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파레 글은 처음...인데 언젠가 써보고 싶은 것이라 써보는 마루야마씨 이야기.
이런저런 날조 있음 주의
"으응, 너무 먹으면 역시... 관리엔 안 좋지?"
마루야마 아야는 오늘도 학교 근처 라이브하우스에 딸린 카페테리아의 디저트 메뉴 앞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달콤한 색으로 시선을 유혹하는 열량 덩어리들을, 규격의 몸을 유지해야 할 연예인인 자신이 쉽게 꿀꺽 넘겨서는 안 되는 것.
"샐러드로 주세요."
"응? 오늘은 마카롱이 아니고?"
"아, 그게... 오늘은 너무 단 건 조금?"
일부러 먹음직스러움이 눈에 보이는 케이크며 마카롱을 떠나, 드레싱 하나 없는 치킨 샐러드를 시키기로 결정한 것은, 아야 나름의 프로의식의 발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하루하루는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가까스로 잡은 정식 데뷔를 헛되이 할 수는 없었던 만큼 매사에 노력을 할 뿐이었다. 연습생으로서의 마지막 기회, 그리고 데뷔를 위해 필사적으로 한 다이어트. 그 연장선상이 계속 이어질 뿐이다. 자연스럽게, 이제는 몸에 꼭 맞는 것처럼. 그리고 노력은 마루야마 아야의 본받을 만한 특기였다.
그리고, 본인이 자각하지 않는 동안에도 노력하는 사람을 본받고파하는 군중은 생기기 마련이었다.
"마루야마는 역시 많이 안 먹네."
"아, 원래 소식하거든." 거짓말이다.
"아이돌이라서 체중관리 하는 거야? 지금도 말랐는데."
"에이, 연습생 때부터 이렇게 먹었는걸." 연습생 시절엔 좀 더 통통했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원래 좋아했던 오므라이스와 햄버그 정식 대신 야채 스틱이 차지하게 된 도시락통은, 그 볼품없음과는 대조적으로 이목을 끌었다. 무대에서 노래한다는 입장을 자각하게 된 이후부터, 마루야마 아야에게는 식사 시간만 되면 들리는 소리들이 있었다. 연습생 시절에도 자기 이름 검색은 철저했으니 자신에 대한 이런 반응이 귀에 하나하나 들어오는 것도 익숙한 일이다. 단지 이제는 정식 데뷔를 했고, 우여곡절 끝에 자리를 잡고 히트곡도 하나 냈겠다, 하나둘씩 알아봤다는 듯이 말을 걸어오는 이들도 생기기 마련이라, 이런 회화 자체는 앞으로도 흔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한껏 멋을 낸 TV 속, 무대 위의 모습 바깥에서만큼은 말 걸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했는지, 연예인이란 이유로 특별히 관계망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일도 없었을 뿐이다.
"나도 마루야마처럼 날씬해지고 싶어. 마루야마는 좋겠다. 오늘 점심 굶을까?"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영양이 모자라서..."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녀가 들은 칭찬이 진심인 것만큼이나.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듣는 것은, 쑥스럽지만 아이돌 일을 하다 보면 익숙해져야 할 과제였다. 겸손한 마루야마는 데뷔한 지 몇 달이 지나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 줄 몰랐고, 아마 몇 년이 지나도 그를 모를 품성이었다. 하지만, 아야의 친숙한 면모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도 사람들 사이에 '우상'의 모습을 섞여들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으레 아이돌이라는 입장이 그렇듯, 사람들이 제일 먼저 주목하고 닮고 싶어하는 면모도 눈에 보이는 것이기 마련이었다.
"평소에는 셀러리만 먹고 있는데, 그래도 1kg 빠졌나..."
"너 그러다가 쓰러진다? 마루야마는 연예인이잖아. 연예인은 다 트레이너한테 관리받으면서 특별 식단으로 먹는다고."
"아니, 딱히 그렇지는 않아." 이것은 사실이다. 그럴 정도로 요령있는 소속사는 아니었으니까.
그 정도로 체계적인 기획사였다면 자신이 음정을 틀릴까봐 립싱크를 시키겠다는둥 하지도 않았겠지만. 그렇게 반박하고 싶은 마음을 속으로 삭히기에 충분한 걱정이 아야의 마음 속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닮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만큼은, 아이돌의 숙명으로서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자신조차도 명망있는 아이돌, Marmalade의 아유미 씨를 따라서 아이돌이 된 몸이니만큼, 누군가에게 새로운 꿈, 새로운 롤모델이 된다는 것이 아이돌에게 얼마나 큰 명예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자신을 닮고 싶어하는 것도 기뻐해야 할 일이었고, 그것이 자신의 무던한 노력 중 하나에서 왔다면 기뻐해야 하지만, 아야에게는 영 켕기는 것이 있었다.
