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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사탕통/코튼 캔디

NEEDY GIRL OVERDOSE의 Happy End World 엔딩에 대한 소고

by 료밍 2022. 4. 15.

니디 걸 오버도즈의 히든 엔딩 Happy End World에 대한 소소한 생각. 후세터에 썼던 내용 백업.

 

*읽기 전에

게임 올클리어를 전제로 하는 이야기이며,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비롯해, 해당 히든 엔딩 및 Data0 엔딩, 그 외 직접적으로 언급되거나 언급되지 않은 여러 엔딩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해석이며 게임의 엔딩에 대한 공식적인 해답은 아닙니다. 이 점 유의해 주세요.

 

*트리거 워닝

본 글은 다음과 같은 트리거 요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유의해 주세요.

 

우울증 등 정신병 묘사

약물 오남용

자해 묘사

(관념적인) 자살

정서적 착취

 

본 게임에서 내세우는 테마 면에서, 그리고 우울증 유경험자의 입장에서 '정병러', '멘헤라'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점은 인지하며, 감상 시에도 이 점 유의 부탁드립니다. 

 

 

더보기

Happy End World는 아메가 (일단은) 스트리머로 대성하는 엔딩인 (Un)happy End World의 분기이면서 아메가 공허감에 먹히지 않고 아예 인터넷 생활을 떠났을 때의 가정인데, 아메가 온라인에 의존하는 것을 그만두고 현실의 삶을 살러 가면서 스트리머라는 환각을 쫓던 팬들과 수많은 넷상의 인간군상들도 단체로 인터넷을 떠나고, SNS에도 아무도 안 남아있는 전개를 보인다. 이 엔딩의 의의는 '인터넷을 끊는 것' 즉 이 작품에서 꾸준히 보이는 인터넷에 대한 염세적인 시각에 기반해 넷 의존도를 줄이고 밖에 좀 나가고 건강한 생활도 하는 이른바 '탈온', '갓생'을 과장된 형태로 보여준 거라고도 할 수 있지만, 마지막에 아메가 생각지도 못했던 엔딩에 도달했다고 말하는 부분을 보면 아메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의 낙을 잃고 온라인 생활에서 떠날 정도로 아메는 사랑받고 큰 영향력을 지녔다는 의미도 된다고 본다. 결국 아메가 바라는 건 사랑받는 것이고 스트리머 활동을 하는 것도 인정욕구 때문인데, 이 엔딩에서 인터넷 엔젤 초텐쨩은 존재만으로 인터넷을 좌지우지하게 된 나머지 사라지는 것만으로 전 인터넷을 폐허로 만들 정도의 거대한 존재가 되었다.

 

이 엔딩이 (Un)happy End World의 반대항인 '해피 엔드'인 이유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아메에게 그만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았음을, 그만큼 자신이 큰 존재였음을 제일 확실하게 증명하는 엔딩이기 때문이다. 사라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현상이 전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스케일로 이루어진다. 거기다가 P쨩의 존재가 상상 속 연인인 것처럼 P쨩과 함께 이룩한 수많은 가능성들도 (꼭 전부는 아니라도 많은 부분이) 한때의 망상이라면, 더더욱 이것이 아메가 상상할 수 있는 확실한 해피엔딩일 이유가 있다. 적잖은 사람들이 죽고 싶다거나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한번쯤은 내가 죽어도 사람들은 돌아봐줄까? 슬퍼해줄까? 기억해줄까? 그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아메는 결국 인터넷이라는, 자신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해주기를 바랐고, 초텐쨩이라는 페르소나의 죽음은 이를 조종하는 아메가 관측 가능한 일이니까. 즉 내가 사랑받는다는 증명, 내가 없어선 안 되는 존재라는 증명을 제일 확실하게 목격하는 셈이다. 아메도 예상못한 엔딩이라 하는 걸 봐서는 이렇게까지 그들이 날 사랑할 일은 없을 거야, 라는 사고가 저변에 깔려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결국 존재의 소멸, 방송 페르소나라곤 하지만 사람들과 소통하는 인격의 죽음을 걸고 자신의 팬들(나아가 인터넷의 전인류)을 시험했다는 점에서 아메가 가진 병적인 의존성까지 엿보인다.

