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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사탕통/팝핑 캔디

[리사유키] 물개박수 노래

by 료밍 2018. 9. 30.

2018년 7월 15일 제3회 어나더 스테이지에서 낸 로젤리아 무료배포본 '아! 로젤리아 아시는구나!' 수록 단편의 웹공개입니다.

정말로 물개박수 동영상 보면서 썼습니다.





미나토 유키나는 설탕 세 스푼은 족히 넣은 커피를 작업용 컴퓨터 책상에 놓고 동물 동영상을 찾아보고 있엇다. 머릿속에서 실시간으로 당분이 빠져나가는 체험을 하고 나니 더 이상 작업하고 싶은 의욕이 나지 않았다. 유키나는 평소대로 유명 동영상 업로드 사이트에서 사랑해 마다않는 고양이들의 영상을 보며 노닥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의욕이 더 떨어졌다가는 침대에 누워서 사탕이나 먹으며 움직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고양이 영상이라도 보는 건 아직 유키나의 의욕이 바닥을 치지는 않았다는 증거였다. 딸깍, 딸깍, 검색 목록의 우측에 뜨는 자동완성 영상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탐방한다. 20초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동물 영상들을 몇 번 넘기다 보니 그 종류도 고양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가정에서 기르는 개나 새, 도마뱀 등의 짧은 영상들. 집 밖을 벗어나면 산이나 바다생물로 넓어져서, 마침내 물개 동영상에까지 이르렀다. 통통한 지방층을 가지고 모로 누운 물개가 새삼 귀여워서 유키나는 화면 속의 요 생물을 넋 잃고 쳐다봤다. 둥근 배를 드러내고 지느러미로 몸통을 착착 치는 물개. 빠른 속도로 찰싹, 찰싹 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지다 멈춘다. 유키나는 어느새 동영상을 처음으로 돌려 다시 보고 있었다. 착착착착착착착. 다시. 착착착착착착착. 영상 속 물개의 반복행동이 흥이 나서 유키나는 입꼬리를 흐물흐물하게 풀고, 작업복 반바지를 입어 드러난 종아리를 톡톡 치면서 그 소리와 박자를 재현해보려 한다. 톡톡. 착착착? 아쉽게도 물개 같은 소리는 나지 않았다. 박수라고 하니까 직접 두 손을 맞부딪혀 박수도 쳐 봤지만 영 시원찮은 소리만 났다. 그래도 머릿속에서 적당한 드럼과 베이스 라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물개 박수 소리를 스네어 자리에 집어넣는 것은 어떨까? 마우스 옆에 쌓아놓은 사탕 하나를 집어 포장을 까서 입에 넣고, 단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다시 물개 영상에 집중한다. 오늘은 고양이가 아니라도 될 것 같아!


유키나는 작곡 소프트웨어를 켜고 드럼 샘플 목록을 하나하나 눌러보았다. 두둥, 탁! 이 소리면 물개 같은 소리가 날까? 탁, 둥, 탕, 아니다. 스네어 목록으로 가서 박수, 클랩을 눌러본다. 짝, 콱. 물개 박수의 착! 하는 소리가 아니다. 어차피 드럼을 직접 연주하면 다른 소리가 나겠지만, 신시사이저 담당인 린코에게 물개박수 샘플을 레이어링하도록 부탁하면 재밌는 소리가 날지도 모른다. 드럼 담당인 아코와도 조율이 잘 되니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고.

잠깐, 재밌는 소리라고?


그러고 보면 아코가 예전에 우드블럭을 사용한 소리는 어떨까, 하고 리사에게 제안했던 것이 떠오른다. 아마 자신에게 직접 부탁할 배짱은 없었을 것이다. 일단은 엄격한 리더로 군림하는 유키나였기에 로젤리아의 많은 결정권은 본인이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밴드에서 제일 어리고 터무니없는 제안을 한다는 이유로 아코의 의견을 스스로도 저평가하는 부분이 있었음은 인정해야 했다. 그런 자신이 겨우 재미있는 소리가 난다는 이유로, 동물 동영상에서 영감을 받아서 노래를 만들어보겠다고 말한다고?