"나도 마카롱이나 딸기 타르트 같은 거 자주 먹는걸."
"하지만 아야쨩은 한 번도 우리 앞에서 먹는 모습 보여준 적 없잖아?" 그것은 사실이다. 카페테리아에 갈 때 말고는 잘 먹지 않으니까.
그 말에는 아야도 대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거짓말을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딱히 숨길 필요 없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 역시도 아야의 특기는 아니었다. 아야는 고개를 가볍게 모로 저으며 그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부끄러울 일도 아니었는데, 자신은 왜 이렇게 이 말에 대답을 주저하는 걸까.
"그러게. 스케쥴 때문에 밥을 잘 못 먹긴 하네..."
"마루야마 너 악덕 소속사 같은 데서 밥도 안 챙겨주고 그런 건 아니지?"
"아니야! 그래도 스태프 분들도 잘 챙겨주시고..." 이건 확실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이유에는 소속사를 두둔하고픈 마음은 한 조각도 없었다. 오히려 그것보다도 신경쓰이는 것이 있었다.
"너희들, 진짜로 내가 잘 못 챙겨먹어도 너희도 못 챙겨먹으면-"
그렇게 운을 떼는 순간, 밥을 같이 먹으려 붙인 책상 주위에 모여있던 아이들의 눈이 제게로 쏠리는 걸 아야는 볼 수 있었다. 걱정 섞인 눈과 몇 번의 토닥임과 함께,
"걱정 고마워, 하지만 예뻐지려면 고생하는 것도 당연하잖아? 나는 이해해."
"마루야마도 고생이 많네. 그치만 우리도 힘내자."
"맞아. 연습생 때 내가 열심히 응원해준 만큼, 이젠 내가 아야쨩한테 다이어트 응원 받는다고 생각하면 힘이 나"
무엇을 위해 힘낸다는 거지? 어째서 이런 흐름이 되어버린 거지?
그 의문이 끝나기도 전에 점심 시간이 끝나는 종 소리가 울리고, 반도 먹지 않은 도시락통들의 뚜껑들이 일제히 덮혔다.
라이브하우스 앞 카페테리아. 여전히 마루야마 아야는 뻔한 식욕과 정답이 향하는 메뉴판을 앞에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프로모션 공연을 위해 몇 번 리허설을 갖고 나니 머리가 조금 띵했다. 배고픔과는 다른, 당분을 원한다는 신호였다. 밥 배와 디저트 배는 따로라는 속설도 있었던가, 스포츠 드링크와 평소에도 먹는 간단한 식사로도 충분할 자리를 굳이 열량 덩어리로 메우고자 하는 나쁜 생각. 그것을 오늘도 아야는 견디고 있었다.
"여기, 과일 타르트랑 마카롱 한 줄로 주세요. 아, 2인분 맞아요."
그 때, 아야의 옆에서 불쑥 주문을 정해버리는 사람이 있었다.
"마야쨩?"
"아야 씨가 또 고민하고 있길래 제가 대신 주문해버렸지 말입니다. 열심히 두드리고 나면 당분이지요. 같이 먹지 않겠슴까?"
"아니, 나는..."
"오늘은 제가 쏘는 걸로 할 테니까 주저하지 말죠."
평소의 주체 못하는 너털웃음과 함께, 같은 파스파레의 드러머인 야마토 마야는 어느새 마카롱과 케이크가 얹힌 트레이를 들고 아야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특유의 호기로운 웃음이나 허리에 맨 체크남방 등을 숨길 생각도 않은 채, '어쩌다 스카우트된 일반인'의 이미지를 꿋꿋하게 미는 - 혹은, 그런 이미지로 다가온다는 자각조차 없다는 표현이 더 옳을 - 그녀는, 얼핏 아야를 비롯해 연예계 짬이 꽤 된 멤버들에겐 돌발스러울 선택을 기꺼이 하곤 했다.
"아야 씨, 당 떨어지면 연습하기 힘듬다. 첫째는 수분 보충, 둘째는 당 보충이지 말입니다."
"마야쨩, 신경써줘서 고마워. 하지만 이렇게 먹으면 수습이..."
"수습이라뇨?"
