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테 MoM 감상.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감상에 불과하며, 이래저래 불호표현을 상당히 많이 함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Valkyrie의 캐릭터 해석 부분에서 불호 의견을 많이 포함합니다. 열람시 주의.
니코니코동화 딜레이드 뷰잉을 통해 앙스테 MoM을 감상했다. 무대 연출이나 오리지널 곡 등은 좋은 무대였고, 발키리가 등장하는 무대화라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감상했다. 하지만 정작 담당유닛의 해석이나 묘사는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다고 느꼈다. 특히 이츠키 슈의 캐릭터 해석은 중요한 몇 가지 부분이 마음에 안 드는 방향으로 개작되었다고 봤다.
이츠키 슈라는 캐릭터를 - 특히 연무 이후의 변화를 기점으로 한다면 - 규정하는 측면은 속죄자, 그리고 꺾이지 않는 초인이라는 점이다. 무대 사고라는 큰 사건을 기점으로, 자신이 여태까지 내면의 상처로 인해 자행해왔던 과오를 잊지 않으면서,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고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며, 완벽이 아닌 초월과 성장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반성과 자기초월은 그만큼이나 중요한 키워드고, 그 와중에 자기연민이 없다는 점이 수많은 부정적인 캐릭터 특질에도 불구하고 그를 매력적으로 만들고, 또한 성장시켜나가는 원동력이다.
허나 MoM의 이츠키 슈에게는 그런 면모가 없다. 전체적으로 자신의 비극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세상이 준다고 믿는 비극에 취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반성은커녕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 바쁜 인간이 되어버렸다. 이츠키 슈는 타인에게 엄격하지만, 특히나 자신에게 엄격한 자다. 에고가 크지만 자기객관화 역시 되는 사람이다. 그런 면들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그것을 강하게 느낀 부분은 스완송 마지막의 독백 부분이었다. 원작에서는 담담히 무너지는 무대를 지켜보며 자기반성을 시작하는 부분이, 연극에서는 미련에 북받친 자기합리화성 한탄을 하는 느낌에 강해졌다. 감정과잉이었던 묘사는 오히려 원작의 비장미를 퇴색시키기까지 했다.
또한 미카에게 대하는 부분의 폭력성 강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원작에서도 마리오네트 시기의 슈는 미카에게 폭언을 서슴지 않았지만, 연극에서만큼 소리를 지르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스완송 마지막의 '실패하지 않게 하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라는 대사는, 물론 원작에서도 어느정도 자기합리화로 들릴 여지는 있으나, 여기에선 완전한 변명이고 핑계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냥 평범한 DV범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관적으로 호전적이냐면 그것조차 아니다. 그의 숙적인 에이치를 대하는 태도 역시 문제다. 원작에서 슈는 에이치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여유를 지키면서 팽팽하게 말로 쏘아붙이고, 그 와중에도 미카에게 에이치의 마수가 뻗지 않도록 신경쓰는 섬세한 면도 보였다. 그러나 MoM의 슈는 에이치가 라빗츠로 협박하자 바로 겁먹고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그만둬 줘(한스타에선 '부탁이다')' 라는 대사조차도, 원작의 여유와 미카를 향한 보호심리가 아니라 그저 애원하는 투가 되었다. 연무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부활한 제왕 이츠키 슈로서 에이치와 무대 위에서 대면하는 장면은? 악에 받쳐서 구차하게 소리지르는 느낌이 되었다.
게다가 연극을 쭉 보다보면, 에이치에게 화내는 목소리보다 미카한테 화내는 목소리나 동작이 훨씬 크다고 느꼈다. 그야말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비겁자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원작에서 슈가 학교의 아웃캐스트가 된 기인들을 당당히 벗이라고 부르며, 처음으로 약자의 입장에서 유대감을 피력하고 저항한 것을 생각하면, 이는 모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준이다.
마드모아젤의 활용방식 역시 단편적이라고 느꼈다. 너무 노골적으로 '상처받은 영혼 이츠키 슈의 상처를 핥기 위해 존재하는' 느낌이 되어버린 것이다. 원작의 마드모아젤은 슈의 서투른 상냥함의 편린으로서의 면모나, 이츠키 슈의 본인격에게 다소 비판적이기도 한 면 등 그의 내면의 자기반성을 더 확고하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한데, 그런 면이 없다. 다만 이는 무대화 러닝타임 상의 한계로서 참작은 할 수 있는 부분일까.
미카의 캐릭터성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감정이 풍부한 미카의 모습을 잘 드러내주었다. 허나 카게히라 미카라는 캐릭터의 활용 방향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작에서 발키리 부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새롭게 부활한 발키리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발키리의 미래로서의 미카의 면모가 전체적으로 누락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미카에게 점차 애정과 유대감을 느끼면서 '인형'이 아닌 '인간'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슈의 감정선 역시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연무의 무대가 끝나고 나서 나즈나와 슈의 만남 뒤에서 박수를 치다가 자신은 인형이니까 미래가 필요없다는 대사를 하는 미카의 연출은, 그야말로 남성향 로맨스물의 히로인 싸움에서 탈락한 서브히로인을 보는 듯 비참하게 그려졌다. 이 무대만 본다면 미카는 자아비대 예술가 이츠키 슈에게 착취당한, 헌신을 보답받지 못한 불쌍한 희생자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원작에서 이 대목에 슈가 집에 가면 미카를 케어해주겠다고 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철저하게 미카를 향한 슈의 감정을 지워버린 것인가 싶어 악의까지 느껴질 정도다.
그렇다면 슈와 미카의 감정선과 유대는 어디로 갔는가? 그 부분은 슈와 나즈나의 접점으로 메워졌다. MoM 오리지널 장면들은 꽤 많은 수가 이들의 장면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어울리는 길을 찾아서 갈라서고, 결별로 완성된 관계인데, 이 역시 퇴색해버리고 미련으로 메워져버린 것이다. 이는 칠석제의 내용도 다루고 라빗츠의 비중이 꽤 큰 극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결정으로 보이지만, 결별로 완성되는 관계를 예술가와 뮤즈의 엇갈림을 딛은 재결합으로 포장할 이유는 있었는가? 심지어 연무의 무대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인 2인체제 발키리로서의 부활과 유대의 포석은 뒷전이 되고, 악당 텐쇼인에게 잡힌 (소위 'Damsel in Distress' 역이 되어버린) 과거의 뮤즈 나즈나를 구출하러 찾아온 슈의 순정(?)이 메인인 마냥 연출한 것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그나마 라빗츠의 비중이 꽤 크고 라빗츠의 무대는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라빗츠 나즈나'로서의 면모가 퇴색하지 않은 건 긍정적이었다만. (개인적으로는 MoM에서 발키리를 주역으로 내세우긴 했지만 발키리 이외의 유닛들 묘사가 훨씬 좋다고 느꼈다.)
결론적으로, '각성하는 제왕 이츠키 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MoM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연극이었다. '인간적인 이츠키 슈'의 면모를 좋아한다면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조차 이 연극이 묘사하기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발키리의 유대감이 꽃피기 시작한다는 원작 연무의 의의를 완전히 퇴색시킨 점은 발키리의 팬으로서 용납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열연이나 여러가지 무대 연출들, 그리고 마지막에 직접 안무와 함께 보여진 발키리의 대표곡들 등 좋은 부분들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래저래 호불호가 갈릴 부분만 감당한다면 누군가에게는 좋은 미디어믹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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