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파레 밴드스토리 2장 '다시 한 번 루미너스'를 읽고, 내 나름대로 히나의 심리를 풀어써본 무언가.
사실 밴스 2장 나왔을 때 쓴 거였는데 이제야 공개를...
그래놓고 퇴고도 하나도 안 했지만, 그 때 내가 느낀 건 이랬다... 라는 식으로 남겨둔다는 의미에서.
무너져내린다. 천천히, 땅이 무너져내린다. 그 속에서 행복하게, 어쩌면 태평하게 있던 나도 젤리처럼 녹아 주저앉을 것 같다.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을까.
요즘 들어 나는 연습실로 발을 옮기는 것도 힘들었다. 스케쥴이 많아져서나 연습이 버거운 것은 아니다. 언제나처럼 나는 별 탈 없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기타를 그만두지 않겠다고 언니랑 약속도 했으니까, 앞으로는 열심히 기타를 치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같이 밴드를, 파스파레를 이어나가면 된다. 단지 요즘 아야쨩이나 치사토쨩을 시작으로 다른 멤버들에게 개인 스케쥴이 생겨서, 연습하러 모여도 각자 할 일만 하고 있었으니까. 다들 바쁘니까 연습하러 모이는 일도 잘 없었다. 아야쨩은 개인 인터뷰가 잡혔고, 치사토쨩은 영화를 찍는 중인 것 같고, 마야쨩도 잡지 인터뷰에, 이브쨩도 모델로 뛰느라 바쁜 것 같고. 그리고 나는 개인 스케쥴이 제일 적게 들어오는 편이었다. 얼마 전에 마야쨩이랑 함께 촬영을 진행한 이후로는 내게 단독으로 들어온 일도 없다. 그래서 조금 재미없었던 것뿐이었다. 연습실에 가더라도 나는 왠지 붕 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내가 모르는 영역이 생겨버리면 맹렬하게 알고 싶었다. 좋아하기 때문에 더 알고 싶었다. 물어보고 싶어도 그 자리에 없거나, 금세 닿았다가 사라져버리는 이야기의 물꼬들. 그렇다면 내 머리로 아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커다란 벽으로 가로막혀버린 것만 같았다. 함께 있고, 더 닿고 싶은 사람들이, 차츰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 건 당연히 재미없다. 재미없는 것, 힘든 것은 그만두면 된다. 치사토쨩이나 마야쨩은 가끔 내게 너무 포기가 빠르지 않은가, 너무 빨리 답을 내고 마는 게 아닌가 하고 물었다.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해나갈 힘이 없으면, 별로 그걸 견디면서 하고 싶어하는 성미도 아니었다.
그래서 연습을 빠졌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함께 모여서 악기 소리를 맞춰보지 않는다. 차라리 나라도 일거리를 찾아서 열심히 하면 낄 수 있을까? 그래도 일이 들어오는 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럴 땐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까? 어떻게 할지 모르는 그 상태가 싫었다. 괴롭다.
연습을 쉬고 있으면 언니가 가끔 내 방 문을 두드리며 괜찮냐고 물어왔다. 왜 괜찮냐고 물어보는 걸까. 평소처럼 파스파레 활동에 대해서 자랑하지 않아서? 그렇지만 자랑할 일도,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나는 아무 일 없다고 말했다. 정말로, 정말로 아무 일 없었으니까. 그러면 언니는 한숨을 쉬면서 내 방을 지나쳐갔다. 언니한테 미안한 마음이 될 것 같았다.
기타도 쳐다보지 않고 방에 드러누워 있으면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아야쨩의 연락이었다. 파스파레 단체 라인방은 요즘 뜸했지만, 그래도 내게 개인적으론 이렇게 연락을 해오는 것이다. 기왕이면 파스파레 단체 라인방으로 불러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아직 아야쨩과는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저 아야쨩은 열심히 한 만큼 빛났던 것이다. 그건 좋은 일이다.
"히나쨩, 다음에는 같이 다섯이서 연습 하자!"
아직 아무 일 없어. 괜찮아. 내 별이 빛나고 있다. 별을 볼 수 있다면 아직 그 빛을 알 수 있는 거야. 내 꿈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어.