가끔 이 사람은 이렇게 연예인이란 자각이 없어서 되겠나, 하고 아야는 생각했지만, 치사토나 이브와 같은 경력자 멤버들에 비하면 '연예인 느낌'이 떨어지는 자신이 이 말을 하는 것도 우습다 싶었다. 좀 더 연예인답게, 의식하면서 아야는 휴대폰 거울을 보며 묶은 머리와 앞머리를 정리하고는 말을 이었다.
"나, 다이어트 중이잖아."
"에이, 한 번 정도는 괜찮슴다. 그리고 아야 씨는 오히려 말라서 더 먹어도 상관없어요."
"그, 런가... 으으... 모르겠다, 그치만 아이돌 표준 아니야?"
"아이돌 표준이라고 해도 저는 잘 모르겠지만요. 저는 일반인 출신이라서 소속사에서 기대를 안 하는진 모르겠지만..."
"뭐, 마야 쨩은 평소에도 야채 스틱만 먹고도 잘 버티니까... 그리고 그런 말 하지 마. 마야쨩은 좀 더 자신을 가지면 좋겠어."
"좋아하니까요, 야채? 야채도 디저트도 좋아해서 먹는 거면 상관없지 말입니다. 자자, 아야씨, 주저 말고."
채식을 좋아한다. 아야는 마야의 말을 들으면서 아이돌이 되기에 타고난 조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똑같이 다이어트식으로 야채 스틱만 먹어도, 한 사람은 좋아서 먹고 다른 한 사람은 살을 빼기 위해서 먹는다. 그런 체질이며 취향도 타고나는 거라면, 아이돌이 되기 위한 천부적 재능에 부합하는 것일까. 듣고보면 세상에는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사람이 있는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아마... 그런 체질이었지. 연습생 시절의 혹독한 다이어트를 회상하며 아야는 머리를 짚었다. 하필 이럴 때 배까지 꼬르륵 소리를 낸다.
"아, 아야 씨, 역시 배 고픈 거였슴까... 자자, 아무것도 안 먹으면 다음 리허설 때 힘들어요? 어서 먹어 버립시다."
이렇게나 무신경한 배려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타이밍이 나빠서 그 말은 마치 악마의 속삭임 같았다. 그래도 동료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었기에 자기 몫으로 주어진 과일 타르트 조각에 포크를 얹고, 눈 딱 감고 한 입을 먹었다.
"으으, 맛있어... 맛있어서 더 분해."
"맛있으면 그걸로 된 거니까요."
"마야쨩은 그 맛있는 게 채식이잖아. 타고난 것 같아서 부러워..."
"근데 기본적으로 영양소가 부족하면 안 되니까 치킨 샐러드 정도는 먹지 말입니다."
"영양소라..."
아야는 과일 타르트를 조심스럽게 떠 먹으면서, 당분이 머리에 돌기 시작해 조금 돌아가게 된 머리로, 며칠 전 학교 점심 시간의 말들을 떠올렸다. 이렇게 다이어트에 대해 고민하는 자신이, 자신을 닮아서 다이어트를 하는 아이들 앞에서 영양소 소리를 해도 될까, 하고.
"요즘은 누구나 다 다이어트를 하네, 생각해보니까..."
"언제는 유행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슴까. 다들 하는 거지요. 운동이라면 저는 다이어트보다는 다른 걸로 하지만요."
"다른 경로라면?"
"기자재 옮기면서 생기는 생활근육이나... 생존주의 레저 같은 거요."
"우와..."
그 말을 시작으로, 마야는 아야에게는 생소할 생존주의 철칙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야는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역시 듣는 것만으로 칼로리가 소비될 것만 같은 활동들이었다. 평소라면 조금 신기한 취미겠거니 하고 놀랄 이야기에 자신이 놀라는 이유조차도, 아야는 오늘따라 왠지 씁쓸했다. 그리고 이 씁쓸함은 역시 과일 타르트와 마카롱의 단 맛이 아니면 채워지지 않을 허기와도 통하고 있음을 아야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말이죠, 후헤헤, 후헤헤헤... 이 레이션이라는 게-"
"마야쨩."
"네? 앗! 저 혼자 너무 떠들어버렸네요, 미안합니다!"
"앞으로도 괜찮으면 같이 디저트 먹을래?"
"무, 물론이지요!"
그래도 이 시간이, 무언가에 쫓기듯 몸을 움직일 때보다는 머리가 돌아가는 시간이었고, 제 옆의 털털하고 느긋한 동료의 태도도 그 안심감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아야는 약간의 달콤한 미래를 기약했다.
