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고요 속에서 툭, 하고 무게가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둔탁한 소리임에도, 마치 별자리에서 풀려나 길을 잃어버린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징조였다. 무의식중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요새 잠을 뒤척이기 바쁜 아이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을까. 유독 예민했던 귀가 기척을 잡아내고, 이츠키 슈는 얕은 잠에서 깨어나 동거인의 방으로 향했다. 시간을 설정해 놓았던 무드등이 꺼져 있었고, 느슨한 어둠 속 이불보의 굴곡은 사람의 부피를 포함하지 않았다. 포근한 요람에서 낙오되었음에도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아이, 카게히라 미카. 이제는 마냥 작지만은 않은 몸집을 두 팔로 안아 침대 위에 조급히 돌려놓는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옅다. 그것은 평온일까, 아니면 잠식이었을까.
따뜻하게 이불을 어깨 위로 덮어주고 나면, 아까 떨어졌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평온하게 잠자는 얼굴이 있다. 곱게 말라 샴푸 향이 나는 머리칼을 푹신한 침대 위에 흐트러뜨린 채, 눈꺼풀 속에 보석 같은 두 눈을 숨기고 잠을 취하는 천사 같은 모습. 주변 환경에, 심지어 사랑하는 이의 손길에까지도 완전히 영문 모른 채로 꿈의 세계에 몰입해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행복한 꿈일까, 아니면 악몽이었을까. 잘 자거라, 그렇게 말을 건네고 그의 침실을 떠나려고 할 때, 희미한 잠꼬대를 들은 것도 같았다.
잠결의 이야기인가, 하고 다시 발걸음을 돌이키면 미카는 아까처럼 얌전히 자고 있었다. 무리없이 자고 있다면 더 이상 걱정할 이유는 없었겠지만, 그 와중에 단 하나 드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이라도 그 아이를 놓아버리면 둘러싸인 어둠에 영영 침잠해버릴 것 같았다.
"으응, 왠지 피곤하데이……."
딱히 이르지도 않은 시간에 불러 깨운 미카는 축 처진 어깨에 둔한 움직임을 하고서 터덜터덜 방에서 나왔다. 아직 졸음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어제 그렇게 자더니… 슬슬 학교에 가야지."
잠을 꽤나 설쳤거나, 아니면 또 잘못된 자세로 자서 몸이 뻐근한 것인가, 하고 슈는 짐작했다. 하지만 어젯밤을 되짚어보면, 침대에서 떨어질 정도로 뒤척인 듯한 낌새 치고는 자신이 와도 깨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자고 있었던 것 같았다. 본래도 미카는 한 번 깊은 잠이 들면 쉽사리 깨지 않는 체질이었지만, 그런 것치고 수면 효율이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을 떠올린다. 그래도 미카는 자신처럼 특별히 밤을 새는 것도 아닌데다, 요 근래는 공연에 집중하느라 아르바이트를 무리하게 늘리지도 않았다. 가출 사건 이후로는 메인터넌스도 꾸준히 해 주려고 하고 있었지만, 꼬일 대로 꼬인 실뭉치를 단번에 풀 수 있을까. 적어도 예전처럼 피곤하지 않은 척 상태를 필사적으로 숨기지는 않는 것이 위안이었지만…….
"그래서 어제는 제대로 잤느냐?"
가볍게 세안을 마치고 나온 미카에게 아침 식사를 건네면서 슈는 물었다. 제 몫의 식사도 준비도 이미 끝낸 상태였지만, 오늘따라 느릿느릿한 미카의 움직임은 지각을 아슬아슬하게 면할까 싶었다. 그렇다고 해도 슈는 미카를 혼자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았기에 옷가지며 가방을 챙겨서 식탁 옆에 두고 기다리기로 했다. 미카와 함께 있는 시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싶어서기도 했다.
"응… 잘 모르겠데이." "상쾌할 정도로 푹 잤냐는 것이다. 기지개를 켜면 근육이 개운하다거나 말이다. 지금 상태를 봐선 별로 그렇지는 않은 것 같군?" "응아아…"
미카는 그 물음에 뜸을 들였다.
