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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사탕통/팝핑 캔디

[나기이바] Chocolate Philosophy

by 료밍 2021. 7. 18.

나기이바 합작 투고작입니다. 합작 페이지는 이쪽
제목의 유래는 동명의 팝픈뮤직 수록곡 CHOCOLATE PHILOSOPHY에서.

 

 

'어째서 모처럼 쉴 기회에 제가, 고작 이런 걸로 이러고 있는 겁니까?'

사에구사 이바라는 갖은 잔업 끝에 맞이한 휴일에, 자신이 왜 편의점의 식완 코너 앞에서 일생일대의 고민을 하고 있는가에 깊은 의문을 품었다. 다행이도, 코즈믹 프로덕션 본사 건물 바로 맞은편에 목표물인 세븐일레븐이 있었기 때문에, 여름의 땡볕에 오래 노출되어 기력을 소모할 일 없이, 바로 냉방 되는 실내에서 임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덫에 사로잡혀버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 임무란, 바로 세븐일레븐에서만 파는 메론맛 아이스크림 '마치 완숙 멜론' 4인분을 입수하는 것이었다.

내기의 패배자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소소하지만 어길 수 없는 벌칙. 애초에 처음부터 내기였던 것은 아니었다. 코즈프로 사내 휴게공간의, 사람을 글러먹게 만들기로 유명한 쓸데없이 푹신한 소파에서 잠깐 휴식만 취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저 그 자리에 있던 나머지 멤버들에게 말려들어버린 것이다.

우선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그는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제일 먼저, 게임 콘솔을 붙들고 걸작인 리액션까지 해 가면서 몰입하던 사자나미 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구경하면서 장난스레 훈수를 두다가 "내가 쥰 군 이기면 마치 완숙 멜론 사와" 라고 내뱉어 그의 승부욕을 자극한 '전하', 토모에 히요리가 있었다. 결정적으로, 우연히 그 타이밍에 그 자리를 지나가더니 재밌겠다면서 자신까지 끌고와 그 우스운 놀이를 4인 게임판으로 만들어버린, 결정타와도 같은 주범, 고귀하고 만물에 군림하며 Eden의 간판 아래선 최고의 우군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불안요소나 다름없는 '각하', 란 나기사가 있었다. 무대에서는 최강인 이들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저마다의 통제불능인 일면은 있고, 이런 통제불능의 요소에 휘말리는 것은 이바라에겐 제법 고역이었다.

아무튼 거기서 히요리가 멋대로 "그럼 4명 해서 점수 제일 낮은 사람이 마치완숙멜론 사오면 되겠네!" 라고 선언해버렸고, 이기는 데는 자신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즐기는 내공에서는 밀렸는지, 아니면 세 명이 - 아니, 각하가 그럴 것 같진 않으니 전하랑 쥰 두 명이겠지, 하고 이바라는 믿었다 - 열심히 견제한 탓인지 보기좋게 꼴찌를 차지한 이바라는,

"낙승이네, 낙승! 좋은 히요리! 그럼, 올 때 마치 완숙 멜론-"