하나사키가와 고등학교의 쉬는 시간은 별다를 것 없는 흔한 풍경이다. 성적 얘기만큼이나 연예인 얘기, 다이어트 얘기 정도는 흔한 축에 끼는 이야기였기에 달리 그것을 귀담아들을 이유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마루야마 아야는 그 이야기들을 지나칠 수 없었다. 그것은 10분 단위로 검색 엔진이며 SNS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볼 정도로 팔랑귀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 빈혈인가봐." 사실은 자신도 연습생 시절에 온 적이 있다.
"그러게 내가 작작 좀 굶으라고 했잖아. 너 그러다가 쓰러진다."
"그치만 마루야마랑 다니면 내가 비교되잖아..." 그럴 의도는 없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돌아오는 길에 들은 말에, 아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분명 자신은, 데뷔하기 위해서 살을 뺐었다. 그것은 생존과도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데뷔할 수 없었으니까. 그게 아이돌다운 일이니까. 데뷔해야만, 아이돌다워져야만 했던 이유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꿈을 주고 싶은 존재가 되고 싶어서였다. 그런 그녀에게 몇 킬로그램 쯤의 감량은 오히려 성취이고 노력의 증거였다. 노력으로 이 자리에 오르는 것은 사람들을 고취시켜야 할 것인데, 자신을 닮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오히려 그들을 좀먹어가고 있다.
꿈을 줘야 할 우상, 아이돌인 자신은, 오히려 비교대상으로 군림하면서 또래 아이들에게 절망감만을 가져오고 있었던 것인가? 상처만을 주는 성취를 따르게 하고 있을 뿐이라면, 자신의 존재는 잘못된 것인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아야는 그저 매점에서 초콜릿 몇 개를, 양호실에서 영양제 두어 알을 챙겨서 다시 돌아올 뿐이었다.
"저기, 있잖아. 몸 안 좋다며? 고생하는 것 같아서... 이거라도 먹어."
"응... 고마워. 근데 초콜릿 먹으면 살 찌지 않아?"
"빈혈에는 초콜릿이 좋으니까. 무리하면 쓰러진다?"
"거 봐, 마루야마도 그렇게 말하잖아. 적당히 하고 좀 먹어."
"응. 꼭 먹어야 해. 지금은 다이어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건강이 중요하니까."
"나 안 죽어. 어디 안 가. 그래도 고마워."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에게 있으면서 이런 알량한 도움밖에 베풀 수 없는 자신이, 데뷔 이래로 처음으로 싫어지는 아야였다.
그리고 결국 찾아온 체육 시간에도 그 아이는 많이 지친 기색을 보였다. 평소에도 몸이 썩 건강한 편인 아이는 아니었기에, 다들 특별히 예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광경에 스스로가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한 사람만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야는 어깨에 걸린 친구의 팔보다도 무거운 책임감이 등 뒤를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초콜릿과 영양제를 주고, 양호실까지 데려가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기에는, 그 근원에 '꿈'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조차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데뷔할 수 없었으니까. 자신도 이들처럼 뼈와 살을 내주며 노력했으니까. 그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스스로에게 딱 잘라 말하기는 너무 비참했다.
그래도 꿈을 주는 것은 자신의 생업. 자신을 보고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는 것이 아이돌 마루야마 아야가 바란 것인데. 스스로를 부정하고 '마루야마 아야'처럼 되기 위해 스스로를 깎아가게 만드는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부끄러움을 참고서 가까스로 올라간 체중계 눈금이 정상체중과 저체중의 경계에 겨우 자리했을 때 마침내 떨어진 데뷔 신호. 그 모든 기억들이 스쳐지나가는데도, 그 이상으로 지금의 자신이 부끄러워서 아야는 견딜 수 없었다.
한동안 아야는 마야와 함께 연습 시간이 끝나면 디저트 가게며 카페를 돌아다녔다. 기분전환 차, 고민도 털어놓을 차 같이 다니기 시작한 것이지만 어느새 익숙해졌다. 좋아하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깨작깨작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아야도 어느새 편한 마음으로 케이크나 타르트를 떠 먹기 시작했다. 여전히 켜 보는 휴대폰의 뉴스 사이트 등지에는 다이어트 광고가 심심하면 뜨는 수준이었지만, 왠지 오늘따라 아야는 그 광고에 반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휴대폰을 팍 엎고 케이크를 크게 한 숟갈 떠서 입에 집어넣었다. 마야는 놀란 눈으로 아야의 소소한 일탈을 바라보았다.
"아야씨, 오늘은 무슨 일 있었어요?"