 

이 게임의 다른 엔딩들과 이 엔딩을 대조해 보면 꽤 흥미로운 부분들이 보인다. Happy End World는 제일 충격적인 배드 엔딩 중 하나인 INTERNET OVERDOSE와도 선명하게 대비된다. INTERNET OVERDOSE에서 넷상의 온갖 악성 반응들에 노출되어 정신이 붕괴하고 끝내 현실의 아메의 영정 사진을 든 채 나타나는 초텐쨩과, Happy End World에서 초텐쨩을 사라지게 하고는 자신이 인터넷 전체의 침체기를 불러올 정도로 사랑받은 존재임을 깨닫고 거기에 놀라는 아메의 대비는 제법 의미심장하다. 악의가 죽인 건 아메인데 사랑이 증명되는 순간은 초텐쨩의 죽음이란 점, 배드엔딩의 제목은 인터넷 오버도즈(중독)인데 해피엔드라고 이름에 명시된 엔딩은 인터넷 의존을 끊는 엔딩인 것까지, 결국 아무리 초텐쨩이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사랑받아도 '진짜 나'를 매개로 얻은 사랑이 아니면 공허하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처럼도 보인다. 거기다 Happy End World는 (Un)happy End World 분기 엔딩임을 생각하면, 스트리머로서 성공한 이후에도 내면의 공허에 침잠하고 P쨩에게까지 선을 긋는 (Un)happy End World의 삶은, 그녀가 바란 애정과 인정은 '아메'라는 화면 밖의 자신에겐 닿지 못했단 의미겠지. 자신을 사랑하고 지원해주는 P쨩은 가상의 존재. 인기 스트리머인 초텐쨩도 가상의 페르소나. 그래도 Happy End World에서는 초텐쨩은 사라져도 아메의 인격이 남아있기 때문에 초텐쨩을 구현해낸 자신이 그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거고.

 

앞서 나온 요소들을 보면 인터넷 생활에서 받은 호의를 부질없다고 말하는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데이터 0 엔딩인 comment te dire adieu는 결국 P쨩이라는 상상의 친구를 몇 번이고 떠난 후 혼자 힘으로 스트리머로 대성하는 결말인 걸 봐서는, 인터넷이 완전한 허상은 아니며 거기에서도 스스로를 긍정하면서 살 수 있으면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인터넷도 현실도 사람 사는 곳인 건 마찬가지고, 누군가는 너를 사랑해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를 사랑해볼 수는 있으며, 그걸로 달라지는 건 있다. 그런 메시지를 느꼈다. 마찬가지로 Do you love me?도 통상 엔딩 중에는 제일 해피엔딩으로 분류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엔딩이 해피엔딩에 해당하는 구독자 수 100만명 조건에서 아메의 우울도가 높을 때 뜨는 엔딩이라는 점, 일부 팬들에게는 아메가 어느정도 유사연애 셀링을 하는 걸로 받아들여진 점을 고려하면, 우울에 잠식된 자신과 P쨩이라는 최고의 우군, 즉 아메의 '어두운 현실'을 보여주는 요소들을 방송에서 보이고, 더 많은 걸 하고 싶다고 지켜봐 달라고 말하면서 무지개 슈퍼챗으로 축하받는 결말은 초텐쨩 너머의 아메의 일부가 긍정받았다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이건 망상 속의 인물인 P쨩이 실존하는 상황으로 가정해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으로 가정해도 해피엔딩으로 성립이 가능한데, P쨩이 존재하는 가정하라면 라인(JINE) 메시지의 커플 스트리머 하자는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면서 자신을 끝까지 지원해준 P에게 공로를 돌리는 아메 나름의 보답이라 볼 수 있고, 존재하지 않는다 가정해도 방송을 여기까지 이끌어온 'P쨩의 기획력'은 아메 본인의 기획력이란 소리니까, 결국은 이 모든 걸 혼자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메에게는 앞으로를 헤쳐나갈 힘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가상의 연인을 CG처리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좀처럼 밖에 나가지 않는 외로운 아메가 밖에 나가서 방송을 하고 새로운 기획을 시도해봤단 것만으로도 발전이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을 듯.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밖에 나가는 것처럼 간단해보이는 일도 큰 발걸음이니까.

