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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사탕통/팝핑 캔디

[슈미카] 나이팅게일에게 꽃다발을

by 료밍 2017. 8. 31.

슈미카 전력에 주제 '노랫가락'으로 참여. 새벽에 써서 새벽감성이... 이쯤 되면 자가복제 심하다고 생각해버린다(...)

사상누각 때의 목소리가 그림자 같았는데 두번째 앨범 샘플에서는 꽤 목소리 개성이 드러나는 게 제법 신경쓰였다.

작업 BGM은 Foreground Eclipse - In A Night When Her Sorrow Resounds Around





악보와 피아노가 비치된 연습실에 음계를 쌓아올리는 건반 소리를 따라, 아직 정제를 거치지 않은 저음이 그림자 지듯 울린다. 그 소리는 작았다. 고음으로 갈 수록 새된 음성으로 변모해가던 목소리는, 노래를 부르던 소년의 목소리와는 사뭇 동떨어진 영역에 달하려고 하고 있었다. 피아노 의자에 앉은 상급생의 손이 건반 위에서 같은 가락을 되풀이한다. 손의 위치는 오른쪽보다는 왼쪽에 가까웠지만, 소년이 부르는 음은 그보다 더 위를 향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긴 손가락이 좀 더 오른쪽으로 옮겨가자, 목소리의 힘이 빠지며 미세하게 가성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듣고 있는 연주자는 얼굴을 냉엄하게 굳힌 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손가락은 그 앞에 이어질 두 음을 누르지 않았다.


"그만."


연주가 멈추고 슈는 미카를 올려다봤다. 눈높이는 역시 예상하던 곳보다 위, 혹은 아래에 있었다. 노래를 부르다 만 미카는 까마귀 깃털 같은 머리가 눈을 덮을랑 말랑 할 듯, 고개나 어깨나 힘이 축 빠진 모양새다. 조금이라도 그렇게 해서 눈높이를 낮추고 싶었던 듯이, 허리를 낮춰 소년은 아까까지 연주자였던 제 스승이자 유닛 리더와 얼굴을 맞춘다. 그럼에도 눈만은 맞추지 못한 채, 피아노 건반과 악보를 번잡하게 번갈아가며 응시하고 있었다.


"응아앗, 마음에 안 드나?"


잠시간의 정적 후 미카가 입을 열었다. 물음이었지만 당연한 것을 말하는 듯 말끝은 마침표 모양으로 내려갔다.


"이 부분은 조금 손보는 게 좋겠군. 창법이 너무 억지스럽다는 게야."

"미안하데이, 내가 잘 몬해서... 좀 더 잘 올라가믄 좋겠는데."

"아니, 그 문제가 아니야."


손을 젓고는 피아노에 놓인 악보를 집어 눈 앞의 소년에게 보여준다. 색이 다른 두 눈동자는 다른 사람의 눈 말고 눈에 담을 것이 생기자 곧바로 거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손가락으로 아까 피아노로 치던 대목을 가리키며 묻는다.


"네 음역대로는 이 부분을 가성으로 처리하지 않아도 될 텐데, 왜 계속 목소리의 힘을 빼는 것이냐."

"그렇게 하는 게 스승님 무대에는 더 잘 어울리겠제?"


음의 처리가 미숙하다면 그 부분은 조율하면 되는 법이었다. 실제로 미카는 음정을 틀리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미카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꽤나 두루뭉술한 것이었다. 그 편이 무대에 어울리기 때문에. 여태까지 한 치도 미카의 의사를 물은 적이 없는 주제에 슈가 미카와 어울림을 논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지만, 그 대답의 속뜻에 동조 이외가 담기지 않는 것도 그만큼 잘 아는 일이었다.


"내도 이제는 노래 불러야 하니까, 그런 거 잊어뿌면 안되구."


푹 숙인 머리를 긁적이며 미카는 말한다. 나'도'. 그것은 여태껏 무대의 뒤로 밀려나 목소리조차 내지 않던 자리에 익숙했으니 당연히 붙을 말이었다.

두 사람이 되고 나서 그가 노래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세 사람이었을 때도 노래를 부르던 건 두 사람 뿐이었으니, 한 사람이 빠지면 당연히 미카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 것임을 두 사람이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카의 음색은 분명 예전까지 그 자리를 메우던 소프라노와는 차이가 있었다. 음역대도 음색도 분명히 달랐다. 그 부분의 조율이 필요했지만, 정작 그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것을 본 적은 없었길래 둘은 연습부터 해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미카는 서툴게, 그러나 필사적으로 따라왔다. 음에 실리는 것이라면 음정도 가사도 박자도, 한 점도 흔들리지 않는 그 목소리에는 개성도 담기지 않아, 정확히 그림자 같았다. 그리고 그 서투름은 마치, 원래 무대에 있었던, 지금은 없는 자리를 메우기 위해 필사적인 데서 오는 것만 같았다.

첫 라이브는 곧이다. 좀 더 진작에 눈치챘어야 했다. 무대의 주역이었던 한 사람의 빈 자리가 낳은 문제는, 당장에 '최고 걸작'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꿩 대신 닭 같은 말로 취급할 아이가 아니었는데, 여태까지 말도 해주지 않았더니 미카는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닛의 파국이 소통의 부재에서 왔음을, 첫 단추부터 실감하게 되었다. 그런 일은 막아야만 한다.