간만에 스케쥴이 잡혔다. 어떻게든 성사된, 다섯이서 하는 리허설이었다. 다들 함께 모이는 건 오랜만이라, 잠깐이지만 예전처럼 떠들어보기도 했다. 한동안 안 잡았던 기타도 오늘은 조금 신이 난 것 같았다. 가슴이 약하게 뛰었다. 이대로만 쭉 간다면, 그야말로 두근두근하고 즐거운 평소대로. 그럴 터였다. 그래야만 했다.
그랬는데.
스태프들이 우리 다섯을 불렀다. 다섯을 모두 불렀다는 건, 한동안 개인 활동에 집중했으니 모처럼 다섯이서 다시 모여보자는 신호겠지. 그렇지 않다면 예전처럼 한두 명만 불렀을 테니까. 거기다가 오늘은 아이돌 페스티벌의 홍보 영상까지 찍었다. 당연히, 다음 무대는 다섯이서일 터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개인 활동에 집중해주셨으면 합니다."
거짓말.
"그럼 파스파레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부풀어 올랐다가 터져 사라진 기대를 비집고, 아야쨩이 물었다. 평소에 스태프들의 결정이 내려지면 조금 주춤하던 아야쨩도,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는지 좀 더 눈에 힘을 주고 묻고 있었다. 마야쨩이 그 옆에서 이리저리 말을 더듬으면서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세고 있었다. 치사토쨩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다들, 이렇게 헤어져버리는 게 싫은 거지? 그런 거지? 그러나 아무리 돌아보더라도 다들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단지 이브쨩만이 울 것 같은 얼굴로 싫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머리로 피가 몰리는 것 같아서, 눈앞이 찡하게 흐려오는 게 느껴졌다. 어지러워, 뭔가 목이 메여와, 그래서 토해내듯이.
"파스파레 해체한다는 거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모든 게 나도 모르게 일어난 일이었다. 최악의 가능성이 드러날 것만 같았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닌. 그것을 내 입으로 순간 내뱉어 버린 것이다. 머리의 피가 순간 확 식었다. 눈앞이 흔들려왔다.
"히나쨩, 괜찮아?"
아야쨩이 그렇게 물은 것 같았다. 아니야, 괜찮아. 하지만 괜찮을 리가 없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 나 혼자만 일을 별로 받지 않았고, 나 혼자만 다른 세상에 있으니까. 그러면 나 혼자만 다섯의 꿈속에서 연주하고 있었던 걸까. 즐거운 순간에 정신이 팔려 알아야 할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던 걸까. 치사토쨩이 계속 침묵을 지키는 것도, 활동중단은 싫다고 울상을 짓는 이브쨩을 오히려 지금은 다들 말리고 있는 것도,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려서가 아닐까. 나는 모두를 좋아하는데. 그러면 나도 괜찮아야지. 괜찮을 수 있어.
"해체해도 난 상관없는데?"
홀린 것처럼 내뱉었다. 어느새 흔들리던 시야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정답이었던 걸까.
그렇게 말하자 모두가 나를 쳐다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봐봐, 이렇게 나는 너희들의 마음과 엇갈리려 했는데. 분명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는 거지? 실은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전부 재미없어졌어. 예전 같지도 않고. 다들 개인 활동으로 바쁘고."
"히나쨩!" 아야쨩이 그렇게 매서운 눈을 내게 하는 건 처음이었다. 나, 역시 하면 안 되는 말을 했을까? 그 생각은 역시 아픈 생각이었을까? 그러면 어서 나를 붙잡아 줘, 혼내도 괜찮아. 부탁이야.
"히나 씨, 진정하고 그런 말은 자제를-" 마야쨩, 나는 지금 평온해. 딱히 놀란 것도 아니야. 놀란 건 이것보다 더 즐거운 감각이겠지.
"히나 씨... 왜 그런 말을..." 이브쨩, 너는 무서워? 너는 그래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나는 무섭지 않아.
"......" 치사토쨩, 뭐라도 말해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게 제일 무서워.
나는 분명히, 너희들의 마음과 반대될 만한 말을 했는데, 다들 몇 마디 하다가도 결국은 조용해지고 말았다. 우리들만 갖고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서? 이대로 흩어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거야? 나는 어떻게 하면 돼?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만에 하나 아무도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난 파스파레가 좋았는데."