갑자기 얼굴에 확 하고 열이 치밀어올랐다. 안돼, 미나토 유키나. 너는 엄격한 로젤리아의 리더, 고고한 디바다. 음악은 진중하게 대해야 할 것이다. 마음에 참을 인을 새기며 유키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른 파트에 생각을 집중시켰다. 그 다음은 리사, 그렇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리사였을 뿐이다. 베이스로 실험을 해 볼까. 유키나는 슬랩 베이스를 넣어보고 싶었다. 리사의 손가락이 베이스 현을 통통 튕기면서 나는, 조금 촐싹거리고 경쾌하고 시원시원한 소리. 슬랩 베이스라는 말답게 물개의 배를 통통 튕기는 소리와 비슷할 것 같았다. 제 손가락으로 톡톡 책상을 두드리면서 그 음을 생각해본다. 로젤리아는 베이스 연주에 적당한 수준의 기교는 넣었지만 여태까지 너무 변칙적인 음 전개나 테크닉은 목표로 하지 않았다. 그것은 공백기 때문에 비교적 경험이 적었던 리사를 배려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배려라기보다는 실패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안전책에 가까웠다. 로젤리아에는 실패란 없어야 했으니까. 그것이 정점에 있기 위해서, 그리고 밴드의 존재방식을 지키기 위해서 각자에게 부과된 숙명이었다. 그런 만큼 유키나가 실없는 동물 영상에서 영감을 얻어 갑자기 노래를 짜기 시작하는 일도 원칙적으론 없어야 했다. 마음도 뜻도 담기지 않은 노래는 공허하기 때문이었다. 유키나는 익살맞은 공상을 폐기하기 위해 작업을 멈췄지만, 이미 작곡 소프트웨어의 피아노 롤에는 몇 마디의 노트가 찍혀 있었다.


이거 어떻게 수습하지. 다시 화악 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부끄러운 노래를 로젤리아의 멤버들에게 들킬 수는 없어……! 유키나는 갑자기 밀려온 부끄러움을 어찌할 수 없어서 사탕 더미를 집어들고 침대로 다이빙했다.


그 때 침대에 훌렁 던져놓은 유키나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발신인을 확인해보니 이 상황에서 그나마 부끄러움을 들켜도 상관없는 사람이었지만, 다른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마이 리사. 자신의 일이라면 뭐든지 걱정하는 소꿉친구. 그리고 가끔 조금 성가실 정도로 장난스러워지는 사람.


"유키나, 뭐해?"

"벼, 별 건 아니었어. 작곡이 잘 되지 않아서 잠시 고민하고 있었을 뿐이야. 로젤리아도 슬슬 신곡을 선보여야 할 때니까."

"그래? 그런 것치고는 전화 오자마자 바로 받았잖아? 유키나가 작업하다가 막혔으면 침대에 드러누워서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얼굴로 있었을 테니까. 전화도 늦게 받았을 거고."

"그럴 리가 없었어. 아까가지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음색만 계속 머리에 맴돌아서, 리사가 연락하지 않았으면 생각이 사라졌을 것 같아."

"그래? 정말? 그럼 한 번 맞춰보자, 너 동물 영상 보고 있었지?"

"그럴 리가!"


유키나는 황급히 리사의 말을 부정했다. 목소리만으로 전해져오는 유키나의 당황을 집어낸 리사는 유키나의 예상대로 왠지 장난을 치고 싶어져, 목소리에 있는 힘껏 짓궂음을 담아 유키나에게 속삭였다.


"유키나, 자꾸 동물 영상만 보면 당구공 트랙볼을 쓰는 무서운 언니한테 해킹 당한다?"


뜬구름 잡는 소리에도 쉽게 뜨끔, 하고 놀라 당황하는 자신의 어리숙함이 이럴 때면 성가셨다. 하지만 유키나로서도 여기에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유키나는 동요를 최대한 숨기고서 고저 변화 없는 평소대로의 목소리로 리사의 농담에 대꾸했다.


