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3일 개최되는 뱅드림 온리전 'Just BanG!' 드11에서 발매되는 리사유키 신간 '그대의 이름은 러브송'의 샘플입니다.
사랑노래를 절대 쓰지 않지만 실은 미완성의 습작을 숨긴 유키나와, 가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고민하는 리사의 쌍방짝사랑 이야기가 될 예정입니다. 아마도.
이벤트 스토리 'Don't leave me, Lisa!!!!'와 '언젠가 닿기를, 나의 가사'를 기반으로 합니다.
A5 소설본 / 39p / 전연령 / 3000원
개행사항은 실책의 본문과 다릅니다. 또한, 샘플의 내용과 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나토 유키나는 사랑노래를 쓰지 않는다.
유키나에게 사랑노래란 거짓으로 둘러싸인 겉멋든 포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쏟아져나오는 유행가들이 사랑을 노래하는 이유는 그 인스턴트적인 성질에서 기인한다. 통계적으로 대부분의 인구는 유성애자였고, 연과 애를 논하는 건 그런 인간이 대다수인 사회의 교양이요, 연애 자체는 그 훈장이었으니까. 그야말로 상업음악이나 할 발상이었다. 적어도 그 이상의 이유를 유키나는 찾을 수 없었거니와, 명색이 아티스트라는 치들의 빈약한 생각 수준에 그녀는 치를 떨기까지 했다. 진솔한 것만을 담아내야 할 노래가사에 진심이 아닌 것을 담아내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Roselia는 음악성만으로 승부하는 밴드였다. 유행가의 단골소재 따위를 노래가사로 붙이기에 그들은 너무 고고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젠체한다 부를 터였겠다. 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는 굳건한 각오 없이는 노랫말 하나도 쉬이 쓰지 않는 게 Roselia였고 미나토 유키나였다.
허나,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녀의 측근, 그러니까 유키나라는 인간을 조금이라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냉정한 겉모습이 유키나의 모든 것이 결코 아님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유키나가 밴드를 시작한 진의부터가 애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적어도 그녀와 음악의 길을 함께 하는 이들은 유키나 본인의 입으로 그것을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유키나의 하드디스크 속에 절대로 공개되지 않을 곡 하나가 잠들어있었던 것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lisa.flp'라는 이름의.
유키나가 음악을 시작한 원초의 계기 속, 그녀가 쌓아올린 악상들의 근간을 이루는 소중한 이. 그 이름이 가리키는 것만이 진실된, 쉽게 노랫말을 지을 수 없는 단 하나의 곡.
오랜만에 유키나는 그 파일을 실행해 본다. 여전히 가사를 얻지 못한 흥얼거림을 곁들이며,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
"나, 가사를 써볼까 해."
읽고 있던 로맨스 소설책을 덮으며 이마이 리사는 말을 꺼냈다. 산만하게 손을 움직여대며 균일한 소리로 책상에 펜을 딱딱 두드리던 히카와 히나는 리사의 목소리에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보기엔 안 그래도 다 듣고 있는 모양새였고, 그걸 아는 리사는 히나를 제법 편한 이야기상대로 여겼다.
"리사치는 가사를 안 썼어?" 히나는 묻는다.
"응. 보통은 유키나가 쓰니까."
"의외다. 난 리사치가 평소에 책도 많이 읽고, 보통 노래가사 하면 있는 분위기? 그런 건 리사치 취향일 거 같아서 리사치가 가사 쓰는 줄 알았어."
"에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랑 유키나가 쓰는 스타일이랑 엄청 다른데. 그리고 우리 노래에는 유키나 스타일이 더 맞을 거야."
리사는 히나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멋쩍게 웃었다. 언니의 연주라면서 Roselia의 노래를 열렬히 감상하던 히나는, 아무래도 기타리스트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언니네 밴드’라는 인식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사보다는 멜로디에 집중하기 쉬웠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나도 Roselia에 뭔가 기여를 하고 싶어. 그렇지만 악기를 다루는 실력이나 음악 듣는 귀는 내가 부족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작사는 어떨까 싶었어."
"응. 역시 작사는 리사치한테 어울려. 룽하고 오네."
"그게 Roselia에 어울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야."
"그래도 리사치는 리사치대로 개성이 사는 게 좋지 않아? 난 리사치의 가사를 본 적이 없지만, 리사치의 가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일 거야. 나처럼."
히나는 곧게 쭉 편 검지손가락으로 리사를 가리켰다가 다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제 일도 아닌데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그럴까…? 내가 쓰고 싶은 가사는 딱히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 하나뿐인 이야기는 아닐 거야. 흔해빠진… 그런 거라서."
히나는 리사가 방금 덮어 책상 위에 올려둔 로맨스 소설 표지를 힐끗 보더니, 눈을 반짝이면서 리사에게 바로 물었다.
