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야 사나에는 정말 재밌는 캐릭터다. 원작에서 그려지는 방식도, 팬덤에서 해석되고 2차 창작을 통해 묘사되는 방식도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다. 나는 동방풍신록이 막 발매되었을 시기에는 딱히 사나에에게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방지령전이 발매되고 지령전 엑스트라에서 상식에 얽매이면 안 된다는 대사를 하고 나서부터, 왜인가 이 캐릭터를 앞으로도 쭉 좋아하게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대사는 팬덤에 파란을 일으켰고, 사나에와 비상식을 연결짓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시리즈와 각종 매체를 거듭하며 사나에를 지켜본 결과, 나는 코치야 사나에가 비상식적이기에 비로소 완성되는 캐릭터이며, 여기에는 소수자성이라는 개념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체적으로, 코치야 사나에가 지닌 소수자성 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자신의 소수자성을 어떻게 끌어안았으며, 다른 소수자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그녀의 캐릭터를 이루는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코치야 사나에는 태생적인 이레귤러다. 과학에 의해 신비와 전승이 밀려난 바깥 세계에서 신앙과 전통을 지켜왔고, 평범한 인간에게 없는 능력을 지녔던 그녀는, 자신과 같이 신기한 힘을 지닌 자들이 있는 환상향으로 향한다. 환상향에서 그녀는 자신이 특별하지 않음을 깨닫지만, 여전히 환상향 내에서 외부인, 특히나 살아남은 외부인은 희귀하고, 그녀의 사고나 행동은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받는다. 이런 꽤나 복잡한 배경을 가졌지만, 결론적으로 사나에는 환상향에서 '잘 살고' 있다. 잘 살고 있다는 말은, 큰 고민이나 갈등이 없이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도 되지만, '살아남았다' 라는 말도 된다. 단순히 명줄을 지키는 생존이 아니라, 코치야 사나에라는 개인을 지켰다.
그녀는 바깥세계에서는 이능력자, 환상향에서는 바깥세계 출신이라는 이질적인 존재로, 어느 세계에서도 완전히 섞여들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약자는 아니다. 모리야 신사라는 종교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데다가, 인간이 요괴의 습격대상으로 여겨지는 환상향에서 요괴퇴치를 할 수 있는 인간이다. 소외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경외받을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코치야 사나에는 이 모든 것에 불필요하게 얽매이지 않는다. 소수자라는 이유로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생존이나 인정을 위해 강자나 권위자에게 빌붙지 않으며, 자신이 약자가 아닌 상황에서 기계적 평등을 주장하거나, 동정심 혹은 의무감에 기반한 자비를 베풀지도 않는다.
환상향은 힘의 논리에 지배되는 곳이지만(스펠카드 룰은 이를 완화할 뿐이다), 사나에가 환상향의 개인을 대하는 데에 힘이나 지위, 사회적 인식 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바깥 세계의 인간을 어리석다고 여기는 환상향의 거주자들 사이에서 그녀는 당당하게 환상향의 일원으로 나서서 이변 해결과 연회를 즐긴다. 심지어 자신보다 훨씬 실력자이며 환상향의 규칙과도 같은 레이무에게, 순수한 호승심만을 갖고 가짜 술로 한 방 먹이기도 한다. 요괴를 대하는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에게 전승이 힘을 잃은 츠쿠모가미인 코가사는 '가지 같은 우산'이며 격 높은 지옥의 신인 헤카티아는 '이상한 티셔츠'다. 언뜻 보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례하게 구는 듯 보이지만, 그녀의 말들은 종족 등 대상이 지니는 천부적인 특성이나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지위를 겨냥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는 이들을 요괴라고는 인식하고 있지만, 인간과 요괴 사이에 있는 명목상의 적대관계가 환상향의 관습이자 요괴들의 정체성 유지방식임을 고려하면, 사나에의 평등하게 호전적인 태도는 어떤 요괴든 훌륭하게 존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코치야 사나에의 배경 설정에는 이세계 진입물 주인공의 클리셰가 짙게 배어 있지만, 그녀의 사고방식은 그녀의 출신답지 않게 균형잡혀 있다. 그녀는 바깥세계 인간의 가치관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이세계인 환상향의 가치를 긍정하고 그곳에 적응한다. 보통, 이계진입물의 현대인 주인공이 이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대표적으로, 자신이 살던 세계의 사고방식을 이계에 강요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묘사가 있다. 현대에 존재하는 기술이나 지식, '진보된' 사상을 휘두르며, 때로는 감화시키고, 때로는 훈계하는 등, 상위 시선에서 이계를 바라본다. 반대로, 현대 세계를 '썩은 세상'으로 생각하고, 이계를 본래 세계에 존재하는 문제점이 소거된 이상세계로 간주하기도 한다. 어느 관점이든, 한쪽 세계는 추앙되고 다른 쪽 세계는 부정된다. (물론 이런 정통파 이계진입 클리셰 속성을 가진 캐릭터도 동방프로젝트에 존재한다. 우사미 스미레코가 바로 그런 캐릭터이며, ZUN은 스미레코의 이런 면들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코치야 사나에는 바깥세계와 환상향 양쪽을 모두 긍정하지만, 양쪽을 절대적으로 신봉하지도 않는다. 얼핏 보면 그녀는 중용을 취하는 것으로 타협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이나 말에서는 타협이라고 할 수 없는 굳건함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코치야 사나에를 움직이는 제일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사나에는 신을 모시는 자인 동시에 현인신이다. 이는 그녀가 믿을 것이 곧 자기 자신이라는 소리도 된다. 사나에가 행동원리로서 우선하는 것은 세계의 규범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이다. 그녀는 힘이나 다수의 논리에 굴하지 않고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생각해낸다. 그리고 그녀가 신념을 추구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바로 '비상식'이다. "여기 환상향에선 상식에 얽매이면 안되는군요!" 는 사나에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대사이자, 동방프로젝트 팬덤에서는 주로 놀림거리처럼 입에 오르내리는 대사다. 하지만 이 대사야말로 코치야 사나에라는 캐릭터의 본질이다.