큰 마음 먹고, 아야는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연습생 때부터 어울리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 중 한 친구와는 함께 다이어트를 하기도 하던 사이였고, 자신이 데뷔한 이후로 그 아이는 계속 무리를 하면서 살을 빼겠다고 몸을 혹사시키고 있었다는 것도.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계속 타일렀던 것도.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보면서, 자신을 닮아서 날씬해지겠다고 식사를 거르고 있는 것도.
"아야 씨는 그게 고민이군요."
"사실 다이어트보다도 더 신경쓰이는 게 있다면 그거야. 다들 날 보고 있으면 나랑 비교되지 않겠다면서, 혹은 나처럼 되고 싶다면서 식사를 거르고... 그렇게 안 하면 큰일나는 것도 아닌데, 왜 다들..."
"그래도 현역 연예인이 바로 옆에 있으면 신경이 안 쓰이긴 힘들지 말입니다. 저도 당장에 아야 씨나 다른 멤버들 옆에 있으면 신경쓰인다고요. 비교되는 거 아닌가 하고..."
"그래?"
평소대로라면 너무 자학하지 않아도 된다고 용기를 북돋아주었을 아야지만, 이번에는 그 말을 꽤나 신경쓰기 시작하는 낌새였다. 자신의 어깨를 내리누르는 무게가, 연예인, 아이돌이라는 이름이, 지금은 무엇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듣고보니 저도... 일단은 일반인 출신이라도 아이돌이 되니까, 슬슬 신경쓰는 사람들이 생겼슴다."
"거봐, 마야쨩은 기죽지만 않으면 충분히 예쁘고, 아이돌에 어울리는 사람이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금 와서는, 아이돌에 어울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아, 그거에요, 그거, 요즘 주변에서 렌즈 끼던 분들이 안경을 쓰기 시작한 겁니다."
안경?
생각해보면, 마야가 아이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안경 벗은 얼굴이 예뻐서였다. 공식 앨범 자켓에서도, 화보에서도, 야마토 마야는 안경을 쓴 적이 없었다. 처음 제안한 것은 치사토였고, 소속사 아이돌들의 복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음에도 프로 배우인 치사토에게는 꿈쩍도 못하는 비굴한 소속사 스태프들은 부랴부랴 그 의견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마야의 맨얼굴을 셀링포인트로 삼고 있었다. 마야 자신도 그저, 아이돌이라면 예뻐야 하니까 어쩔 수 없나, 하고 반쯤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마야에게서 안경을 본받을 점으로 꼽은 사람들이 있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은 무슨 변덕이었을까. 아야도 그 점에 흥미가 동했다.
"그야 무대 밖에서는 안경 쓰니까요?"
"듣고보니 그렇네. 요즘은 예능에선 쓰고 나와도 된다고 하니까."
"...치사토 씨는 안경을 벗는 쪽이 예쁘다고 해 주셨지만, 아이돌이 되고 나서 안경을 쓰는 사람들이 늘었슴다. 렌즈 대신에. 자주 가는 안경점에서도 빨간 반무테 안경이 잘 나간다고 하더라고요. 아, 파스파레 공식 앨범자켓이나 화보에서는 물론 안경 안 끼지만, 저는 일반인 스카우트라는 화제성이 있으니까 파스파레 전에 백세션 할 때 사진이 좀 돌아다녔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걸 보고, 안경 끼는 것도 잘 어울린다고... 그러고 나선 토크쇼나 예능 같은데선 안경 쓰고 나오게 됐슴다. 눈이 탁 트여서 좋지 말입니다."
마야는 조금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안경테를 코 위로 올리는 시늉을 했다. 아야는 그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듣고보니, 안경을 쓴 마야에게서는 안경을 벗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여유나 능청스러움 같은, 좀 더 본연의 매력이 돋보이는 것 같았다.
"고백하자면 저는 아직 렌즈가 불편하지 말입니다. 무대 의상도 처음엔 팔랑팔랑한 게 드럼 칠 때 방해가 되어서... 뭐 그 땐 라이브 할 예정도 없어서 그랬겠지만. 그래서 그 난리를 겪고 나서야 가까스로 소매나 프릴도 줄인 검다. 그래도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더라고요. 사복 센스 생각하면 그 편이 어울린다고도 하고. 후헤헤, 너무 일반인 같아서 그런 거란 소리도 듣지만, 그만큼 절 친근하게 느끼고 절 따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기고- 안경을 끼는 게 '덜 예쁜' 거라고 생각을 안 하게 되었다나? 그렇게 된 검다. 안경 유행."
