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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사탕통/코튼 캔디

리즈와 파랑새 2회차 감상

by 료밍 2018. 10. 15.

리즈와 파랑새 2회차에서 제일 신경쓰였건 것.

동화 속 리즈는 쭉 자신을 잘 따르는 동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며 빵을 사러 마을로 가는 등 자기 나름의 교류를 하고 있다. 그런데 왜 노조미는 리즈를 '외톨이'라고 불렀는가?

이 부분은 리즈를 미조레라고 보더라도, 노조미로 보더라도 굉장히 신경쓰이는 부분.


노조미의 사교적인 면은 미조레 앞에서 이상적인 자신을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기인한다. 그것이 노조미의 모든 관계망을 기만으로 만들지야 않겠지만, 일단 최종적 우선순위는 미조레에게 있을 것이다. 노조미의 사회적 관계망은 '자신의 세계'가 아니라 '미조레가 사랑하는 세계'의 원본으로 존재할 필요가 있어서 구축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단서가 1회차보다 잘 보이기도 했고... 그건 그렇고, 미조레를 완전히 '외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작중 연출상으론 미조레는 외톨이라는 단어가 걸맞을 사람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의외로 미조레는 교사의 신임과 후배의 동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등 아주 동떨어진 존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조레는 자신에겐 노조미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리즈와 파랑새를 '외톨이의 이야기'라고 미조레에게 먼저 가르쳐준 것은 노조미. 미조레는 그 말을 듣고 외톨이라는 단어를 따라한다. 노조미에게는 미조레가 '외톨이'일 필요가 있었을까? 미조레 역시도 그 '외톨이'라는 입장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사람에 항상 둘러싸여 있다고 해서 꼭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설령 가진 것이 많더라도 원할 수는 있고, 진짜로 원하는 것만 얻을 수 없을 수도 있겠지. 그것이 오만이나 자격지심이라고 보는 것 역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 자체는 있을 수 있는 인간 심리다. 그리고 소거법은 가능성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다.


결국 리즈를 '외톨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리고 그 '외톨이'라는 개념은 두 사람만의 세계에 맞춰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둘은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아' 외톨이가 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외면한' 외톨이인 것이다. 극중극으로 나타나는 동화 속 이야기에서도, 파랑새가 인간이 되어 리즈 곁에 온 이후로는 다른 동물들이나 마을 사람과의 교류 묘사는 완전히 생략된다. 서로가 리즈의 입장이라는 것은, 결국 두 사람 다 새장 속에 서로를 가두고 거기에 안주하고 있다는 소리. 두 사람 외에는 불순물이 될 수밖에 없도록 잘 짜여진 아름다운 새장이다. 아름다운 것만 미조레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여과기로 기능하는 노조미와, 그 세계로 아름다움의 기준을 맞춰 새장을 유지보수하는 미조레. 영화의 절반은 미조레의 시점에서 보여주고, 노조미가 미조레의 '사랑으로 가득 찬' 세계를 지탱하려고 했음을 생각하면, 관객이 보는 것은 아름답게 여과된 세상이라고 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반면 작중 타인의 눈에는 그것이 굉장히 답답하게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TVA의 묘사에서는 그런 면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리즈와 파랑새에서 제시한 가능성까지 부정적으로 볼 생각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게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서로를 사로잡고 있던 두 사람의 마음이, '새장 속 세상보다 소중한 것'을 서로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승화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근본적으로 이 둘이 서로의 관계에서 행하는 것은 '엇갈린 배려'임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노조미는 해피엔딩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미조레의 앞에서 동화를 '규정'해버리는 순간에도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를 바랐다. 그 해피엔딩을 위해서, 미조레는 그 '사랑으로 가득한' 세계를 놓아주고서 도약했고, 노조미는 '상대가 사랑할 수 있는 나'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나'로서 미조레를 응원하기로 했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부분을 꼽자면, 동화가 해피엔딩이라는 근거로 파랑새는 원하면 다시 돌아올 수 있지 않냐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정말로 서로를 소중히 여긴다면 가지 말라는 한마디보다 언제든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신뢰의 무게가 더 클 것이고, 그들은 그런 관계로 이행해나갈 것이라고 기대한다.



PS. 유코는 정말 좋은 사람.

PS2. 엔딩 크레딧 보고 요로이...가 아니라 켄자키의 성우가 나나시스에서 모모카를 맡은 이자와 시오리씨인 줄 알고 들떴었는데, 성이 달랐다... 다른 사람이었다.

PS3. 이젠 오보에와 플루트 사진이나 복어 사진 같이 아무 맥락 없는 사물이나 동물의 사진만 봐도 울 수 있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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