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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사탕통/코튼 캔디

어나스테 시노마요 신간 'Distant Dreams' 회지 샘플

by 료밍 2022. 4. 30.

2022년 5월 1일 제4회 어나더 스테이지 [J21b] '사 탕 조 아' 부스에서 발매되는 앙스타 시노마요 신간 'Distant Dreams'의 샘플입니다.
마요이와 시노부가 과거에 병실에서 만난 적이 있다는 과거날조를 바탕으로 한 과거회상물입니다.
본 원고는 추후 7월 디페스타에 발매될 마요이 오른쪽 단편집 ‘Let’s Make Love!’ (가칭)에도 가필수정을 거쳐 수록될 예정입니다. 본 책의 구매자 대상 할인이나 특전 등 역시 고려하고 있습니다.

A5 소설본 / 중철 / 30P / 전연령 / 3000원

주의사항 :
본 회지는 캐릭터들의 과거 날조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작과 조금 다르거나 밝혀지지 않은 사항을 캐릭터의 과거로써 서술할 수 있습니다.

트리거 워닝 :
어느정도 암시적인 표현으로 두고 있으나, 실제 질병 증세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직접적, 암시적인 따돌림 묘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요조사 폼 링크
수요조사는 대략적 수요 파악 용으로 결과와 별개로 극소량 정도는 뽑아갈 것 같습니다.


표지 디자인 by 오밀조밀님 (@omiljomil__)



[본문 샘플]
샘플의 내용은 실책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날씨가 슬슬 더워지는 시기였지만, 병실 안은 특별히 덥지도, 그렇다고 춥지도 않았다. 어린 환자들이 생활하고 회복하기에 적절한, 그러나 특색도 없이 무미건조한 온도로 유지되는 병실. 어차피 쭉 입원해 있는 사람에게 바깥의 계절감은 정기적인 피 검사 수치가 변하는 것이나 똑똑 떨어지는 링거액을 교체하는 것보다도 체감되지 않는 변화였고,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깔린 소아병동의 알록달록한 벽지만이 그나마 야외 같은 활기와 색채감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린 아야세 마요이는 수많은 아이들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가운데에도 소아병동의 구석 창가 침대를 묵묵히 지키는, 이 병동의 지박령 같은 이였다. 파리한 인상에 어깨보다 살짝 긴 머리를 한쪽으로 내려 묶은 것이 흡사 옛 이야기의 유령 같은 인상을 주던 그 아이는, 외롭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주변에 초연한 채 그림책을 읽거나 때때로 종이공작을 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얌전하다 못해 존재감마저 느껴지지 않아 사람이라기보다는 병동의 풍경에 가까운 존재. 그런 그에게 특별히 말을 거는 사람도 없었다. 가끔 책에 얼굴을 푹 파묻은 채 혼잣말을 하며 실실 웃는 그의 모습을 보고 오랜 입원으로 머리가 이상해진 것은 아닌가, 혹은 머리가 이상해서 오래 입원한 건 아닌가 하고 수근대는 소리는 있었다. 마요이는 그런 시선들조차도 없는 것처럼 대응하며, 속으로만 외로움과 왠지 모를 서러움을 삼켰다.