무엇을 위해서.

그것은 자신의 청춘을 바친 표현방식을 위해서, 그렇게 생각해왔다. 인형사의 자리를 얻고,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얻어 정점에 올랐다. '인형'들 역시도 그 수단이었다. 그는 무대를 사랑했지만, '인형', 아니,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만들어낸 무대를 사랑하는 것과 같을 수 있었던가. 잘 어울리지만 실은 어울리지 않는 옷으로, 이미 허물처럼 벗어던진 옛 목소리로, 누군가를 억눌러가며 만든 무대는 아니었는지. 그것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오롯이 말할 수 있는지.

아니다.

마치, 이것은 어느 극작가가 썼던 이야기 같지 않은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결국에는 길바닥에 버려질 장미를 위해 노래를 부르던 나이팅게일의 이야기처럼.


"그 창법은 그만두도록 해라."


그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슈는 미카에게 말했다. 닿지 않았을까. 미카의 눈꼬리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듯 내려가 있었다. 필히 자신에 대한 실망일 것이다.


"알고 있다. 내로는 안 되는 거."


나이팅게일조차 되지 못했던 새끼 까마귀는 남자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 볼품없는 검정과는 비교되는 샛노란 날개깃이 자랑이었던 카나리아가 떠나고 빈 새장을, 혼자 남겨진 남자가 슬퍼하지 않도록 붉은 장미로 장식해주기 위해서. 찢어질 것 같은 가슴의 아픔은 예쁜 장미로 피어나 그를 기쁘게 해줄 것이라고 까마귀는 굳게 믿었다. 식물은 좋은 노래가락과 노랫말을 들으면 더욱 잘 자란다는 미신이 있었던가. 꾸며낸 목소리로 카나리아의 노래를 흉내낼 때마다, 가시덤불에 감싸인 가슴은 혈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 사람이 기뻐해준다면.

새된 가성을 낼 때마다 목이 막혀올 것 같았다. 무대를 위해 처음 불러보는 노래에 제 목소리는 필요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무대의 막이 단두대의 칼날처럼 일찍 떨어져내렸던 그 날 앞에 나와서 불렀던 노래는, 어쩌면 노랫소리를 잘라낸 칼날 이상으로 존경해 마다않는 스승을 몰락시킨 도화선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에서 목소리를 처음으로 텄을 때,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미카는 자연스레 짐작했다. 설령 그것이 지레짐작일지라도, 그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가슴을 옭아맸던 가시덤불은 목까지 올라와, 노래를 할 때마다 따끔거리는 듯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부르면 예쁜 장미가. 카나리아의 눈동자 같은. 그리고 남자의 무대에도 잘 어울릴. 틀림없이 잘 어울릴. 잘 어울려야만 하는.

하지만 애초에 그 장미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으니.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장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네 목소리가 듣고 싶다."


두 손을 마주잡은 채, 슈는 미카의 눈을 보고 단호하게 전한다. 잘못 끼웠다고 말했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으로, 첫 단추부터 바로잡아 나가기로 했다. 그는 어안이벙벙해하는 미카의 목에 손을 뻗어, 도드라진 목울대를 손가락으로 더듬어갔다. 말보다 애정어린 손길로 더 전해지는 게 있다면, 이 손길이 그의 목을 죄어오던 가시덤불을 치워버릴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내 그러면 노력해볼게."


조금은 전해졌을까. 쭉 숙였던 고개가 올라간다. 정적을 깨고 나온 미카의 말은 생각 외의 긍정이었다. 표정도 가벼운 미소를 눈가에 올리고 있었다. 울 것 같이도 보이는 그 미소는 한 겹의 설움을 벗어 조금 후련해진 느낌이었다.


"그래. 잘 생각했구나. 그러면 이 부분을 다시 해 보겠느냐."

"으, 응."


슈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차리고서 곡조를 연주했다. 그 위로 미카의 목소리가 어우러진다. 그림자와 같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쫓는 것이 아닌, 그 본연의 말끔한 저음이 목에서 흘러나왔다. 여전히 조금 미숙한 구석은 있지만, 다음에는 칭찬을 해 주자. 마음먹고서 끝까지 손을 떼지 않고 피아노를 친다. 이번에는 끊기는 일 없이 곡의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창가에서 노래하는 것은 카나리아가 아닌 새끼 까마귀. 볼품없어 보이던 소복한 검은 털은 빛을 받으면 푸르게 물드는 자랑. 남자는 카나리아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까마귀의 심장을 쥐어짜내 장미를 물들이는 일 따위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남자는 색색의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까마귀의 목에 걸어주었다.

열심히 노래한 네게 꽃다발을. 피투성이가 된 네 가슴을 꽃잎으로 예쁘게 감싸주고, 장미덤불보다 어울리는 푸른 수국과 프리지아의 휘장을 달아주자. 피 대신 흐르는 사랑으로, 이형이라도 꽃을 피워보이자. 연습실에는 다시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늠름하고 굽힘 없는 미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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