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18년 7월 15일 개최된 제3회 어나더 스테이지에서 발매한 슈미카 소설 회지 'Candy Drawers' 수록 단편의 웹공개 버전입니다.
Epilogue - 사랑스러운 미지
"잘 자래이, 스승님아."
오늘은 조금 무리했었던 너는 늘어지면서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잠에 빠진다. 얼마 안 가 너의 의식은 꿈 너머로 빠져들고, 의식의 겉표면인 실재는 무방비를 갖춘다. 그것은 너를 잘 재우기 위해 잠자리를 펴 주거나 이불을 덮어주는 것 이외에는 내가 네게 손대서는 안 된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네 머리만을 쓰다듬고 벌써부터 잠버릇이 드러나 이불을 차는 네 어깨까지 솜이불을 끌어올려 주었다. 곤히 자는 너를 보면 마음은 편하지만 때론 야속하기도 했다. 언제부터 내가 더 다급해지고 내가 더 애가 타게 되었을까.
너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이제는 더 이상 부정문을 빌리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너를 곁에 두고 싶었기에 네 곁에 있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네게 손대는 법을 배웠고 손대지 않는 법을 배웠다. 나를 항상 스승이라 칭하던 너에게서 외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단언할 수 있다. 색색 숨소리 내며 오르내리는 이불이 네가 피가 흐르는 따뜻한 인간임을 증명한다. 이제는, 아니 애초부터 네게는 무기물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살아서 내게 네 뜻을 얼마든지 표현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너를 알아가는 것을 허가하되. 함부로 침식하지 못하게 두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네가 곤히 잠든 순간에 부득이하게 너를 원하게 되는 나를 좀처럼 놔둘 수가 없었다. 그 때의 나는 너를 이런 식으로 갈구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가만히 뒤에서 너를 끌어안아 본다. 오르내리는 가슴이 옷 하나를 두고서 생명을 느끼게 한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네가 꾸는 꿈. 지금은 말하지 않는 네가 품고 있을 수많은 세상들. 깨어나면 그것을 내게 알려줄 수 있겠지. 이제는 터무니없다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너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완전히 이해한다는 그것 또한 나의 틀에 미지를 가둘 뿐이고, 그것의 본질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고 곡해다. 그렇지만 미지는 결국 이해하도록 움직이게 만든다.
너는 내가 사랑한 처음이자 유일한 미지였다.
처음으로 사랑한 인형은 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최고 걸작도 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부질없다. 나는 네가 네 뜻을 담아 내는 목소리가, 누군가를 모방하거나 내가 멋대로 재단한 기준을 따르지 않은 그 목소리와 말들이 사랑스럽다. 너는 스스로 인형이 되기를 선택했지만, 그것이 내가 바란 것이지 네가 바란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어도, 다른 것이 될 기회를 네가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와 나를 이어주는 것이 실일 필요는 없으니까.
다음에 일어나면 무슨 꿈을 꿨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그 때까지 잘 자거라.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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