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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사탕통/팝핑 캔디

[아야세 마요이] 사명의 끝

by 료밍 2022. 4. 8.

글 재활 겸 손풀기 겸 캐릭터 스터디 용으로 쓴 짤막한 마요이 중심 알칼로이드 논커플링. 페더터치->환영비행선으로 넘어가는 사이의 마요이의 심리를 다뤘습니다.

자학적이고 비건강한 의존심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사람을 가리는 캐릭터 해석이므로, 열람 시 주의해주세요.

 

 

 

이것은 저의 행복한 일상. 연습실이라는 낙원은 모형이 아닌 현실.

하나, 둘, 셋, 음악의 박자에 맞춰 저는 숫자를 셉니다. 세 사람이 저의 지도에 맞춰 춤사위를 보이며 실력을 갈고 닦습니다. 흐뭇한 미소가 제 입꼬리에 걸립니다. 히이로 씨는 언제나처럼 몸의 가동범위를 더 넓혀가고 있어요. 마치 천성이 무대 위에 서기 위한 것인 듯, 부연설명에 들어가기도 전에 감으로 깨달아 순식간에 기교를 익혀갑니다. 아이라 씨도 처음의 서투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을 정도로 능숙하게 동작을 해 내는 것이 보입니다. 배우는 데 열의가 가득한 제자는 가르치는 보람도 있지요. 타츠미 씨의 다리 부상도 많이 괜찮아져서, 이제는 조금 더 동작이 큰 안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아요. 동선을 통한 눈속임이 아니라, 본연의 실력이 돋보일 만한 무대 배치를 생각해봐도 되겠죠. 저도 여러분에게 어울리며 이어지는 동작들을 착착 만들어갑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복잡한 안무를 짜 봐도 좋을까요? 네 사람의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만들어지는, 같은 꿈을 품은 무대의 청사진. 그 한 장 한 장이 설계도만으로 남지 않고, 새파란 야광봉들로 둘러싸인 무대 위에서 실현되어 갑니다.

나날이 나아가는 여러분이, 저는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답니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그 모든 발자취를, 성공도 실패도 눈에 새기고 싶어요.

하지만 이 행복도, 언젠가는 끝나는 거겠지요. 끊임없이 나아가는 이들 속에서 혼자만이 멈춰서 있다면.

 

ALKALOID가 전례없이 성공적인 무대를 가졌던 그 날, 여러분은 저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매일 감사해도 모자라다고 말했습니다. 감사받는 게 익숙하지 않다는 말에 하루 한 번 감사하는 날을 가져도 될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에 저는 어쩔 줄 몰랐습니다. 감사받는 것이 너무 기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걸로 생색낼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해 부러 마음을 숨겼습니다. 외려,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저의 주제넘은 존재에 걸맞지 않게 느껴져서 말이죠. 가까스로 사람 구실을 한 정도로 이런 분에 넘치는 말을 듣고 기뻐해도 되는지. 아아, 저는 거기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면 거기에 안주하다가는... 제 존재의의는 사라져 버릴 테니까요.

 

"마요이 선배, 고마워!"

 

히이로 씨는 저를 동료라고 불러주지만, 동료라는 건 동등한 사이에서 성립하는 말. 처음부터 동등하지 않은 것을 동등하게 이야기해봤자, 과분한 환상을 채우기 위해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하게 될 뿐이에요. 아마 제가 한 순간 삐끗하면, 히이로 씨는 제 민낯을 경멸하실까요?

 

"마요 씨가 있으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니까? 그러니까 좀 더 가슴 펴라구우?"

 

아이라 씨는 자신이 백조들 사이의 미운오리 새끼 같다고 낙담하셨지만, 자신이 조금 다른 오리인 줄 알았던 유체는 누구보다도 눈부신 백조가 될 것이니까 걱정 마세요. 당신에게 헤엄을 가르친 진짜 미운 오리는, 성체가 되어도 미운 채인 것도 신경쓰지 않아도 좋고요.