그래. 처음부터 좋아하지 않았던 걸로 하면 그만이다. 별 같던 아야쨩도, 내게 쓸쓸하냐고 물어줬던 치사토쨩도, 알기 쉽게 설명해주던 마야쨩도, 어쩌면 나 못지않게 겁쟁이인, 그렇지만 나보다는 더 굳건한 이브쨩도, 전부 좋아하지 않았다고, 처음부터 내 곁에 없을 운명이었다고 생각하면 돼.
"...찮아."
나는 괜찮아.
파스파레가 없어져도 나는 괜찮아. 어차피 그 아이들에겐 그 아이들이 쫓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잘 해 나가겠지. 운 좋게 오디션에 붙어서, 그저 너희들과 같이 있는 것만이 행복이었던 나보다 훨씬. 이때까지 나는 너희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어? 그렇다면, 내가 필요없는 아이가 될게.
다 같이 파스파레가 재미없어졌다면, 나도 재미없었던 걸로 하면 돼.
"돌아갈게."
의중을 알 수 없는 얼굴들이 나를 향한다. 거기에 평소처럼, 그래, 평소처럼 가벼이 작별인사를 하고, 홀가분해진 발걸음으로 촬영장에서 나왔다. 꽉 붙잡고 있던 싫고 답답한 것에서 풀려나온 것만 같았다. 이대로 뒤돌아보지 않기만 하면 돼.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얼굴 아래에 무슨 마음들이 있는지, 나와 같은 마음인지, 전부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그렇지만 내가 그걸 모르는 게 하나도 즐겁지 않은 건, 알려고 하는 마음조차 들지 않는 건, 실은 답이 정해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무너져내린다. 촬영장을 나가서 집에 오자마자 방 침대 위로, 말 그대로 몸이 무너져내렸다. 온 몸이 젤리처럼 되어 힘이 들어가지 않고 서서히 녹아가는 것 같았다. 축축해진 베개가 뺨에 닿기 전까진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마침 머리 한 구석이 빈 것 같은데, 머릿속이 녹아서 흘러나온 게 아닐까. 조금만 더 흘려보내면, 답답하고 자욱하게 머릿속을 맴돌며 채운 불안들도 사라질까. 걸러내서 흘려보낸다. 기억의 강을 타고 저 멀리, 멀리로. 아픈 거 아픈 거 날아가라. 종국에는 잃어버릴 것을 위해 쭉 품어오던 꿈이 물거품이 되어 하늘 너머로 사라져간다. 그렇게.
흘려보내고 나니까 기적처럼 괜찮아졌다.
히카와 히나는 건강해졌습니다!
파스파레는 더 이상 모이지 않았다. 다섯이서 모이지 않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손가락으로 날을 세었다. 3일 정도 지나니까 확실히 머릿속이 개는 것 같다. 역시 나는 괜찮을 수 있었던 거구나. 언니나 치사토쨩이 말한대로 나는 끈기가 없는 게 문제였던 것 같다.
그래도, 무너진 세상의 조각들은 여전히 발바닥을 찌르고 있다.
아야쨩은 언제나처럼 메시지로 내 안부를 물었다. 마지막으로 한 말은 ‘기다리고 있어.’ 아냐. 나는 괜찮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를 기다리지 않아도 돼. 만약 내가 아야쨩의 발목을 잡아버렸다면, 나를 보지 말고 앞을 봐 줘. 연습생 시절을 꿈꾸면서 쭉 열심히 연습해온 아야쨩이잖아. 다섯이서 함께하던 시간보다 더 귀중한 꿈이 있다면, 아야쨩이 되고 싶은 별의 길을 쫓아가줘.
누구보다도 뿔뿔이 흩어지는 걸 싫어하던 이브쨩도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왔다. ‘히나 씨, 돌아와주세요. 사실은 히나 씨도 그런 마음이 아니잖아요.’ 그런 마음이었을까. 깨끗한, 그러나 텅 빈 연습실의 사진도 함께 보내왔다. 혼자 꼼꼼히 청소한 모양이다. 지금은 다섯이서 쓸 일 없는 그곳을. 하지만 이브쨩이 말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이었다면, 나는 싫다고 말했겠지. 나는 그러지 않았어. 처음부터 그런 마음은 없었던 거야. 그러니까 지금 나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거야.