"친근함... 치사토쨩도 그렇게 말했어. 내 매력은 친근함이라고... 그 점 때문에 오히려 닮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까? 가까이 있는 사람이면서, 또 무대 위의 화려하고 멋진 사람이기도 하고. 그래서 비슷하게 되고 싶은 거야. 그런데 나는 마야쨩이랑 달리 사람들에게 새로운 유행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나를 닮으려고 고생만 시키고 있고... 그치만 나도 다이어트를 했으니까 겨우 아이돌 데뷔를 할 수 있었는데."
아야가 그렇게 말하며 시무룩하게 케이크 접시 가장자리만을 포크로 긁고 있자, 마야는 처음 아야와 디저트를 같이 먹었을 때처럼 아야의 등을 톡톡 치고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아야 씨는 아이돌의 혼을 가진 사람임다. 대중들에게 꿈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가짐, 그것을 진심어리게 전하는 건 아야 씨의 주특기 아니었슴까. 그걸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전하고 따르게 하는 게 아야 씨가 지닌 카리스마임다."
"그런가. 나, 내가 가진 힘을 너무 과소평가했는지도..."
"그러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맛있는 건 같이 나눠주기도 해요. 그게 아야씨가 원하는 모습이면 그렇게 하면 됨다. 소속사에서 데뷔 안 시켜준다고 으름장 놓던 것도 옛날이고, 지금의 아야 씨면 좀 배짱있게 굴어도 될 것 같지 말입니다."
그리고, 마루야마 아야는 그 날로 다이어트를 그만뒀다.
폭식을 한 것도 아니다. 특별히 더 많이 먹은 것도 아니다. 단지 예전, 맹렬하게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서 살을 빼던 때처럼 조금 먹기를 그만둔 것 뿐이었다. 원래 좋아했던 오므라이스와 햄버그 정식을 도시락에 넣기 시작하고, 복스럽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먹으면서도 그저 웃어보였다. 맛있는 반찬은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예정보다 일찍 도시락통의 뚜껑을 덮는 게 익숙하던 점심 모임도, 어느새 화기애애하게 서로 반찬을 나눠먹고 한 그릇 비우는 분위기로 탈바꿈했다.
"마루야마 이렇게 식욕이 왕성한 애였구나..."
"미안해! 이때까지 숨기고 있었어서. 근데 말야, 나 사실 먹는 게 너무 즐거워!"
"마루야마가 그렇게 먹어도 살이 안 찌면 나도 뭐..."
"살이 안 찌는 문제가 아니야. 일단 먹어야 살지."
그렇게 하루이틀이 지나다 보니, 아이돌 마루야마 아야도 좀 더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연습을 할 때도 기합이 팍팍 들어가는 것 같았고, 무대에서 노래를 할 때도 좀 더 동작에 힘을 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방송 중에 먹는 이야기, 디저트 이야기가 나오면 적극적으로 기호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를 가지고 무대의상에 걸맞는 마카롱 소녀라고, 귀엽다고 온갖 반응이 난리였다. 그녀를 바라보며 꿈을 품던 자들은 어느새 살을 빼기보다는 마루야마 아야가 입에 담는 디저트 기행을 가면서, 마카롱 소녀의 세계를 맛볼 생각 만반이었다. 소속사도 이러한 방향을 크게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신곡 발표가 오기 이전에는.
신곡 무대를 며칠 앞두고, 리허설을 준비하는 파스파레의 대기실에는 비상사태가 울렸다. 새로 만들어온 무대 의상이, 지금의 마루야마 아야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소식이었다.
"으, 이거 안 들어가네? 나 그만큼 쪘어?"
"치수가 잘못 온 걸거야, 걱정하지 마, 아야쨩."
아담한 체구에는 걸맞지 않게 침착함과 연륜을 보이는 동료, 베이시스트 시라사기 치사토는 갑자기 당황해버린 아야를 달래고 있었다. 그 터무니없는 아동복 사이즈의 옷이 나 말고는 들어갈 리가 없잖아. 치사토는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 이를 갈았다. 아무리 무능한 회사라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니, 빨리 성공해서 탈출하거나 소송하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거 치마 너무 짧지 않아? 기타로 가리라는 건가?"
"히나 씨가 키가 커져서 그럴 거예요."
"응... 그런가? 아야쨩은 어때?"
"쉿, 히나 씨... 앗, 이거 왠지 바지가 너무 꽉 낌다?!"
이 와중에도, 다른 멤버들도 무대 의상이 맞지 않아 한창 소란이었다. 코디네이터들에게 이야기를 해 봐도 치수 잰 대로 만든 옷이라느니, 안 맞다면 자기관리 소홀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도 소란스럽고 멤버들도 빨리 나오지 않자 소속사 스태프가 대기실에 호출을 받고 찾아오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결국 회의실로 불려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저기요, 이거 옷 치수가 안 맞아서..."