 

"앞으로도 이렇게 하루 한 번, 마요이 씨를 칭찬하는 날을 가지면 어떨까요?"

 

타츠미 씨에게는 숭고한 이상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런 것 따윈 없어요. 단지 주제넘을 정도로 사랑에 목말라, 이 자리의 모두에게 헌신하면서 메워지지 않는 제 쓸쓸함을 채우는 게 삶의 낙이랍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스스로 구원을 찾을 정도로 용기있는 이는 되지 못했나봅니다.

 

따스한 미소와 힘냈다는 격려. 그 감사의 샘은 언제 메말라버릴까요. 제 밑천이 드러나는 순간?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렇게나 상냥한 여러분을 앞에 두고도, 이런 배배 꼬인 생각만을 하는 인간이라 죄송합니다. 언젠가는 바닥날 밑천으로 여러분을 가르치려 들어서 죄송합니다. 스스로를 갈고 닦을 생각은 커녕 칭찬 좀 받았다고 우쭐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께 고맙기에 역설적으로 고마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저는 이 자리에 있고 싶어서, 이 자리에 있을 방법은 그 하나밖에 없어서 마음을 채찍질합니다. 정신을 다잡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고행자처럼 저는 저의 나태와 오만을 벌해야 합니다. 그래도 조금은, 그 온기에 기대고 싶었나봐요.

 

그러나, 그 안락에 취한 대가는 빠르게 저를 물러 찾아옵니다. 죽음을 피해 달아나도 사신은 쫓아오듯이. 언제까지나 조역이어도 상관없는 저는 영화 속 주역을 맡으라는 무거운 제안을 들었습니다. 꿈만 같은 명예로운 자리임에도 사형선고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없는 곳에서도 저는 잘 해나가야 할 터입니다. 아이라 씨와 타츠미 씨가 그랬듯이, 여러분과 동격으로 올라서고 싶다면 필연입니다. 모두가 없는 자리에서 저는 여러분을 욕보이지 않도록, 언제나 완벽하게, 실수 하나 없이 있어야겠지요. 하물며 주목을 받는다면 더더욱. 단 한 번의 실수가 소중한 이들의 평판에 흠을 남길 수 있단 건 너무나도 두려운 일입니다. 제가 당신들을 지휘했다면 당신들이 제게 배운 것들도 퇴색하겠지요. 게다가 여러분의 수많은 격려에 용기를 얻고서도 이렇게 주눅 든다니,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네요. 정말이지 저는, ALKALOID의 모두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런 쓸모없는 인간인가 봅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주역이 아니어도 상관없었어요. 처음부터 저에게 주어진 자리는, 사랑스럽고 은혜로운 동료들의 옆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저에게 여러분은 자리를 주었습니다.

 

여러분께 헌신할 수 있다면 주역이 아니어도 좋았습니다. 저를 받아들여준 소중한 이들과 언제까지나 함께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저는 빛의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몸. 당신들과 우연히 한 배를 타지 않았다면, 아마 함께하는 행복도 누릴 수 없는 추한 마물. 그런 저에게도 보여주어 부끄럽지 않은 것 하나는 있었습니다. 저의 음울한 속마음도, 그것을 만천하에 토해내고픈 갈망도, 그래도 봐줄만하게 만드는 것은, 보잘것없는 제게 하늘이 마지막 자비인 마냥 내린 목소리와 몸짓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감동해 주었고, 이 노랫소리에 실린 음울함을 드러내도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여러분도 저마다, 드러내고픈 것이 있었습니다. 낙오자라는 이름으로 묶인 우리들은 각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목소리를 내면에 품고 있었습니다. 다정한 여러분들이 그 꿈을 펼치려 힘내는 것을 보고, 아, 나의 목소리는 당신들을 인도하기 위해 존재하는구나, 하고 처음으로 존재의의를 부여받았습니다. 그 꿈이 제게도 공유되는 것인 이상, 여러분은 저를 운명공동체라고 여겨주었기도 하고요. 그렇게 아야세 마요이라는 무가치한 존재는, 기적처럼 여러분들의 멘토 노릇을 하게 되어 필요를 얻었습니다. 갈 곳 없는 마음을 목놓아 노래할 수 있는 자리도 얻었습니다. 제 울분과 슬픔이 괴성이 아니라 미성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고해하자면, 여러분을 도운 건 여러분께 보답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어요. 사실은 저의 사심도 조금 있었습니다. 조금이 아니었다면 저를 더욱 경멸할까요. 네, 너무나도 사소하고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욕망이었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곁에 있고 싶어서예요.

