' 라고는 생각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노조미는 미조레에게서 자신이 제일 먼저 주목한 부분인 오보에 - 취주악에서는 비록 동등하게 설 수 없더라도, 다른 부분에서라도 미조레가 좋아하는 노조미로 있으려고 노력했겠죠. 어쩌면 자신이 미조레에게 일정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걸 자각하면서, 거기에 기대를 걸게 되었을지도 모르죠. 그게 기뻤을 거예요. 굳이 우월감이나 그런 게 아니더라도, 관계를 조금이라도 장악할 수 있게 되는 데서 느끼는 편안함. 그게 있으니까요. 굳이 그걸 나쁘게 해석하면 속박이라고 할 수야 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가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제 말에 귀기울여주고 저를 의지해주는 건 기쁜 일이잖아요?
노조미는 끝내 자신이 리즈의 입장임을 인정하는데, 그걸 받아들였다는 건 그래도 둘 사이의 관계가 발전적이고 서로를 덜 속박하는 방향으로 풀리기를 바란다는 거고, 자신도 궁극적으론 그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게 되고 싶다는 바람이겠죠.
그렇다 하더라도 미조레와 동등하게 올라서고 싶다는 마음 자체는 진심이자 제1동기로 쭉 남아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겪은 좌절이 약간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낸 거고.
그 모든 것에, 이기적인 마음도 발전적인 향상심도 전부 합쳐서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여담으로, 이기심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그 자체론 나쁘지 않다 생각해요.
2.5.
"속박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사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나에게 등돌린 세계와 맞닿아버린다고 생각하면 무서워요. 하지만 그보다 더 싫은 건 나한테 당신을 속박할 수 있는 힘이 조금이라도 생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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