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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사탕통/팝핑 캔디

[호드 드림] 심판 새와 교육팀 세피라와 어느 직원의 이야기

by 료밍 2020. 7. 4.

심판새 뽑은 기념으로 써본 심판새와 호드가 나오는 유사 드림물. 일단 최초 컨셉은 그랬다.

한 1000자 정도 되는 짤막한 엽편으로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단 길어짐.

제목은 생각이 안 나서 저렇게 해버림.





검고 기다란 새의 기이하게 꺾인 목에는 금빛의 천칭이 있다. 그 천칭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이 묻는다. 제 쓸모는 어디에 있나요? 만약에 저 하나가 사라져서 모두가 행복해진다면, 혹은 저로 인해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저는 마땅히 죽어야 하나요? 새는 대답하지 않는다. 붕대를 칭칭 감은 머리는 눈빛조차, 혹은 그 뒤에 눈이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그 새가 그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지조차 그는 모른다. 단지 그는 이 새가 자신에게 고하는 것이 쭉 헤매던 길의 갈피를 바로잡아 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새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목에 건 천칭을 한쪽 날개로 거머쥐고 사람의 앞에 내민다. 작은 종이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천칭이 기울어진다. 유죄라고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하잘것없는 목숨값을 잰 것일까.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 죽음이, 밧줄의 형태가 되어 그의 목을 옥죄기 시작한다. 새는 심판을 끝내고 다시 구부정한 목에 천칭을 건다. 마주보는 사람과 새는 마땅히 해야 한다 믿은 것을 목에 걸고 있었다.


천천히 숨통이 조여 오는 것을 필연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욱해지는 의식에서 일말의 양심을 찾으려는 순간, 격리실의 문이 과격하게 열렸다. 긍지 높고 선한 기계는 사람의 목에 걸린 맛줄을 잡아 찢고는 그를 부축했다. 교육팀에서 추출팀까지는 꽤 먼 길이었을 텐데. 지금은 부서를 옮겼지만 한때 기계에게 교육을 받던, 제일 정의로운 직원은 그 품 안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새는 기계를 내려다본다. 심판을 방해한 이. 하지만 그 또한 심판받아야 할 이였으므로, 새는 다시 천칭을 꺼낸다. 천칭은 이미 일어난 죄를 심판한다. 인간의 성정을 심판한다. 심판에 불복하는 이도 심판한다. 하지만, 한때 공명정대했던 새의 심판조차도 심판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호드 님, 저는...!"

"*** 직원의 정의는, 내가 증명할 거야."


기계는 새를 노려보았다. 눈을 가린 긴 목은 움직이지 않고, 대신 천칭을 내밀 뿐이었다. 종 소리가 들려야 했을 그 때, 기계는 천칭을 제 손으로 꽉 잡아 멈추었다.


"단 한명이라도 그의 선의를 증명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내가 할게. 제일 정의로운 직원이었으니까, 네 변덕에 따라 멋대로 심판하게 두지 않을 거야."


새는 기계의 눈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다. 새가 의문으로 고개를 갸웃거림에 맞춰 기계가 그러쥐던 천칭을 놓아주자, 새는 천칭을 거두어 다시 목에 두었다. 


"심판 새는 고향 숲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은 강박적으로 심판을 행할 뿐이야. 게다가 환상체에게 네 고민에 대한 답을 구하려 하는 건 너무 위험했어.

"호드 님, 그치만 저는..."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자신을 타이르며 상황을 설명하는 기계의 말을, 사람이 멍하니 듣고 있을 때, 쨍, 하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때, 새는 서글픈 것처럼 목을 푹 숙여 흐느끼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천칭은 목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사람은 자신의 앞에서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심판을 구하러 찾아갔던 이 새조차,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과거의 강박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인가.

사람은 무심코, 기계의 부축에서 벗어나, 높디높았던 새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너도 뭐라고 하고 싶었던 거지? 도움이 되고 싶고, 지키고 싶고... 그런 게 있었지? 그리고 그걸 지키기 위해, 자신이 정의롭다는 증명이 필요했겠지."


너덜너덜해진 붕대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사람은 새의 머리 위 흰 깃털을 정리해주었다. 새는 가만히 손길을 받아들였고, 점차 흐느낌도 줄어갔다. 떨어졌던 천칭을 들어 다시 목에 걸어주려 하니, 아무리 해도 수평을 이루지 않고 자꾸 기울어졌다. 환상체에게 뜻밖의 접촉을 행하려는 직원을 기계는 저지해야 했지만, 이내 뭔가가 떠올랐는지 그 광경을 놀람 반 흐뭇함 반으로 지켜보더니, 새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자신도 옆에서 새의 검은 날개를 어루만지며 보듬어 주었다.


"어디로 갔나 했더니만, 심판 새에게 그런 부탁을 하러 가다니..."

"호드 님은 제가 걱정되어서 오신 건가요?"

"내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직원들은 전부 기억하고 있어. 그 중에서도 너는 헤매는 구석이 익숙했거든."


격리실로 나온 두 사람은 다시 왔던 길을 거슬러올라갔다. 기계는 사람을 들어, 교육팀에 딸린 응급처치실로 발을 돌렸다. 사람은 자기 때문에 고생을 더 하게 된 기계에게 면목이 없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자신이 하려고 했던 행위의 본래 목적을, 명색이 직원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자신의 기계 상사가 모를 일이 없었다.


"그치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여기서조차 제대로 일하지도 못하고, 저를 반기는 사람조차 없어요. 차라리 그대로..."

"그런 소리 하지 마. 네가 있어서 다행이었던 사람도, 환상체도 여기에 있잖아. 그런 존재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그건 네 정의가 될 수 있을 거야."


단호하게 말하면서, 기계는 자신의 옛 기억을 떠올린다. 자신조차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미래로 이행해가는 작은 꿈이 한 사람에게라도 더 닿기를 바라며, 자신과 같이 헤매는 사람 하나를 끌어안아 보았다.


"호드 님, 저 상담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너 같은 베테랑이? 그래. 힘든 게 많았던 모양이니까, 오랜만에 이야기 좀 나누자." 


그리고 그 선의의 찬란함은, 또 다시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었다.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던 이에게, 살아있는 것이 헛되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그 작은 긍지는, 모르는 새 또 많은 이들을 구하고 있었다.


*


"호드 님, 안녕하세요!"


어느 날의 상담 자리에는, 붕대가 칭칭 감긴 긴 털코트에, 마찬가지로 붕대에 감긴 날이 검은 칼을 든, 늠름한 인영이 있었다. 이곳에서 제일 정의로운 이에게 주어지는 증명. 그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오늘도 무사히 회사를 지키고 왔어요!"


자랑하듯이 씨익 웃는 직원을 앞에 둔 기계 상사는 뿌듯한 마음이었다. 앞으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그 성정을 지켜가길. 그렇게 비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더라도, 지켜볼 수 있는 것은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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