아야세 마요이의 병상 생활은 외로웠다. 그렇다고 달리 병상 밖의 생활이 외롭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늘 안색이 나빴고 툭하면 픽픽 쓰러지는 마요이와 놀고 싶어하는 아이는 없었다. 체육 시간이면 늘 그는 마지막까지 남겨지다 가위바위보에 진 사람의 팀에 떠넘겨지는 존재였다. 그가 딱히 운동신경이 나쁜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학급 안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그는 늘 구석자리에 앉아 뭔가를 노트에 끄적이거나 종이접기 따위를 만지작거리면서 혼자 중얼거리고 기분 나쁘게 웃는 애 정도로 인식되었다. 똑같이 즐거운 것에 몸담아도 마치 자신들의 웃음과 마요이의 웃음에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그들은 혼자서 자신만의 즐거움에 몰두하는 마요이를 가만 두지 않고 비웃어대거나 시비를 걸다가 질리면 욕봤다는 얼굴로 떠나가곤 했다. 누군가는 병이 옮는다며 그를 더러운 것 보듯 봤고, 그가 가진 병이 실제로 전염성이 있는지는 알 바 아니란 듯이 그런 망발들을 마요이의 앞에서 소리 내어 외쳐댔다. 가끔 그들은 마요이의 팔에 붙어있는 반창고 같은 무언가가 수상하다며 자꾸 건드리려고 했기 때문에, 마요이는 평소에 반팔 상의를 입지 않았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어떻게든 일상으로 돌아오면, 몸보다 마음이 아팠던 나날이 마요이에게 계속되었다. 그것은 괴로웠지만, 몇 년이 지나면 그저 성가실 뿐이 되었다. 고작 초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그는 인간에 대한 체념을 기억하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도 그것은 다를 바 없었다. 불행하게도 마요이는 소위 말하는 조숙한 아이였고, 그는 인간이 배척당하는 제일 근본적인 이유가 차이에서 온다는 것을 빠르게 습득했다. 그렇게 마요이는 그가 당하는 소외의 이유를 당연한 것처럼 아직 성장중인 자아에 납득시키고 말았다.
사라지고 싶다.
병이 깊어지고 쓰러지는 날이 많아져 학교에서 병실로 일상의 무대를 옮기는 순간, 마요이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적어도 병실에서는 다들 생소하고 답답한 환경에서 탈출할 생각에 바빠 아무도 마요이를 건드리지 않았던 게 위안이었다. 같은 학교 같은 반도 아니고, 다 낫든 더 큰 병원으로 옮기든 해서 오래 볼 일 없는 이에게 굳이 큰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으니까. 자신의 소원대로 마요이는 사라졌다.  그러나 그 말은 곧, 그와 최소한의 교류를 하는 아이도 없다는 소리였다. 학교를 벗어나면 그래도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자신을 사람으로 대해주고 취미나 좋아하는 책이나 음악 같은 이야기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하고. 그렇게 한순간 품었던 치기어린 기대도 천천히 풍화해 갔다.

마주하는 것이 악의든, 무관심이든, 그 안에서 아야세 마요이는 외로웠다. 그 해 여름, 바로 옆자리 침대에 그 아이가 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순간의 만남이었지만, 어렴풋하게 즐거웠던 한 줄기 빛 같은 순간. 영웅과도 같은, 자신의 ‘두목’이었던 사람.
이것은 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 대한 단상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임무 도중 부상이라니. 아무리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다지만, 이번에야말로 새로 개발한 필살기, 도약하는 개구리의 인술을 멋지게 선보이며, 난공불략의 요새를 넘어…… 놀이터에서 공놀이 중에 담벼락을 넘어간 이웃집 아이의 공을 찾아올 수 있다고 어린 센고쿠 시노부는 생각했다. 조금 믿음직하게도 보이고 싶었기에 일부러 놀이터의 제일 높은 발판 위로 올라가, 담벼락 너머의 거리를 눈대중으로 재며 훌쩍 점프를 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약력이 모자랐는지, 담벼락 바로 앞에서 추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낙법 자세마저 취하지 못한 채 태세는 무너지고, 다리에는 날카로운 통증이 찌르듯 찾아왔다.

어쩔 수 없는 퇴각이지만 금이 간 다리는 쓰라렸다. 전치 3주라고 들었다. 이 정도면 닌자로서의 활동은 한동안 휴식이다. 어차피 휴식한다고 아쉬워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병실 밖에서도 이런 위험한 일은 그만두고 학문에 정진했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래도 위기상황인 건 마찬가지였다. 한때 같은 유파에서 수행을 하던 동료들은 적군에게 사로잡혀 운명을 맞이하거나, 혹독한 닌자의 길을 그만두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학문이나 장사 같은 길에 집중하고, 지금은 유파라고 할 것도 없이 1인 군대마냥 혼자 모든 임무를 짊어진 막중한 입장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 명의 부상은 닌자군 전체의 부상이나 다름없었다.
…라는 건 설정상의 이야기다. 냉정하게 말해 시노부는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닌자 놀이’가 멋있었던 것은 초등학교 때까지였다. 시노부가 좀 더 어렸을 때, 날랜 몸놀림으로 선보이는 묘기들은 친구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어려운 한자를 쓰고 멋들어진 인술 이름들을 술술 외면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딱히 멋있게 보이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시노부는 그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게 즐거웠고, 다른 친구들도 좋아하는 일의 멋짐을 알아주길 바랐을 뿐이었다. 한동안 그는 학교에서 명물이자 인기인처럼 지냈고 그의 주변에는 친구도 많았다. 정말로 닌자군의 두령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관계들이 정말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재밌는 구경거리나 한때뿐인 평판에 의존한 무언가였는지, 지금의 시노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은 두령도 영웅도 아니라 단순한 광대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 한 구석이 쓰라렸다.