 

초텐쨩이 트위터에 올린 트윗 중에는 자기가 누군가에게 구원이 될 수 있다면 스트리머의 생활은 보람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랑받고 싶었던 아메는 인정욕구에 굶주려 인터넷 방송으로 세상에 손을 뻗었고 그녀의 공허는 채워지지 않았지만 그 거대한 공허는 역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품고 보듬는 큰 그릇이 되었다. 인터넷은 시궁창이라고 하지만 거기서밖에 살 수 없었던 나약하고 외로운 이가 만들어낸 일말의 선의와 낙원이라 한다면, 거기서 모순적인 감동까지 느끼는 건 과찬일까. 그리고 그런 그녀도 결국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게 자립의 길이란 점을 수많은 P쨩과의 공상 속 여정에서 깨달았단 데서, '초텐쨩의 해피엔딩'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아메의 해피엔딩'인 히든 엔딩과 데이터 0 엔딩은 자기긍정에 대한 왕도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본다. 자신을 아끼기 시작하자 스스로의 문제도 직면하고 해결하려 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메의 모든 불안과 정신적 문제를 받아주며 그녀를 사랑하는 상상 속 연인 P쨩이 아메의 마음 속에 있단 건, 아메에게는 자신을 사랑하고 싶단 마음이 있단 거니까, 그것부터 현실로 만들어보는 데서 모든 게 시작되는 셈이다. 그리고 아메의 방송들과, 어쩌면 조금 어두운 회고까지도 본 시청자들도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인터넷 엔젤 초텐쨩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정말로 어두운 인터넷에 강림한 한 줄기의 빛이 될 수 있겠지.

 

여담으로, P쨩에 대한 반전은 처음에 좀 충격적이긴 했지만, 결국 아메가 자립하기 전까지 의지가 되고 자립한 후에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상상 속 연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은 과도기적인 의지가 되어주면서 마침내 내게서 졸업해 건강하게 나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이겠지. P쨩의 선택이 곧 아메의 선택이라고 본다면 아메와 함께한 여정들도 달리 보인다. 여기서 P쨩은 아메의 비건강한 습관의 의인화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면이 단적으로 보이는 구간이 첫 번째 정신붕괴 이벤트에서 P쨩에게 손목을 그어 달라고 하는 부분. 영어판 스크립트 기준으로 팝업창의 이름이 'Self-destruct', 즉 자폭이다. 많이들 이 게임에는 해피 엔딩이 없으며 아메를 '고치는' 방법도 없다고들 말하지만, P쨩이 아메가 품은 우울과 정신병 증세들을 함께 체험하고 모든 엔딩을 다 본 후에는 아메가 사라진 데스크탑에 홀로 남겨지는 결말은 아메가 비건강한 습관들을 내려놓았다는 제법 명확한 증거가 되지 않나 싶다. 이는 아메와 P쨩이 직접 만나게 되는 제 4의 벽 엔딩 'Rainbow Girl'이 약물중독으로 인한 환각 엔딩임과도 대극을 이룬다. 개인적으로는 이 반전이 밝혀질 때까지의 흐름을 인터넷 시대의 멘헤라 어른들을 위한 인사이드 아웃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였음. 

 

선대 P쨩들이 있는 것도 별 생각은 없었던 게, 루트에 따라서 P쨩은 협조적이 되기도 하고 쓰레기도 될 수 있으니까.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른 P쨩의 다른 모습들이 초기 설정과 아메의 그 당시의 정신상태가 반영된 상상이라고 하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몇몇 노골적인 배드엔딩들의 충격적인 전개를 생각하면, 그게 차라리 아메가 상상해낸 최악의 가정이라면 다행이다 싶었음. 이것도 어디까지가 아메의 망상이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순 있지만, 적어도 정신적으로 취약한 여성 스트리머와 공의존 관계를 형성하고 착취하면서 자극적인 스트리밍으로 이득을 취하거나 자기파괴 행위로 몰아넣는 위험인물이 실존하지 않거나(단 P쨩의 존재만이 망상이고 사건은 실존한다면 아메 스스로 비건강한 습관을 끊지 못해 수렁에 빠졌다는 이야기도 되니까 온전히 안심할 순 없는 결말이다), 아예 그런 일 자체가 없었고 현실의 아메는 불안에 빠져 최악을 가정하고 있단 정도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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