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로 '사랑'과 '고의'는 둘 다 독음이 '코이'라고 함. 그걸 생각하다보니.
오랜만에 재활 차원에서 써본 레오이즈 자유형식 단문. 레오이즈라곤 했지만 사실 레오의 독백입니다.
망사랑이라고 해야할까, 엇갈린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을 절규에 가깝게 표현해보고 싶었다.
관계의 어긋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가스라이팅으로 (어느 쪽이 행하는 상황인지는 해석의 자유입니다. 단 글쓴이의 마음 속에선 어느 측인지 답을 잠정적으로 내려두긴 했습니다) 받아들일 표현이 있습니다. 주의를.
너는 나를 모르지만, 나를 사랑한다는 것만은 알았다.
세나, 정말 좋아.
버릇처럼 말하는 이야기가 입에서 구른다. 네 이름 앞의 두 글자를 먼저 입에 머금고, 느끼는 그대로를 목소리로 만들어 좋아, 라고 표현한다. 그 말의 정밀성은 별로 기대할 만한 게 못 되지만, 여과없이 나올 수 있는 말이라면 진심이지?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짜여져 나오는 악보들처럼 말이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이 아름답고도 사랑스러운 세상이 나라는 여과기를 통해 가장 빛나는 영감이 되어 음색으로 화하는 순간이, 마치 프리즘을 타고 흐르는 무지개처럼 영롱하니까. 투명한 삼각 프리즘. 거기서 나온 빛을 사랑하는 건 내가 제일 잘 하는 것. 세상 어떤 것에도 빛줄기는 있고, 그 모든 게 내게는 그런 무지개가 될 수 있어.
네게 내가 그 예쁜 프리즘으로 보이는 것을 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건 더더욱 잘 안다. 산산조각이 나 무지개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 조각을 제 손에 피가 날 정도로 그러쥘 너를, 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니. 그 상처로 더 후벼지는 건 너고, 피투성이 손이 약손이 될 수 있을지는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말야. 그래도 마음은 정말 고맙게 받고 있어. 그건 진심이야. 그렇지, 세나? 하나의 작은 세나. 나에게 유일해야 할, 내가 손에 쥘 수 있을 정도의 너. 만사에 집요하게 너를 내보이기 바쁜 네 인내심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면서, 한 치의 거슬림 없이 만들어진 달콤한 세레나데. 너는 그걸 듣고 울기도 하고 또 웃기도 하고 많은 생각을 했을 거고. 나는 그게 어딘가에선 버겁단 생각을 지우지 못하면서도 그 마음에 감사를 안 할 수가 없을 거야. 너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너를 사랑하는데, 그리고 이렇게 눈에 보이는데, 거기에 답하는 건 일 더하기 일이 뭐냐고 대답하는 것만큼이나 명확하거든. 앗, 레오군은 그 좋은 머리 어디 쓰냐고 태클 들어올 타이밍이다! 그런데 일 더하기 일이 일이 아닐 수 있냐는 걸 여기서 반문하는 데 의미가 있을까? 이미 답이 정해져 있을 때. 그리고 그 답이 나만을 위한 거라면.
음악만을 위해서라면서, 귀기울이지 않은 채 내가 가진 것들만을 보고 나를 택하는 이들을 보며 환멸하고, 그런 사람이 안 되고 싶다고 후회하는 너를 보면, 고맙다고 말해야겠지 우선. 응. 너는 분명 내 음악에 귀를 기울여주었어. 내가 보이는 데서는 아니었지만, 다 아는 방법이 있어. 너는 듣고는 있었잖아. 너 역시도 나에게 쓸모가 있고 싶었지. 그러니까 너는 내 영감, 내 뮤즈가 되길 바랐던 거지. 처음엔 나도 반신반의했는데 그렇게까지 하면, 나도 선택권은 없나- 했지 뭐야. 그 정도로까지 나를 믿어주는 건 너 뿐이라고 믿을 게 있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으니까. 아, 그리고 이게 있었지. 사실 그때부터 나는, 프리즘이 아니라 칼을 벼리고 있었거든. 너와 내 친구들 - 여기서만큼은 기사들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지? 내가 그 자리에 없어도, 스오한테 물어보면 정직하게 잘 가르쳐줄 거야 - 을 지키기 위해서 벨 준비가 되고, 언젠가 때가 되면 보이지 않는 암흑조차 베어낼. 뭐, 그걸로 내 목을 베어도 정말로 상관없었고 말야. 왕관은 너무 무거워서 목이 아프거든. 그리고 그걸 제일 가까이서부터 쥐여준 건, 당연 세나 너 아니겠어? 왕님의 측근, 기뻐하시라! 네 이름까지 붙은 곡을 선사받은 건 너뿐이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증명이 되었을까?
