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홍색 사탕통/코튼 캔디

20200219 히카와 히나에 대한 어떠한 변호

by 료밍 2020. 10. 17.

트위터 백업.

 

잠깐 생각나서 밴스 1장에서 히나의 행동거지에 대한, 좀 다른 해명을 늘어놓아보고자 합니다. 일단 확실히 하자면, 이건 '뭐든지 다 잘 하는 천재 히나'가 아니라, '실패를 허락받지 못한 히나'로서의 이야기임.

문제의 '그 발언'을 포함해서, 겉으로만 보면 밴스1장에서 히나의 발언들은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몰지각한 발언이나, 모종의 기만으로 분명 보일 수 있습니다. 아야가 우직해서 그렇지 분명 상처될 수 있는 말이고요. 하지만 그 말이 나온 맥락 속에서 더 상처입는 쪽은 히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히나는 여태까지 타인의 시선에서 천재, 뭔가 다른 아이로 여겨져왔을 겁니다. 그 밖의 것은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정말로 못하는 것들은 그저 '어차피 너는 우리랑 다르니까' 라는 시각에 부딪혀 좌절되거나, 혹은 '너는 천재니까' 하고 못하는 것 하나 없을 것이라고 여겨졌겠죠.

밴스 1장의 해당 대목에서 히나는, 노력하면 꿈이 이루어지는 걸 잘 모르겠다, 자신은 노력하지 않아도 뭐든 잘하니까 못하는 사람의 마음은 이해하기 힘들다,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히나는 노력하지 않아도 뭐든 잘한다고만 했지, '노력하지 않아도 꿈을 이룰 수 있다' 라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노력하지 않아도 잘 한다는 것을 잘 생각해보면, 노력을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도 있겠죠. 그것만으로 노력의 가치가 평가절하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 문장 앞에,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하고, 잘 하는 것만 했으니까' 를 넣어본다면? 히나는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은 쉽게 포기해버립니다. 치사토 역시 히나한테 끈기가 없다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아마 에어리어 대화였던가요. 노력해서 안 되는 것은 아예 놓아버렸고, 자기가 잘 하는 것은 또 술술 잘 되니까, '노력하지 않아도 잘 한다'로 환원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밴스 2장인 다시 한 번 루미너스에서, 히나는 '꿈이란 불가능을 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꿈과 목표란 다른 것이라 여겨왔다는 것도 드러내고요. 왜냐면 목표는 쫓을 수 있지만, 꿈은 쫓을 수 없으니까요. 히나의 인식 속에서 꿈이란 '불가능'이고, 그건 노력으로 닿을 수 없는 것입니다. 히나는 자신에게 '불가능한 것'들을 분명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에 체념한 상태일 겁니다. 실패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여겨버릴 정도로. 그 중에는 '사람들과 닿아 함께하는 것'도 있을 겁니다.

밴스 1장은 아야가 꿈을 쫓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에 대해 고민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실패하고 좌절하고 반대에 부딪혀도 끊임없이 노력을 하죠. 그것만으로 히나에게 아야는 별처럼 빛나보이고, 철인처럼 강해 보이는 겁니다. 왜냐면 아야에겐 실패가 끝이 아니니까요. 표현이 조악해서 그렇지, 히나의 눈에는 아야가 신기하고, 반짝이고, 또 부러웠을 겁니다. '못하는 것'을 왜 부러워하는가 할 수도 있는데, 정확히는 '못하는데도 계속해서 노력해서 꿈에 닿으려고 하는 것'이 히나가 부러워한 것이라고 보네요.