"아, 리사치, 혹시 사랑노래를 쓰려고 하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순간 리사의 얼굴에 확 하고 열이 몰렸다. 리사는 역시 히나한테는 당해낼 수 없겠다 싶었다.
"아, 하하, 들켰나. 뭐, 달리 말하면 그것밖에 쓸 줄 모른다고 해야 하나?"
"확실히 유키나쨩은 상업음악은 인정하지 않았지? 그렇다면 대중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랑노래로는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겠네."
그 말에 리사는 뼈를 맞은 듯이 멍하니 있었다. 역시 내가 고민하는 것은 Roselia의 격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히나는 역시 예리하네. 내가 고민하는 부분을 정확히 짚어줬어."
"근데 떠오르는 게 그것밖에 없단 건, 달리 보면 그게 본심이란 거 아냐? 가사는 루룽! 하고 떠올렸을 때 파바박! 하고 써버리는 게 최고지."
"그럴려나… 일단 Roselia에서 쓸 곡에 무턱대고 가사를 쓰고 싶다고 말하긴 좀 그러니까, 다른 노래나 안 쓰는 습작 같은데다가 먼저 연습을 해 봐야겠다."
"좋은 생각이야. 리사치, 사랑노래 응원할게."
"사랑노래를 쓴다고 확정난 건 아닌데…"
연애상담에 거의 근접한 이야기였지만, 그 맥락 속에서 다행이도 히나는 리사에게 누구를 좋아하는지, 노래를 전할 사람이 있는지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그 점이 리사가 히나를 편하게 여기는 이유기도 했었다. 너무 성가실 정도로 깊이 파고들지 않되, 예리하게 요점만 집어준다. 자신도 마당발에다가 오지랖도 넓다 보니 친구들의 연애 상담은 몇 번이고 들어준 적이 있었지만, 남의 일에 밝아지면서 자신이 선을 넘지 않는가 고민할 필요 역시 늘어났다. 때로는 적당한 거리감이 더 편하다는 것은 좀처럼 마음을 터놓으려 하지 않는 제 소꿉친구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마음에 닿으려고 애쓰는 자신은 불필요한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누구를 위해서 이 가사를 쓰고 싶은가부터가, 히나의 말, 그리고 유키나의 의지를 생각하면 거대한 아이러니가 아니었는가.
"그럼 난 밥 먹으러 먼저 가 볼게."
히나는 경쾌하게 손을 흔들고는 교실에서 뛰어나갔다. 또 천문부에서 혼자 밥을 먹을 생각인 걸까. 아니면 도시락통을 빼먹어서 사요가 또 챙겨주려 나온 걸까. 리사는 자신도 도시락통을 꺼내려다가 문득,
'앗,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마음을 먹었으면 뭐라도 작업해야 해.'
결심한 바를 헛되이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바로 노트를 펴고 펜을 쥐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한 줄 한 줄 그럴듯한 가사를 써내려간다. 멜로디로 삼은 것은 유키나가 언젠가 만들었던 습작이었을까. 하지만 성에 차는 가사는 영 나오질 않았다. 아까 히나한테 들은 말 때문이었을까. 어느새 노트는 쫙쫙 그은 검은 선들과 지운 자국으로 가득차고 말았다.
"정말……. 이래서는 Roselia에 도움이 된다는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하겠는걸. 그보다 유키나한테 내가 이런… 앗, 나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리사는 홧김에 가사를 쓰던 종이를 노트에서 찢어내 작게 접어 책상 밑에 넣어버렸다. 흔한 말밖에 쓰지 못하는, 아무런 결의도 담지 못하는 밋밋한 사랑노래. 유키나가 그렇게나 싫어하는 상업음악의 전형. 그런 것밖에 쓸 수 없음을 유키나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Roselia에 자신이 다른 멤버들만큼이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모습은 보여야 했는데.
"리사, 뭐하고 있어?"
아니나 다를까, 그 고민을 하고 있으니 바로 뒤에서 생각의 주인공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좀처럼 감정이 실리지 않는 차분한 저음의 목소리.
"유키나? 언제 온 거야?"
"점심때인데 같이 먹으러 안 찾아와서 무슨 일 생겼나 했어."
"아, 그게, 다음 시간 숙제를 안 해서 점심시간에 하려고."
유키나는 리사를 빤히 쳐다봤다. 리사는 애써 눈을 피했다. 리사도, 유키나도 서로를 보면서 서로답지 않다고 느꼈지만 속으로만 생각했다. 학교에선 성실한 리사가 숙제를 빼먹는다고? 유키나가 점심시간에 먼저 찾아오고, 같이 밥을 안 먹는 것에 아쉬움을 표한다고? 명색이 소꿉친구인 것 치고는 중간에 서로 멀리하던 시간들이 있어서 아직 서로 모르는 것이 산더미였지만, 그래도 늘 보는 사이에서 보이는 패턴을 벗어나는 행동에는 이유가 있으리라는 짐작이 오갔다.