"리사는 나를 고양이만 보면 비오는 날의 물웅덩이처럼 흐물하게 녹아버리는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리사의 웃음소리였다. 역시 이런 면은 당해낼 수 없었다. 하긴, 어릴 때부터 함께해온 소꿉친구인데.


"농담이야. 가끔은 너무 딱딱하게 있지만 말고 좋아하는 것도 보자고."

"작곡을 하는데 잡념을 끼어들게 하면 음악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돼."

"그래? 그런 것 치고는 베이스라인 되게 재밌게 잘 짜던데?"

"들었어?"


분명 유키나는 헤드폰을 끼고 작업을 하고 있었으니, 리사가 들을 이유는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오늘 리사가 집에 놀러온다는 이야기를 한 것도 같고 안 한 것도 같고. 서로는 워낙 자주자주 붙어 다녀서 부모님과도 면식이 있으니, 초인종을 누르는 손님이 리사라면 부모님도 바로 문을 열어주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리사?"


유키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돌아봤다. 그러면 컴퓨터 바로 옆에서 고양이 같이 웃고 있는 제 친구가, 한 팔에는 손수 구운 과자가 가득한 비닐 포장을 들고서.

전부 보고 있었다. 동물 동영상 순회를 하면서 헤벌쭉한 얼굴로 있었던 것도, 전혀 바르지 않은 자세로 앉아서 종아리를 치면서 리듬을 탔던 것도, 그리고 완벽한 물개박수를 구현하기 위해서 물개 동영상을 틀어놓고 계속 스네어 샘플을 만지작거렸던 것도…….


"리사,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워, 워워, 그렇게 놀래키지 마. 오늘 유키나네 집에서 같이 작업하기로 했잖아. 유키나가 작업 안 풀린다고 푸념해서 그럼 과자 가지고 올까? 라고 물으니까 유키나가 응, 하고 말했는걸."

"내, 내가 그런 적이 있었나……. 어쨌든 리사가 오는 건 싫지 않지만."


유키나는 혹시나 해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메신저 앱을 켜서 대화 기록을 보면 아주 무성의하게 ‘응’이라고 쓴 메시지가 보였다. 작업에 몰두하느라 휴대폰은 침대에 던져놓아서 완전히 잊고 살았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자신이 리사한테 미안해야 할 처지였다.


"리사. 미안.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정말로 음악이 안 풀려서……."

"아니, 사과는 괜찮아. 그보다 유키나가 만든 거 들어봐도 돼?"


이젠 될 대로 되어라, 싶기도 하고, 누구보다도 자기를 잘 아는 리사라면 굳이 숨길 이유도 없어서, 유키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리사는 바로 작곡 소프트웨어를 최소화시키고 배경에 띄워놓은 동영상 사이트를 켜서 물개가 등장하는 동영상을 재생했다.


"잠깐만, 리사."

"아유, 귀여워라."


그 말이 동영상 속의 물개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뒤에서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하고 있는 유키나를 향한 것인지는 대인관계 기능이 바닥을 치는 유키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리사는 다시 작곡 소프트웨어를 되돌려놓고는 유키나가 짠 드럼과 베이스 파트를 재생해 귀를 기울였다. 스네어 샘플을 변조시켜 물개가 박수를 치는 것처럼 만든 소리와 함께 신나는 슬랩 베이스가 귀에 즐겁게 달라붙었다.


"오, 되게 신선하다. 유키나 이런 곡도 만들 줄 알고."

"습작으로 만든 것뿐이야. 로젤리아의 정식 악곡으론 안 쓸 거야." 유키나는 딱 잘라 말했다.

"베이스는 슬랩 베이스를 염두에 두고 만든 거지? 나 그렇잖아도 슬랩 연습해보고 싶었는데."


 리사가 흥미를 가지고 베이스 파트를 반복해서 재생하며, 손짓으로 베이스 현을 내려치거나 뜯는 시늉을 하자, 유키나는 그 손짓을 조금 더 세심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역시 본격적으로 음악에 임하려는 의욕을 보게 되면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유키나였다.


"네가 짠 걸로 연습해도 될 것 같은데?"

"이런 것보다는 좀 더 제대로 된 교본을 보고 연습하는 게 좋을 거야."