이라는 히요리의 경쾌한 목소리에 배웅받으며 패배자답게 벌칙을 완수하러 가게 되었다. 거기에 나기사가 "땡볕에 이바라 혼자 가면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나도 살 게 있어서 같이 갈게" 라면서 따라 나선 건 덤이다. '살 게 있다'라는 말에 바로 이바라는 경계를 세웠다. 아마 각하의 이미지 유지에 적합하지 않은 잡동사니거나, 초콜릿 따위의 군것질거리겠지. 그렇다면 감시역으로서 자신도 따라올 이유는 생긴다. 그렇게 나기사의 동행을 순식간에 마음 속으로 납득하며, 오늘도 각하의 군것질을 필사적으로 막기 위해, 제일 효율적인 잔소리가 무엇일지를 마음 속으로 구현해보며 이바라는 나기사를 뒤따라 세븐일레븐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역시 나기사의 산만하다면 산만하고, 한번 눈에 사로잡힌 것을 놓지 않는 성미는 이런 사소한 내기 벌칙 겸 심부름에서까지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이번에 나기사의 주의를 끈 것은 바로 새로 들어온 식완 포함 달걀 초콜릿이었다. 알 모양의 초콜릿 겉껍질을 깨면, 안에는 장난감이 들어있는 물건이었다. 며칠 안 보이더니, 오늘 새로운 장난감 라인업을 안에 품고 돌아온 초콜릿 달걀. 검은 실루엣에 감싸인 미지의 시크릿 장난감은 언제나 아이들과 수집가들의 꿈이었지만, 알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지는 공평하게 비밀이었다. 그 비밀 너머에 신의 권능이라도 쓰듯 온 집중력을 기울여, 나기사는 초콜릿 달걀 하나를 집어 귓가에 대고 흔들어보았다. 초콜릿 껍질에 비닐포장이 바스락거리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심사숙고하다, 다시 원래 자리에 초콜릿을 놓고, 그 다음 초콜릿을 손에 들고 반복.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정교하게 그 루틴을 반복하는 자태에서는 마치 예술품을 감정하는 장인의 솜씨와 경건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을 뒤에서 보고 있는 이바라는 태클을 꽂아넣을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물론 바로 불러세우고 각하의 체면을 지키십시오! 나, 또 군것질입니까! 따위의, 예의 익숙한 반응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괜히 이야기했다가 이런 걸로 토라졌냐는 이야기를 들었다간 낯간지러울 것 같았기에, 적어도 원하는 대로 하게 두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을 뿐. 그는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에 나기사의 식완 감정 작업이 끝나기를 바라며, 네 사람 몫의 아이스크림을 한 손에 움켜쥔 채,

"너무 시간 끌면 아이스크림 녹겠지 말입니다?"

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바라로서는 딱히 아이스크림이 녹으면 모두가 실망하니까 빨리 가야지, 그런 이타적 사고에 대단한 가치를 두는 건 아니었지만, 심부름꾼 신세이자 피서라는 목적을 고려하면 제일 실용적인 말이었다.

그 말과 동시에 이바라의 눈 앞에는 초콜릿 하나가 내밀어졌다.

"이거 가질래?"
"사양하겠습니다."

이바라 자신이 여태껏 쌓아올려준 위압적인 이미지가 무색하게, 천진난만해 보일 정도로 잔잔하게 웃는 나기사를 보며, 잠깐이지만 이바라는 '자연스럽다'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쳇, 마치 그 말은 이런 일에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하는 제가 부자연스럽다는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이바라를 꿰뚫어봤는지는 몰라도, 나기사는 초콜릿을 든 손을 거두지 않은 채 이바라에게 물었다.

"이바라는 초콜릿에서 뭐가 나올지 기대되지 않아?"
"이런 어린아이 같은 군것질거리에 기대를 갖는 건 진작에 관뒀어요."
"그렇구나. 그렇다면 역시 이바라한테도 가르쳐주고 싶어. 이 기쁨을 말야."
"기쁨이라니요. 마치 저를 산타라도 기다리는 아이 취급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바라, 내가 하지 않은 말을 멋대로 네게 끼얹지 말았으면 해."

순수한, 하지만 단호한 말이 돌아오면, 왠지 가슴 속의 건드려선 안 될 것을 건드리는 듯 따끔거려서,

"...다 골랐으면 슬슬 돌아가죠."

한숨을 쉬면서 이바라는 나기사가 들고 온 초콜릿을 집어 아이스크림과 함께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먼저 올려놓은 것들이 삑, 삑, 하고 바코드 기기 소리와 함께 봉지에 담기면 그 뒤를 따라서 나기사도 나머지 세 사람 몫의 달걀 초콜릿을 계산대에 놓았다. 이바라는 자신이 먼저 받았던 초콜릿을 따로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 선물을 기다리진 않아도, 가진 건 빼앗기기 싫어 놓지 못하는 아이 같아서 스스로가 꼴사나웠다.