음, 왕님이 아니라 레오군이라고 불러주는 거, 정말로 기쁘단 말야. 왜 기쁜가? 소중한 세나가 원하는 거니까, 기쁜 게 맞지? 근데 왜 이렇게 목이 막힐 거 같은지 모르겠어. 사랑에 빠진다는 게 이런 걸까? 보통 그럴 땐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지? 하지만 지금은 가슴이 아니라, 그렇다고 머리도 아니라 손가락이 무겁고 아파. 왕관에 비하면 반지는 정말 가벼운데 말이야. 그런데도 손을 들 수가 없어. 칼을 내려놓고 대신에 쥔 반지는 사랑의 맹세고, 이 손은 맹세의 말을 노래로 만들기 위한 손. 그런데 갑자기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손이 움직이지 않아. 아, 그러고보면 그렇네. 만약 사랑이 저주라면, 세나도 저주를 받은 거야? 하긴, 세나는 쭉 다른 데를 보고 있었는걸. 나 대신에 그 금발에 초록 눈 애를 바라본거? 에이 에이, 그 이야기가 아니야. 이래서 세나는 나를 모른다고 쏘아붙여버렸지 나! 와하하, 또 까먹을뻔 했네. 주어 없는 말이지만. 걔한테도 폐를 참 많이 끼쳤는데. 어느 면에선 세나보다도 말이 참 잘 통하는 애라서 내가 굳이 그래야 했나 싶었지. 미안미안. 이것도 주어 없다? 그냥 너한테 바로 꽂으면 되는데. 그치만 내가 소중한 세나한테 어떻게 그러겠어? 누구보다도 나를 아껴주는 세나에게? 결국은 내가 너무 좋아서 내가 사랑해주는 것만 기다리고, 그게 안 되니까 누구 옆에서든 떼쟁이가 되고 싶은 너를, 내가 어떻게 혼자 둘까. 네게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을 때,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역할을 해야겠지. 아니, 혼자 안 둬도 옆에 있으니까 말야? 제일 옆에 있는 사람을 봐라! 슈 녀석도 주제넘게 그랬었단 말이지. 요즘은 주제를 좀 챙긴 것 같지만 말야. 근데 그 말 일리가 있다? 네 눈에는 내가 담겨있고, 내 눈에도 담겨있고. 너는 날 사랑하고, 나도 널 사랑하고 있단 말야? 이 세상 전부를 사랑하는 만큼.
근데 말야, 그렇게나 나를 담은 네 눈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세나는 어떡할 거야?
이게 저주인 거지? 내가 어떻게 해야 웃을지 모르겠다고 말했지? 그 말에, 고맙다고 해도 될까? 처음으로 답이 정해지지 않은 말을 네가 내게 물어줬으니까. 그치만 말야, 그 후에 피렌체까지 같이 따라가겠다고 했을 때도, 여전히 네 눈에 담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면? 거울도 아니고, 그렇다고 맑은 물을 들여다보는 것 같이 말끔하지도 않고... 세나, 여전히 뭐가 그렇게 신경쓰여? 아, 새삼스럽지는 않아. 싫은 것도 아냐. 좋은 일이잖아. 서로가 곁에 있다는 거. 그런데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어. 깨진 프리즘? 깨진 다이아몬드? 아니야, 깨진 것들도 빛은 낸단 말야? 지금은 나는 어두운 통 속에 담겨버린 것만 같아. 만화경의 프리즘. 그래도 네 눈에 맞춰진, 너만을 위한 아름다운 삼라만상을 보여주는 역할은 내게 있는데.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으면, 내 눈은 여전히 아름다운 걸 보고 있지? 여과된 세상이 때로는 편할 때도 있단 말야. 네가 보는 내가 내가 아니라도, 네게 보인다면 그게 나겠지.
그러니까 앞으로도 내가 너를 위한 만화경으로 있을 수 있도록 잘 부탁해! 어쩌면 거기에 빛이 있을까? 빛이야 있지. 세나는 아름답고, 나는 세상 모든 것만큼이나 세나를 사랑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네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지금은 오히려,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너를 알지만, 너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는 몰랐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같은 저주를 나눠 왼손 약지에 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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