"히카와 씨, 야마토 씨... 그리고 마루야마 씨."
멤버들을 바라보는 스태프의 눈초리는 냉정했다. 아야는 침을 꿀꺽 삼키고 긴장으로 곤두선 몸의 자세를 몇 번이고 고쳤다.
"당신들은 체형 관리에 신경써주셨으면 합니다.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의상이 맞지 않는다니..."
스태프의 말이 떨어졌다. 비즈니스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는 듯한 무미건조한 말씨로.
"담당 아이돌들의 치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쪽의 불찰이라곤 생각하시지 않으시나요?" 그 말에 바로 치사토는 눈을 치뜨고 냉정하게 반박했다.
"단순히 그런 문제라면 상관없겠지요. 하지만 시라사기 씨와 와카미야 씨를 제외하고 갑자기 의상이 안 맞을 정도로 체형이 바뀌었다는 것은, 분명 당신들의 식습관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 그게, 저는 잠깐 레이션이 먹고 싶어서 그만."
"난 키도 컸는데. 이제 언니랑 진짜 비슷해질지도?"
이 와중에도 마야는 머리를 긁적이며 농담에 가까운 변명을 입에 담고 있었다. 그것 역시도 그녀 나름대로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시도였겠지만. 그 옆에서는 히나가 까불거리면서 자신의 아주 약간의 성장을 과시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분위기 파악을 빌미로 누군가는 말렸겠지만, 딱히 누구도 히나를 말릴 생각은 없었다.
"됐어요. 야마토 씨랑 히카와 씨는 그래도 입을 수 있는 수준이고, 마루야마 씨."
"네."
올 것이 왔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야는 대답했다.
"연습생 시절에 마루야마 씨를 데뷔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체중관리를 했잖아요. 데뷔하자마자 또 요요현상이면 자기관리가 부족한 거죠. 인지도가 좀 생겼다고 해이해지신 건 아닌가요?"
그 눈초리 앞에서 아야는 다짐이 재차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네가 원하는 대로 상처주지 않는 꿈을 보일 방법은 없단다. 그 전 곡의 마카롱 장식 대신에 달린 옷의 꽃장식들이 하나둘씩 아야를 도발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싶었다.
"그렇게 말해도 어차피 정상체중 범위 안 아니잖슴까, 오히려 근육량을 생각하면 저체중이었고..."
"야마토 씨는 연예계의 상식을 여전히 너무 모르시는군요."
"아야 씨에게 너무 험하게 말하는 거 아닌가요? 단련된 몸을 잘못 만든 무구에 맞추는 건 전장에 대한 도리가 아니에요!"
"맞아! 우리는 한창 쑥쑥 자랄 때인데, 그깟 옷쯤 하루이틀 지나면 안 맞는 건 흔한 일 아니겠어? 공식 프로필이 거짓말을 안 하려고 해도 키는 줄일 수 없잖아?"
"이브 쨩, 히나 쨩, 괜찮아."
동료들을 잠시 뒤로 물러나게 하고서, 아야는 소속사 스태프 앞에 나섰다.
"이대로 무대에 나가면 안 되는 건가요?"
그리고 단호하게, 그 말을 전한다.
"정 나가고 싶다면 마루야마 씨를 생각해서라도 다음 신곡 발표를 늦출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하는 배려입니다."
"저는 미루지 않고 이대로 나가고 싶어요. 왜냐면 그게 제 친구들을 위한 배려니까요."
"마루야마 씨?"
"저, 아이돌이고, 연예인이지만, 동시에 학생이기도 해요.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인지도도 제법 있고, 그래서 학교에서도 다들 알아봐주고 절 닮고 싶어해요. 밥도 같이 먹고."
차근차근, 조목조목, 평소에 '실전에 약하다'라고 일컬어진 마루야마 아야라고는 믿기 힘든 침착함, 그리고 진솔함으로 아야는 말을 이어나갔다.
"얼마 전에는 친구가 빈혈로 고생했어요. 저를 닮고 싶어서에요. 저는 그래도 연습생 시절에 춤 연습을 해서 기초체력은 있지만, 그 친구는 원래 몸도 약한 친구였어요. 점심시간이면 늘 같이 밥을 먹는데, 제가 다이어트 식단만 먹는 걸 보고 따라하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개인의 컨디션 악조로 인한 사고를 자신이 짊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마루야마 씨. 오히려 마루야마 씨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싶다면 장기적으로는..."