학교 옆반에도 별로 갈 생각이 없었다. 천문부실에서 밥은 혼자 먹었다. 나도 모르게,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천문부로 발걸음이 저절로 움직였다. 밥을 먹고 돌아오면 마야쨩은 같은 반인 유키나쨩이랑 이야기하고 있었다. 음향기기에 대해서 잘 아니까, 그 편이 사실은 더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언니네 친구기도 하고. 사실 마야쨩은 처음부터 파스파레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드럼을 치는데 방해되는 팔랑팔랑한 옷에 익숙하지도 않은 렌즈를 끼고 아이돌을 지향하느니, 본격적인 밴드를 동경하는 편이 나았던 걸까. 그렇다면 응원할게.
치사토쨩에게선 여전히 연락이 없다. 역시 영화 찍느라 바쁜 걸까. 그동안에도 치사토쨩은 많은 걸 생각하고 있겠지. 조금은 다른 멤버들 생각도 해 줄까. 내게도 쓸쓸하지 않냐고 그때처럼 물어줄까. 무엇보다, 치사토쨩은 외롭지 않을까. 나는 쓸쓸하지 않지만.
특별히 예전이랑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파스파레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간 것뿐이다. 그것이 내게 평범하게 보이는 일상이었다. 내가 아는 세상, 그리고 나를 알 필요 없는 세상. 그 사이에서 그저 표류하는 일상. 알고 있으니까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이다. 미지도 무엇도 없어서 재미도 없지만. 차이점이라면 요즘 언니가 내 방 문을 두드리는 빈도가 는 것뿐일까. 언니한테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해 놓고, 내가 이러고 있어서 미안해. 언젠가 날 따라가겠다고 선언하게 만들어놓고, 내가 기타가 재미없어져서 미안해. 하지만 언니도 처음에는 내가 언니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를 바랐었으니까.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까. 알고도 모른 체 할 순 없으니까. 난 그저 언니와 사이가 좋아진 것만으로도 기뻐. 그러니까 정말로 난 괜찮아.
단지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뭔지 모를 게 계속 일렁이고 있는 것 같지만, 미련을 가져봤자 언젠간 사라질 물거품을 쫓는 것이나 다름없다. 곧 괜찮아질 것이다. 없는 것을 지향하는 의미는 없다.
도착지가 없는 것, 답이 존재하지 않는 것, 알 수 없는 모르는 것.
그런 건 사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걸로 됐어.
"아- 또 도시락 까먹어버렸어!"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천문부 부실로 뛰어가려 했는데, 막상 가방을 열어보니 도시락통이 없었다. 언니가 가져다주려나? 하지만 오늘은 왠지 매점에서 사먹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찾으면 나오겠지.
매점으로 발걸음을 향한 그 때, 다급하게 뛰어오는 발소리가 내 뒤에 따라붙었다.
"히나쨩! 잠깐만!"
내게는 익숙한 다른 학교 교복. 하지만 언니가 아니었다.
높은 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당연히 잊어버릴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잊어버린 건 도시락은 아닐 텐데.
"도시락 잊어버렸지? 괜찮으면 같이 먹자!"
뒤돌아보면, 헥헥 숨을 고르면서 뛰어온 기색을 온 몸으로 내보이는 아야쨩이 내 도시락을 들고 있었다. 언니 대신에 왜? 언니도 아닌데 다른 학교까지 달려오는 게 신기했다. 아야쨩은 역시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또 한가지 아야쨩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다. 분명 그렇다면, 나는 지금 아야쨩을 만나는 게 기쁘고 두근거려야 했는데. 지금은 가슴이 계속 뛰는데, 뜀박질 하나하나가 쓰라리다.
"아야쨩, 여긴 우리 학교인데?"
"점심시간은 아직 기니까 달려와봤어! 히나쨩이랑 같이 점심 먹고 싶어서? 히나쨩 요즘 많이 외로워보였으니까."
내가 없는 동안에 항상 걱정하고 있었다. 나를 포기하지 않고서. 그런 점도 아야쨩다웠다. 분명 나는 이런 아야쨩을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아야쨩을, 나는 별 같다고 생각했었지.
"응. 히나쨩을 찾으러 왔어."
아야쨩은 웃으면서 내 옆자리 책상에 자기 몫과 내 몫의 도시락통을 놓았다. 숨을 두어 번 들이마셨다 내 쉬었다 하다가, 아야쨩은 말을 시작했다.
"일단 전에는 미안했어. 히나쨩한테 심하게 굴었지."
"아야쨩이 뭔가 잘못했어?"
"그 때, 히나쨩도 많이 놀랐을 텐데, 나도 충격이 커서 히나쨩한테 화냈으니까."