저를 따라와 주고, 의지해 주고, 때로는 혼자 할 수 없는 것을 제게 상담해올 때, 저는 삶의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런 제가 필요해 손을 뻗는 모습에서 조금 과할 정도로 기쁘고 안심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자는 언젠가 스승의 손을 떠납니다. 어쩌면 재능을 키워가면서 스승보다 대성할 지도 모릅니다. 당신들도 언젠가는 훌륭하게 장성해 저를 필요로 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물론 그것은 기쁜 일입니다. 제가 가르친 이들이 성장하고 꿈꾸던 바를 꽃피우는 것은, 언제나 바라 마다않은 일입니다. 타츠미 씨는 손이 덜 가는 여러분이 되면 섭섭하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섭섭하지 않아요. 아니, 실은 조금 섭섭해요. 섭섭하고 외로워서, 아마 여러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마음 속으로만 눈물을 흘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여러분의 성장통을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지, 제 몫의 가슴아픔은 아니에요. 명색이 스승 노릇을 하는데, 성장하는 이들을 시기하는 것만큼 추한 건 없어요. 하지만 여러분이 나아가는 만큼, 저 역시도 정진해 나아가는 건 할 수 있지요. 그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여러분에게 언제나 도움이 될 수 있게, 언제나 가르침을 선사할 수 있게 선두에 있는 것. 그것이 제가 여러분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실수 하나 없이, 무대를 위해서라면 완벽하게. 여러분의 모범이며 교본이 될 수 있도록, 흔들림 하나 없이. 올바른 발성, 흠 없이 매끄러운 움직임, 응용할 수 있도록 기본에 충실하면서, 동기가 될 수 있을 정도로는 현란하고 기교 넘치게. 악영향이 되지 않도록 조금의 실패도 보이지 않으며. 그 모든 건 제게 있을 곳을 준 여러분의 곁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기 위해서.

그 모든 것이 무너진다면, 나아가는 여러분 사이에서 뒤쳐진다면, 모든 것은 한때의 환상.

 

그렇지만, 이미 사랑받는 것을 기억한 마음은, 주제넘은 갈망과 배은망덕한 의심조차 품는 법.

만약에 여러분이 더 이상 저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더라도, 저는 이 자리에 있어도 될까요?

스승의 의무를, 선두의 의무를 다한 아야세 마요이에게, ALKALOID에 있는 의미는 있습니까?

고점을 떠나, 남은 것은 내려가는 것뿐이어도, 저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이 주제넘은 마음을 꾸짖어 주세요. 이 자리에서 추락하는 저를 등지세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발목만 잡는 몸이라면, 저를 뿌리치고 나아가 주세요. 혹은, 여러분이 나아갈 때 여러분의 응원과 사랑 속에서 수많은 깨달음을 얻고도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멈춰선 저를 그 자리에 내버려 두세요.

아무것도 아닌 저를 동료라고 부르고 따른 여러분이 있어서 저는 행복했습니다. 마음의 준비는 됐어요. 괜찮아요. 원래 있던 어두컴컴한 곳으로 돌아갈 뿐이니까요. 처음부터 제겐 과분한 행복이었답니다.

 

그렇게 마음먹었는데, 어째서.

저의 실패하는 모습까지도 눈에 새기고 싶다고 하시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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