냉방이 되는 편의점을 떠나 습하고 더운 공기가 훅 끼쳐왔다. 이바라는 마음 속에서 부풀어오르는 복잡한 감정들이 부끄러운 것처럼 사악 하고 얼굴 안쪽으로 스미는 것 같았다. 답답할 정도로 더운 공기 안에서 그 감정의 순환은 더욱 자욱하게 마음을 눌러 덮는 것 같아, 이바라는 차라리 켕기는 것을 먼저 말하기로 했다. 호의조차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스스로는, 이제 미워할 겨를도 없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그를 이용하겠다고 마음먹은 시점에서, 그것을 떠올리는 것은 모순이었는데도.

"각하께서는 아까 제게 기쁨을 가르쳐주고 싶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뭔가를 알아가고, 또 알려주는 기쁨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지요. 각하에게 도움이 된다면 최고의 눈과 귀가 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럴 자격이 있는 우군으로 인정받았다면 저로서는 영광이군요."
"인정해서 그런 게 아니야."
"네?"
"인정하고 인정받는 거 말고, 서로 좀 더 이해해보고 알아보는 시간이 있으면 어떨까 했어."

나기사는 잠깐 발걸음을 늦추면서 이바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대로라면 이바라가 원론을 가장해 말을 돌릴 것을 눈치채고서, 나기사는 이바라가 스스로에게 둘러싼 단단한 껍질 안의 내용물을 향하듯, 아까의 화제를 다시 꺼내 던졌다.

"달걀 초콜릿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무엇이긴요, 장난감이겠지요. 뭐가 들어있을 지는 모르고, 제가 노리는 게 있다고 해도 나올 거란 보장은 없지만요. 저는 이렇게 제 뜻대로 제어할 수 없는 건 좀처럼 즐길 수가 없습니다만."
"난 즐겁다고 생각해. 초콜릿 부분을 조금씩 음미하다 보면 안에 숨겨진 게 드러나잖아. 무엇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숨겨졌던 장난감이랑 마주하면 내가 몰랐던 걸 찾아내어서 기뻐져. 그리고 이 장난감은 어떻게 조립하거나 움직이는 걸까, 이런 것들을 상상하게 되지. 그렇게 점차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워. 꼭 초콜릿의 속내를 이해한 것 같아."
"예상치 못한 것이 다가오는 게, 불안요소가 아니라 즐거움이란 이야기가 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것도 있고, 이바라가 내게 많은 것을 알려줬으니까, 나도 똑같이 해주고 싶다고 생각한 거야."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나기사는 이바라에게 말했다.
알려줬다는 것은, 그에겐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자신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바라에게 은혜를 입은 것을, 그를 통해서 세상의 만인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 것을 안다. 그의 영향은 '각하'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이상적인 얼굴에 스며있었다. 동시에 이바라가 나기사를 이용하고 있음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으며, 정말로 숨기는 게 있다면 그것 이외의 모든 것임도 안다. 독을 가진 생물은 화려한 색깔을 내세워서 독이 있음을 경고하지만, 그 내면은 얼마나 포식자의 무기에 취약한가를 숨기듯이 말이다. 하지만 앎이란 파생되는 것이고, 그렇게 주어진 선들이 때때로 답답하게 느껴지는 시기는 점차 빈번해졌다.

그렇기에 란 나기사는 사에구사 이바라라는 인간에 대해, 그 이상을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가 자신에게 어떤 목적으로 접근했으며 어떤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을 대하는가, 자신이 충족할 수 있는 그의 명분은 무엇인가, 그런 필요에 의한 공생을 넘어 '그는 누구인가?' 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충족하고 싶었다. 그 흥미를 호감이라고 한다면, 호감이겠지.