"나, 그때 놀랐어?"
그럴 리가 없었다. 제일 먼저 마음에서 부정의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그렇지만, 내가 모르고 아야쨩이 알고 있는 것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해서 나도 몰랐던 부분을 안다는 듯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분명 나를 알아주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서였을까. 아야쨩, 대답해줘, 아야쨩의 눈에는 뭐가 보이는 거야?
정말로 나는, 괜찮은데.
"나, 괜찮지 않아 보여?"
나는 아야쨩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괜찮지 않을 수 있어."
괜찮지 않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난 평소대로인데? 아, 룽 하고 오는 게 없긴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야쨩은 내 손을 감싸쥐었다. 따뜻했다. 그 따스함이, 마음속의 거름망 사이로 조금씩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아서 참을 수 없었다. 정말 좋아하는 아야쨩인데,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어서 절로 걸음이 한 발짝씩 물러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야쨩은 손을 꼭 붙들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히나쨩, 괜찮지 않아도 돼."
"아야쨩, 이러면 마음이 흔들흔들해."
"미, 미안해! 그, 그치만... 불안해해도 괜찮아."
벗어나려고 하는 내게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곧장 믿음직한 시선으로 붙잡으며, 아야쨩은 내게 이야기를 계속 해 주었다. 가슴이 따스한 것으로 채워져가는 동시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마야쨩도 불안해하지만 나중에 같이 무대에 설 때를 위해서 음향설비 공부를 하고 있고, 치사토쨩도 힘들기 때문에 일에 더 몰입하고 있는 거야. 이브쨩은 다섯이서 함께할 날을 기다리면서 쭉 연습실 청소를 하고 있고. 나는 이렇게 찾아가서 같이 있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지만... 각자가 괜찮지 않지만, 전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고 있는 거야. 전부, 파스파레를 버리지 않았어."
"나는 파스파레에 이제 흥미 없..."
그 말에 또 아야쨩은 슬픈 표정을 짓는다. 차마 나도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아야쨩이 힘들어 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마음 속에서 일렁이던 것의 정체를, 결국은 알 것 같아서, 거기에 집어삼켜질 것만 같아서.
"히나쨩."
"없어져버릴 거면, 좋아하지 않는 게 낫잖아?"
나는 내 꿈을, 내 소중한 세상을 부수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것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꿈의 해답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머릿속에서 흘러나온 것들의 빈자리에서 팽팽 맴도는 소용돌이가 인다. 무너졌던 것의 조각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면서 나를 긁어대는 것 같다. 그 자리에도 그대로 남아있는 나.
무너져내린 내 모습을 똑바로 볼 수밖에 없다.
히카와 히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다시 한 번 주저앉으려는 내 몸을 따스한 두 팔이 감쌌다.
"히나쨩이 느꼈던 모든 것을 없던 걸로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아야쨩이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나는 히나쨩처럼 바로 알지도 않고, 아는 게 항상 즐거운 마음도 아니지만... 그치만, 무서워해도, 놀라도 괜찮지 않을까? 그, 히나쨩이 말하는 것처럼 룽하지 않을 때도 있을 거야. 그렇지만 그것도 히나쨩에게 있는 면이라면, 그걸 너무 부정하진 마! 즐거워할 때 너다운 것처럼, 슬플 때, 괴로울 때도 너다운 모습이 될 수 있으니까...? 그, 미안, 말이 이상해졌지?"
아야쨩은 단어를 이리저리 가다듬으면서 내게 열심히 전하고 싶은 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보여도, 왠지 그 말이 여태껏 분리해버렸던 나의 일부를 정확히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게 쓰렸다. 그렇지만 내게서 떨어져나가 갈피를 잃은 그 감정들이, 얼마나 밖으로 나오고 싶어했을까. 담겨있는 동안 얼마나 아픔으로 절여져오고 있었을까.
나는 내 자신이 호소하고 있는 내 마음조차 돌보지 않았구나.
"아야쨩은 왜 그런 걸 알고 있는 거야?"
"완전히 알고 있는 건 아니야. 히나쨩이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다르니까. 그래도 힘들 때는 힘든 마음을 나누면 조금 도움이 될 것도 같아서..."
"아야쨩은 많이 힘들어?"
"응. 많이."