"그치만 난 유키나가 좋아."


분명히 생략된 말의 공백이 순식간에 유키나의 얼굴에 화끈한 열기를 올렸다. 이런 식으로 치고 들어오면 어김없이 비겁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게 된다. 자신도 딱히 다른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터놓고 말하기엔 아직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당장에 로젤리아를 안정적인 유대의 터전으로 만들 수 있을까도, 완전히 단언은 못하는 상황에서.


"유키나가 만드는 곡을 앞으로도 연주하고 싶어. 그러니까 나는 유키나 걸로 연습할래. 기왕이면 좋아하는 노래로 연습하는 게 의욕이 더 붙잖아? 마음 편하게 할 수도 있고."

"마음 편하게…라니."

"안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즐거워서 하는 게 나쁘지는 않다고 봐. 우리 모두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을 찾아서 음악을 한 부분도 있잖아? 유키나도 나도, 어릴 땐 그랬으니까."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 그것을 되돌리고, 그리고 지키기 위해서 안정화부터 시키려고 한 밴드. 즐기는 것은 안정된 다음이라도 좋다고 생각하며 유키나는 늘 미뤄왔었다. 그러나 리사는 그 심정을 어릴 적부터 옆에서 지켜봐온 존재였다. 그런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분명 빈말도 아닐 것이었다.


"그리고 유키나도 즐거우면 그걸로 된 거라고, 나나 아코한테 말해준 적이 있었잖아? 혼자만 다 짊어지려고 안 해도 돼. 유키나도 즐겁고 싶으면 즐겁게 있으면 돼."


리사는 유키나의 손을 잡아끌면서 유키나와 눈을 맞추고는, 의자에 앉은 자신의 무릎을 탁탁 쳤다.


"유키나, 여기 앉아봐."


새삼스럽지만 그것도 싫지 않아서 유키나는 리사의 무릎 위에 앉았다. 둘이 키 차이가 그럭저럭 나는 편이었기 때문에 유키나가 리사의 무릎 위에 앉아도 시야가 가려지지는 않았다.


"오늘은 이러고 작업하자."

"이러면 불편하지 않아?"


불편한 것보다도 심장이 두근두근해서 이러다가는 심장박동까지 샘플로 재현하려고 할 것 같았다. 오늘의 영감은 어쩐지 이상한 곳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유키나는 한숨을 쉬었지만 그 한숨에서는 약간의 단 기운도 날 것만 같았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제 곁을 지키는 리사가, 뭐라고 해야 할까, 사랑스럽다? 그런 생각이 들 뿐이었다. 한 번 인정하고 단어로 규정하기 시작하면 술술 나오는 게 유키나의 감정이었다.


"유키나가 작업하고 있으면 내가 베이스 치는 사람 입장에서 손도 봐 주고, 과자도 먹여줄게. 그러면 서로 돕는 거지?"

"뭐, 그, 그것도 나쁘지 않네, 리사. 대신에 물개박수 동영상 갖고 놀리기는 없기야."

"유키나의 음악세계를 비웃을 생각은 없어. 좋아서 만든 거잖아?"

"그러네. 나도 한동안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한 방향으로만 생각하면 악상이 굳어버리기도 하니까. 리사한테 신선하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겠다, 오늘은 마음 좀 편하게 갖고 몇 개 짜볼까."


리사가 제 위에 앉은 유키나의 허리에 팔을 감으면 유키나의 얼굴도 조금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이미 가까울 대로 가까웠지만 그 상태가 평안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서로 순수하게 웃으며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있었던 건 몇 년 만일까? 애정의 터전은 아주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유키나는 생각했다.


벌렁 드러누워 배를 치며 소리 내는 물개처럼, 조금 태평하게, 그리고 조금 유쾌하게. 음악의 세계에 뛰어든 이래로 그리웠던 편안함을 모니터 속의 악보에 짜 넣으며, 어릴 때와 같이 음악도 하고 어쩌면 사랑도 하고. 그런 일상. 서로의 관계에 패인 간극이 서로를 너무나도 다르게 만들었더라도, 그것이 소중하다는 데는 두 사람 다 이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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