"아이돌이니까 짊어져야 하잖아요? 제가 아이돌이 된 이유는 사람들에게 꿈을 주고 싶어서예요. 아이돌은 길을 제시하고 우상이 되어주기 위한 존재인데, 그런 제가 친구를 쓰러지게나 만들고 그걸 보고만 있어선 안 되지 않나요? 날씬해져야 한다는 강박을 주는 건 꿈을 꾸게 하는 게 아니니까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행복한 꿈을 꿀 수 있게 해 줘야죠. 저희 첫번째 데뷔곡 옷 컨셉도 마카롱이었잖아요. 저희는 마음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평소에도 결코 순하지는 않았던 눈매에 오늘따라 힘이 실려있었다. 그 마루야마 아야가 그렇게까지 말한다. 여태까지 실전에 약하다는 말을 빌미로, 그 우직함을 빌미로 좌지우지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아이가 이렇게까지 강단있게 나오는 것에 대단하신 관계자 되는 분도 꽤 당황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서 뭐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파스파레는, 점점 이 소속사가 통제하기엔 구색맞추기도 힘들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아, 그러면 저는 다음엔 안경 쓰고 나와도 되나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마야 역시 끼어들어 본다.
"마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이내 체념한 듯 스태프가 문을 쾅 닫고 나가자, 회의실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하여간 무능한 게 입만 살아서는..."
"치사토쨩, 미안.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아야쨩, 정말 잘 했어."
치사토는 아야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에 뒤이어 다른 멤버들도 아야에게 그 품을 덮어왔다. 잘 했다, 마루야마 아야의 결코 길지는 않은 아이돌 인생, 이렇게 후련한 적은 처음이었다.
정말 잘 했다고, 서로 부둥켜안은 채로 잠시간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찰나, 그들은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근데 우리 이제 어떻게 하지? 이렇게까지 해놓고 옷을 새로 준비해달라고 하긴 뭐하지 않아?"
"모든 건 그런 아동복 사이즈의 옷을 준비해온 쪽이 잘못이니까... 그래도 내가 어떻게 해 볼게."
"리사찌한테 부탁해볼까? 리사찌는 옷도 잘 입으니까."
"무대의상은 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연극부 쪽에서 사비로 조달해야 하나?"
"그러면 다 같이 만들어보는 건 어때요? 이렇게 허그해도 편할 수 있는 옷으로!"
"근데 여기 재봉 할 줄 아는 사람 있어?"
"제가 생존술의 일환으론 좀 배운 게 있지만요."
"아, 그래도 연예인 화보 찍을 때면 대충 사복 입고 찍어도 멋있어 보이잖아? 그럼 우리도 그러면 안 돼?"
그렇게 머리를 모으고 곧 입을 의상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그들은 적당히 트렌디한 사복 정도도 연예인이 입으면 멋져보인다는 히나의 정론에 따라, 자신이 제일 멋있고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사복 차림으로 무대에 나가기로 했다.
"나 그래도 사복 센스는 괜찮지 않아? 연습복만 내복 같지."
"후헤헤, 후헤헤헤, 역시 체크남방이 최고임다... 안경 쓰고 무대에 나가보는 건 처음인데."
"치사토 쨩도 줄무늬, 아야 쨩도 줄무늬, 이브 쨩도 줄무늬... 나도 줄무늬. 이번 컨셉은 줄무늬 어때? 룽! 하고 올 거 같지 않아?"
"이번 컨셉은 '자유'지요? 그러면 저도 자유롭게 모조도를 들고..."
"이브 쨩, 그건 금지. 사람을 다치게 하면 안 돼."
갖가지 사복으로 차려입고 가벼운 메이크업을 한 채, 다섯 사람은 악기를 챙겨 무대로 향한다. 화려한 무대의상으로 치장하지 않고 선보이는 무대도, 그 진솔함이 무대 곳곳에서 배어나오기 시작한다. 조금씩, 조금씩 도전을 해나가면서, 파스텔 색의 다섯은 오늘도 누군가의 꿈을 지키기 위해 노래하고 연주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건강하고 밝게 필살 포즈를 취하며 노래를 부르는 핑크빛 머리의 소녀에게로 따스한 이목이 집중된다. 그리고 신곡과 함께 기다리는 그녀의 중대한 발표는,
"오늘 저녁은 오므라이스에 햄버그 정식, 그리고 마카롱 두 개랑 딸기 쇼트케이크!"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속에는, 그녀 바로 뒤, 붉은 반무테 안경 너머의 눈동자 역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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