그도 그럴게, 지금 외톨이인 자신이 그 증거이듯 그런 행복과 명성은 얼마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명성 따위가 목적인 것도 아니었지만. 슬슬 중학교 입학을 앞두면서, 아이들은 그런 유치한 역할극 따위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공부를 하느라 바빠서, 장래희망을 어릴 때부터 결정해서, 같은 제법 건실한 이유로 놀이를 그만두는 이들도 있었고, 어중간하게 조숙해져서 유치한 짓은 그만두자고 의식적으로 어른스러운 척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만화나 영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흉내내는 청소년들의 유감스러운 기행들을 비웃는 글들을 접하고, 주변에 그런 녀석이 있다면서 손가락질하기 시작한 아이들도 있었다. 특히 그런 아이들은 시노부를 가리켜 ‘중2병’이라고 놀려대곤 했다. 아직 중학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중학교 2학년처럼 군다고 비웃는 건 모순이 아닌가? 멋대로 어른스러운 척은 다 하면서 아직 맞이하지도 않은 그 나이대의 행동을 비웃는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 아니면 ‘되기 싫은’ 자신을 미리 예상하면서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옥죄는 것인가? 그렇게 치면 자신도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리인액트먼트, 그리고 라이브액션 롤플레잉이라는 개념을 접한 적이 있었다. 역사적인 전투나 생활상, 말투까지도 진지하게 재현하고 역할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시노부가 하는 닌자의 수행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취미를 하는 사람들은 전부 자신이 구한 조악한 장난감 수리검과는 다른, 정교하게 재현된 복장이나 모조 무기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 깊이에 시노부는 감탄했었다. 단순한 역할극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정도의 세계가 펼쳐졌다. 이런 것을 진지하게 삶의 일부로서 하는 어른들도 있는데, 조금 다른 취미, 나아가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을 지닌다고 그렇게 비웃을 일인가? 그 모든 것들이 시노부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았고, 조금이지만 그런 평판에 반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당장에 찾아오는 거대한 소외의 파도는 그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고, 화려한 묘기들과 닌자의 늠름함 아래 본래 얼굴은 수줍은 성격이었던 그는 무자비한 악의와 배척 앞에 속수무책으로 숨어다녔을 뿐이다. 적어도 은신술을 배워둔 것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은둔자이자 암약하는 영웅의 삶은 고독한 법이다. 그 공이 알려지지 않더라도 흔적은 남으며, 모두에게 비웃음당하고 따돌림당하고 외톨이가 되어도 갈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그 만큼 센고쿠 시노부에게 닌자의 길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진지한 마음가짐이었다. 난세는 영웅을 부르는 법. 그러면 그만큼 닌자의 멋짐을 더 알리면 될 뿐이다. 그는 즐겨보던 특촬물의 모토를 떠올렸다. 닌자지만 숨지 않는다. 임무는 은밀하게, 하지만 선행을 꾸준히 쌓아나가 영웅이 된다면, 언젠가는 자신의 뜻을 모두가 알아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 센고쿠 시노부는 외로웠다. 다리를 다쳐 입원한 후에도 소아병동은 텅 비어 있는 듯했다. 단 한 명, 구석 침대를 지키며 책을 읽고 있는 그 아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때뿐인 만남이지만, 자신의 길을 오롯이 긍정해준, 친구라고 불러도 될 법한 아이. 자신을 진심을 담아 두령으로 여겨준 동료.
이것은 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 대한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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