상식은 사회 내에서 통용되는 사고방식이며, 주류 사회의 인식이다. 그런 만큼 상식의 폐단 또한 깊다.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약자 및 소수자 인권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상식이 그들을 정상적인 사람, 보통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별과 편견은 대표적인 상식의 폐해다. 환상향은 바깥 세계 기준으로는 비상식의 세계지만, 환상향이 사회인 이상 그 내부에는 환상향 고유의 상식이 자리잡고 있다. '모두를 받아들이는 환상향'이 실은 모두를 받아들이지 않았음은 동방지령전에서 본격적으로 조명된다. 미움받는 요괴들의 격리구역인 지저를 등장시켜서, 환상향에도 차별받는 소수자가 존재한다는 명백한 상식의 폐단을 역설한다. 주인공들이, 그리고 플레이어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그저 또 하나의 이변으로 치부하고 EX 스테이지의 배경인 모리야 신사로 떠날 때쯤, 사나에는 문제의 대사를 말하면서 등장한다.
지령전 EX의 보스는 코메이지 코이시다. 그녀는 환상향에서 천대받는 사토리 요괴이며, 종족을 향한 악의를 견디지 못해서 세 번째 눈을 감아버렸다. 작중에서 상식에 제일 크게 희생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코이시와의 전투를 앞둔 주인공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코치야 사나에는 상식을 버리겠다고 선언한다. 영야초 EX에서 케이네가 모코우를 지키기 위해서 나선 대목을 연상할 수도 있지만, 케이네와 달리 사나에는 코이시를 직접 언급하면서 나서지 않는다. 그러므로 두 캐릭터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이인지는 알 수 없다. 지령전 이후로 둘이 같이 묘사된 바가 없기에 ZUN이 사나에와 코이시 간의 어떤 접점을 의도하고 각각 중보스와 보스로 배치를 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러나 두 캐릭터가 갖는 소수자성을 고려하면 적어도 사나에의 그런 대사가 아주 뜬금없는 맥락에서 나온 건 아니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는 접점이 없기 때문에 사나에의 소신은 온전하게 드러난다. 사나에가 맞서는 것은 당장에 코이시에게 향할 지 모르는 적의나 악의가 아니다. 지저 요괴들을 상처입히고 차별하고 추방하고 끝내 그 존재를 지워버린 환상향의 상식, 환상향의 질서를 빌미로 소수자 차별에 무감각한 채로 머무르는 주인공들의 상식, 그리고 최종적으론 이런 현실을 보고도 그저 방관하거나 동정할 플레이어들의 상식이다.
정리하자면, "여기 환상향에선 상식에 얽매이면 안되는군요!" 라는 대사는, 일차적으로 환상향이 비상식의 세계임을 말하는 바깥세계 인간의 관점이면서, 나아가서는 그 비상식의 세계 안에도 상식은 존재한다는 고발, 그리고 상식이라는 이름 하에 자행되는 불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에게의 선언이다. 이는 어느 세계에서도 마이너리티가 될 수밖에 없는 사나에 나름대로 제 정체성을 찾고 지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믿기 때문에 타인을 존중할 수 있고, 타인을 존중하는 것으로 그녀는 또다시 제 자신을 긍정한다. 바람직한 선순환이다.
ZUN이 코치야 사나에를 가리켜 올곧은 인물, 현대인의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가 아닐까. 설령 아니더라도, 내가 반한 코치야 사나에는 놀랍도록 올곧고 비상식적이고, 그렇기에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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