"꿈이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잘 잤는갑다?"
잠시 슈의 눈길을 피하던 미카는, 그렇게 대답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또 접시를 깨작거리며 찰나를 멍하게 지새우다가, 그는 이내 웃었다. 슈는 한숨을 쉬더니 미카의 어깨를 꾹꾹 주무르면서 그의 상태를 살폈다. 응아앗, 응아아앗 하고 소리를 내는 걸 보면 – 물론 아프다는 감각은 미카에겐 여전히 생소한 것이지만 – 목 근처가 꽤나 결린 모양이다. 슈에게서 재차 한숨이 나왔다. 역시 미카는 또 이상한 자세로 잤던 것 같았다.
"다음엔 잘 때도 정비가 필요하겠군." "으응, 스승님 멘테 해 주나? 내 걱정해주는 거제." "별로 걱정되는 건 아니란 거다."
묵은 습관이 요즘은 좀처럼 삼가고 있던 모난 말이 되어서 슈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그것에 미카는 또 배시시, 하고 갈피 모를 웃음을 짓는다.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모질게 대하는 것이 익숙하다는 그 말이었을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 익숙한 불협화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슈는 그 뒤에 또 말을 이어붙였다.
"…이렇게 말해주면 너는 편한 것이냐."
그 물음에 미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또 다시 뜸을 들이고, 다시 웃으며.
"평소의 스승님이데이."
그런 대답을 하고는, 미카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가방이며 교복 재킷을 챙겨 현관으로 쪼르르 달려가 버린다. 질문 하나하나를 머릿속에서 여과시켜버리듯이 일상을 실천하는 움직임은 자연스러우면서 부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을 부자연이라 인식하는 것은, 이제는 자라는 것들로 메워져가는 오랜 인형사의 풍경뿐이었다.
"오늘도 교실까지 바래다줄까." "응!"
그래도 그 물음에 대한 대답만큼은 진솔한 환한 미소. 미카의 진심어린 표정을 볼 수 있음은 슈의 위안이었다. 발걸음을 맞추며 집을 나서면 보이는 청량한 가을 하늘. 두 사람의 눈에 보이는 하늘색이 같다는 것은 미카의 위안이었다. 아직까지는.
자기 반이 있는 교실 복도에서 인사를 마치고 슈와 갈라지고 나면, 미카는 제일 먼저 책상에 엎드려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도 슈는 밤중에 잠을 깨었다. 발걸음은 어김없이 미카의 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특별히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의식의 저편에서 신경쓰이는, 그러나 말로 재조립하기 힘든 위기감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잠버릇이 얌전하지는 못했는지 이불이 엉망진창으로 침대 가장자리에 구겨진 채 걸려 있었다. 그런 좀 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지된 지금의 모습. 어제처럼 미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잠시 지켜보면 여전히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잠에 빠져 있었다. 자고 있을 때의 미카는 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 꿈의 세계에 제 터를 잡은 것만 같았다. 시곗바늘 소리보다 자그마한 숨소리는 진자와도 같이 안정적이고 규칙적으로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문득 이대로 계속되는 눈앞 아이의 잠이 매서운 진실을 고할 것만 같아서, 슈는 미카, 하고 가만히 이름을 부르며 그의 손을 잡아보았다.
그 때, 잠깐이지만 그 손에 약한 힘이 실리는 건 우연이었을까. 꼭 붙잡고 싶은 것처럼 슈의 손에 걸친 손가락들을 헤매듯 오므리는 그 움직임을 포착하려 하면, 다시 힘이 빠진 미카의 손은 스르륵, 하고 빠져나가 침대 이불 위로 내려앉았다. 무의식중의 행동이었나?
"카게히라?"
슈가 놀라서 다시 이름을 불러봤지만, 미카에게서의 대답은 없었다. 여전히 미카는 푹 잠든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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