히나가 '못하는 게 없는 만능천재'라는 건, 결국 연막입니다. 잘하는 것은 잘하는 대로 있지만, 못하는 것은 아예 없는 걸로 취급하고 있으니까요. 그 '없는 것 취급'이란,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만들려 하지 않는단 의미이면서, 타인이 그녀의 약점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스파레는 히나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치사토처럼 히나의 결점을 지적하고 '서투른 히나'를 봐주는 사람도, 아야처럼 포기하지 않고 닿으려고 해주는 사람도, 마야처럼 잘 풀어서 설명해주는 사람도, 이브처럼 순수하게 애착을 갖고 대하는 사람도 있어요. 마냥 우러러보고 다른 세상 사람처럼 취급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같이 놀기도 하고 가끔은 혼내기도 하고, 자신도 못하는 게 있고 약한 면이 있는 걸 알아주는 사람들이니까요. 자신을 '천재' 나 '재능 덩어리'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여겨주는 사람들이니까요. 그 조악하고 다른 사람 상대였으면 오해 엄청 살 화법조차도 '그 아이의 서투름'이라고 이해해주고 자기를 친구로 여겨주는데. 얼핏 자기중심적이어 보이는 말에서도 히나의 재능보다 표현의 조악함을 먼저 알아봐주고 그 속내를 헤아려주려 하는 그들을 잃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괴로울 수밖에 없죠.

불가능한 줄만 알았던 꿈도 언젠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해하고 이해받는 감각, 그게 히나가 파스파레를 통해서 새로이 알게 된 영역이자, 파스파레를 즐거운 곳이라고 여기는 이유일 겁니다.

 

 

+ 루미너스에서의 히나 심리묘사에 대해서.

루미너스 히나 심리 이야기가 나왔는데, 전에도 몇번 했던 이야기긴 하지만 루미너스의 히나 심리는 '사라져버릴 거면/배신당할 거면 차라리 좋아하지 않았던 걸로 하면 되지 않아?' 라고 한다면 아귀가 맞는 부분들이 있음. 그렇게 본다면 파스파레가 흩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의 표면상으론 시큰둥한 반응이 이해가 가게 됩니다. 루미너스 엔딩을 보면 보면 히나는 '이게 공감이구나' 하면서 무대에서 독백을 하는데, 히나가 독백을 했다는 것 자체도 뱅드림 스크립트 내에서 드문 일이지만, 그것이 다섯이서 자신과 같은 마음을 지녔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서 나왔다는 건 분명 중요한 지점이에요. 그 '같은 마음'이란, 파스파레가 해체되어 버리면 쓸쓸할 것이고, 그러니까 사라지지 않고 쭉 다섯이서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사실 연예인이라는 입장이나 소속사 방침 때문에 침착하게 있어야 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처음에 파스파레는 개인활동에 주력한단 이야기를 스태프로부터 전해들었을 때, 이브 빼고는 뭐라고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죠. 물어보거나 침묵하거나, 진정하라고 말하거나 할 뿐. 그 분위기가 히나한테는 무서웠을 거예요. 소중한 파스파레가 흩어질지도 모르는데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여태까지 다들 개인활동으로 바빠서 연습을 못 모였다는 '증거'도 있으니까 정말로 나랑 다른 애들이 같은 마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떠올렸겠죠.

나는 너희들이랑 같이 있는걸 좋아하는데 너희는 다섯이서 같이 못 모여도 뭐라 말도 안하고, 나랑 같은 마음이 아닌 걸까. 그게 너무 쓸쓸해서 거기서 결국 절망회로가 돌아가는 거예요. 아, 어차피 이렇게 될 거면 나도 처음부터 파스파레 같은 거 필요없었던 걸로 칠래. 하고. 여태까지 히나의 묘사는 타인의 시선 위주로 묘사되어서 '속내를 알 수 없는 아이'로 그려졌고, 루미너스의 이 장면도 얼핏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실 상황은 반대임. 히나가 다른 아이들의 속내를 알 수 없어하고 그래서 그들의 진짜 마음에 닿지 못하고 절망하고, 단정지으며 눈을 돌리는 거죠. 그리고 본인에게는 이 일련의 상황들이 너무 견디기가 힘드니까, 나아지기 위해서 그 슬픔을 분리해버리면 되지 않을까, 조금이나마 덜 아픈 방향으로 덧써버리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을 것. 어찌보면 떼쓰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이렇게까지 하는데 누군가 이 모든게 현실이 아니라고 말해달라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