"너에 대해서 알고 싶어. 네가 누구인가. 동시에,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점차 하고 싶어. 내게 어울리는 것이나 내가 원하는 것을 네가 정하지 않고도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마찬가지로 내게 필요한 네가 아닌, 예측 범위 안이나 바깥의 네가 아닌, 그냥 이 자리에 있는 네가 누구인지를 더 알고 싶어. 초콜릿에 무엇이 들어있을까를 그저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게 무엇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그 순간이 기쁜 것처럼."

보통 때였으면 그 의중이 무엇인가를 샅샅이 뒤지며 역공 태세를 준비했을 텐데, 정직하게 내리꽂히는 말의 포화 앞에서, 이바라는 자신의 진짜 패배는 그놈의 심부름 내기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체감했다. 이것은 망할 더위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이 필요한 계절 탓이다, 하고 한 번 마음 속으로 원망할 대상을 바꾸고는, 이바라는 자신을 바라보는 나기사에게, 자신답지 않은 정직함을 마지막 수단으로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겠죠. 각하께서 말씀하시는 게 있는 그대로가 아니었던 적은 없었겠지만."
"아까 내가 군것질거리를 고르고 있을 때도 삐져서 한 소리 하지 않아서, 말해도 될 것 같았어."
"굳이 그걸 언급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 이바라가 제법 재밌다고 생각했는지 나기사는 또 한번 미소지었다. 그 옆에서 이바라도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나기사를 힐끗 보고는, 그와 보폭을 맞춰 걸었다.

두 사람은 히요리와 쥰이 기다리고 있던 휴게공간으로 돌아왔다. 코즈프로 건물의 쾌적한 냉방은 어느새 눅눅한 더위의 흔적도 시원하게 날려버린 채였다. 아이스크림 4개 몫이라기엔 뭐가 많이 든 비닐봉투를 보자마자 둘은 환호를 보냈다. 나기사가 소파 앞의 테이블에 봉투를 놓자, 그들은 바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꺼내 먹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말고도 뭔가 많이 사왔네?"
"사는 김에 초콜릿도 사 왔어."
"아, 나기 선배도 이거 모으고 있었어요?"
"응. 초콜릿도 식완도 좋아하니까."
"다음에 아이스크림 사올 사람은 시크릿 뽑는 사람으로 할래? 나기사 군, 어때?"

아이스크림을 사온 것만으로 금세 다시 이야기꽃을 피우는 유닛 멤버들을 바라보며, 이바라는 역시 이런 분위기는 적응이 안 된다고 혼잣말하면서도, 주머니에서 나기사가 준 달걀 초콜릿을 꺼냈다.
필사적으로 보이고 있는 자신의 이 쓸모, 독할 정도의 유능함, 그 껍데기를 깨면 그 안에 있는, 구겨지고 너덜너덜한 채인 자신이, 있는 그대로를 알리며 어울리고도 무사할 수 있을 거라니, 꿈만 같은 소리.
여전한 회의감과 그럼에도 싹튼 아주 작은 기대와 함께 초콜릿 껍질을 베어물면, 그 안에는 편의점에서 본 실루엣과 꼭 닮은 장난감이 있었다.

아.

"나기사 군, 아깝네... 이제 이바라만 남았지? 뭐 뽑았어? 아직 시크릿 안 나왔는데."
"...보시다시피."
"전혀 예상 못 했는데, 이바라가 시크릿 당첨이네! 잘 부탁해! 다음에도 올 때 마치 완숙 멜론!"
"아가씨, 아무리 그래도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닌가요..."
"그럼 쥰 군을 더 부려먹어 줄게. 그러면 공평하지?"

그래도 이런 떠들썩한,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어찌어찌 그는 말려들고 있었다. 말려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것을 말려드는 게 아니라 어울리는 거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들을 전략적인 데이터로써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알아가도, 자신에게도 마음이란 게 있는 행세를 해도...

"이바라, 그럼 다음에도 같이 아이스크림 사러 갈래?"

적어도, 예측하지도 못한 곳에서 자각조차 없는 어마무시한 파괴력을 가진 정직함을 실어, 각하, 아니, 이 사람이 자신에게 건네는 손길을 보면, 그게 헛된 기대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보는 이바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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