꼭 끌어안은 품에 힘을 실으면서, 아야쨩이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런 마음. 나도 그 마음을 알고 싶다. 아야쨩의 힘든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다. 그리고 아야쨩이 닿고 싶어하는 나도, 분명 힘들어하고 있는 내 일부일 것이다. 내가 외면해왔던 그 부분을, 나도 알고 싶었다.
"사실은 나... 안 괜찮아."
"응."
"파스파레가 정말로 해체하는 게 싫었어. 나를 이해해주려 하는 사람들이 떠나는 게 무서웠어! 그 와중에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같이 있을 수 없게 되는 게 싫어... 다섯이서 함께 하는 시간을, 내 꿈을 부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어!"
어느새 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마음 속 칸막이가 열리면서 분리되었던 감정들이 순식간에 쏟아져나오는 것만 같았다.
"사실은 모르는 게 두려워. 모르는 채로 있어야만 하는, 알 수 없는 건 무섭고 괴롭단 말야. 그렇기 때문에 더 알고 싶어한 거야. 그렇지만 아무리 알려고 해도 괴로운 답밖에 나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나았는데... 그런데..."
오열하고 있는 나. 그리고 어느새 같이 울어주고 있는 너. 지금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단지 이 솟구쳐오는 감정들을 내놓는 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 아니, 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도 아야쨩이 이렇게 날 이해해주려고, 힘들어하면서 나한테 다가가니까, 나도 이럴 수밖에 없잖아..."
"가끔은 쉬어가면서, 천천히 다시 나아가면 돼. 안 괜찮은 너를 조금 더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랑 다른 애들도 여기에 있고. 그러면 히나쨩도 다시 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자리에 있는 내 소망. 내 꿈. 거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허물어진 나를 끌어안으며 그러모을 수 있다면. 모두와 함께하고 싶다는 그 작은 소원을 다시금 기억하고 꼭 쥘 수 있다면. 그제야 나는 아야쨩이 내게 왜 화를 냈는지, 왜 괜찮냐고 쭉 물어왔는지를 알 것 같았다. 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얼마나 부둥켜안은 채로 있었을까. 시계를 보면 점심시간은 한 10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밥 같이 먹자고 왔으면서 둘이 같이 먹지도 못하고 이렇게 된 게 우스웠다. 순식간에 울다가 웃을 지경이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밥도 못 먹고 가니까 아쉬워... 히나쨩한테 필살의 오므라이스 도시락 좀 나눠주려고 했는데."
"그, 아야쨩."
"응?"
"이브쨩은 오늘도 연습실에 올 거래?"
"다섯명이 모이는 그날까지 쭉 기다리고 있을 거랬어."
"그럼 오늘은 나, 연습 갈게."
"마야쨩이랑 같이 오는 거지? 치사토쨩한텐 내가 얘기해볼게."
내가 눈을 돌리는 동안에도, 내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물거품이 되어 날아갔던 꿈들이, 흘러내린 눈물을 타고 다시 비누방울이 되어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히카와 히나는 괜찮지 않다. 아직은.
하지만 괜찮을 수 있는 날들이 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거라면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
"마루야마 씨, 이걸 대신 전해줬으면 해요."
"히나쨩한테? 사요쨩도 이래저래 고생이네. 히나쨩,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 걸까... 나도 요즘은 밥 제대로 먹고 있는데. 근데 왜?"
"히나의 꿈은 분명, 파스파레에 있을 거예요."
"히나쨩의 꿈?"
"저는 히나 또한 자신의 꿈을, 여태까지 파스파레와 함께하면서 걸어온 길을 없던 걸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요쨩은 히나쨩을 정말 아끼고 있구나."
"그, 그렇다기보다도, 거기에 맞는 사람이 있는 법이니까요. 제가 할 수 없는 것을 마루야마 씨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마루야마 씨는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데에 굽힘이 없으니까요. 저조차도 헤매던 것을."
"그런가... 그렇지만 내가 히나쨩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마주보고 닿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마루야마 씨를 믿는 거예요."
"응. 알았어. 히나쨩이 기운 차릴 수 있게 힘내볼게."
"잠깐만요, 마루야마 씨, 어디 가는 거예요? 지금이 아니라 학교 끝나고 나서 얘기였는데!"
"히나쨩 만나러."
"마루야마 씨!"
"늦기 전에 돌아올게!"
"...어쩔 수 없네요. 하지만 그런 사람이니까 당신이 적격이라고 생각한 걸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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