"리사, 혹시 힘든 일 있어?"
"별 일은 아니야. 그냥… 왜, 걱정돼?"
"리사가 없으면 안 되니까."
표정도 변하지 않고 사람 설렐 말을 하는 유키나였다.
"숙제, 힘들면 도와줄게."
"아, 아냐, 됐어. 혼자 안 하면 의미가 없는데다 유키나까지 내 일로 고생시키고 싶진 않은걸."
유키나가 리사의 책상 서랍 쪽으로 손을 뻗자 리사는 황급히 이를 저지하면서 손을 내저었다. 유키나에게 자신의 처참한 작사 실력을 보였다가는 면목도 염치도 없었으니까.
"리사는 이런 데서는 정말 꾸준하네."
"그나저나 유키나가 먼저 밥 먹자고 찾아와주다니… 나 엄청 기뻐."
그 기쁨은 솔직한 본심이었지만, 그것을 다른 본심을 숨기기 위해서 입에 담으니 왠지 핑계 같아서 리사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지만 유키나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히 리사의 책상 앞 의자를 끌어놓고는 자기 몫의 도시락통을 책상 위에 폈다. 그에 따라서 리사도 자기 도시락을 꺼냈다. 오늘의 반찬은 유키나도 좋아하는 달달한 양념이 일품인, 리사의 수제 고기감자조림이었다.
"아 맞다, 유키나. 혹시 안 쓰는 노래 있어?"
"안 쓰는 노래라니?"
"Roselia의 정식 곡으로 안 쓸 습작이나, 뭐 그런 거. 다른 게 아니라 베이스 연습 좀 하고 싶어서." 조린 고기 몇 점을 유키나의 도시락 위에 올려놓으면서 리사는 덧붙였다. 연습은 연습이지만 베이스 연습은 아니었다. 또 유키나에게 거짓말을 해 버린 리사였다.
젓가락으로 밥과 함께 리사가 준 고기조림을 집어먹던 유키나의 손이 거기에서 멈췄다. 리사의 입에서 습작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바로 생각난 곡이 있었다. 어째서 하필 그 곡이, 하는 일말의 당황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얼굴 근육에서 에너지를 빼면서 유키나는 말했다.
"딱히 습작 같은 건 없어." 당연히, 이쪽의 말도 거짓말이었다. 습작이라면 당연히 하드디스크에 나뒹굴고 있는 것만 해도 꽤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 중에는 체면을 이유로 도저히 공개하지 못할 것들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 곡’만큼은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구나. 아쉽네. 요즘 Roselia에 어울리는 연주는 어떤 건가 고민하고 있었어서, 아, 혹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조금-"
"그렇다면 더더욱 습작에서 찾아선 안 될 거야. Roselia는 항상 준비만반이어야 하니까, 완성작이 아닌 건 무의미해."
리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유키나는 딱 잘라 말했다.
"아, 그, 렇네.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말을 더듬다가도 성의를 거절당하는 건 익숙하다는 듯 이내 입으로만 미소를 지어보이는 리사를, 유키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바라봤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평생 전하지 못할 선율과 그 이상으로 전하기 힘들었을 본심들이 팽팽 맴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준비하고 있던 것을 없는 것처럼 숨기는 치킨게임 속에서, 둘은 말없이 도시락만 나누어 먹었다. 한동안 안 그러다가 간만에 찾아온, 어색한 점심시간이었다.
"리사."
식사도 끝나고 곧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쯤, 유키나는 무의식중에 이름을 불러본다.
"응? 유키나?"
바로 돌아오는 대답. 그렇게 이름을 부르면 항상 제게 향하는 시선과 목소리. 제 곁에 따라붙는 따스한 존재감이 그저 좋아서 찾고 또 불러보는 것인데, 그 이유가 너무도 가냘프고 무른 것이라는 생각을 유키나는 지울 수 없었다.
그냥 불러봤어. 리사가 이름 불러줄까봐. 그 말 하나를 못 해서.
"잘못 들었나? 아, 이제 곧 수업이지. 그럼 학교 끝나고 볼래? 오늘은 연습 있어?"
그 말 하나를 쉬이 못 해서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는, 거기에서 위안을 찾는 얄궂은 허세를 쉽사리 내려놓지 못하는 유키나였다. 평생 공개하지 못할 선율을 머릿속에서 치워버리려고 애쓰며, 유키나는 조금 빠른 발걸음으로 교실을 나갔다. 그 뒷모습을 쭉 바라보고 있던 리사는, 유키나의 발소리가 인파의 소리에 묻히자마자 책상 서랍 속의 찢어낸 노트를 그대로 휴지통에 넣어버렸다.
영원한 습작과 어울리지 않을 가사. 마음을 엇갈리는 것조차 두려운 나머지 담아두기로 한 짝사랑들은 오늘도 잠든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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