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되새기기 위해서.
*
왼팔의 핏자국이 검게 굳어간다.
너무나 쉽게 벌어진 선홍색 살갖 사이로 홍조 띄듯 스민 빨강이, 어느새 그 홈을 전부 메우고 있다.
가져서는 안될 감정을 결국은 가지고 만, 내 자신에게 내리는 벌.
완전히 굳지 않은 핏덩어리는 물에 쓸려내려갈까
작년의 상처처럼 이 흉행도 흉터로 남겠지. 이제 반팔은 포기해야 할까봐. 지금은 겨울이니까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용기가 없어서 리스트컷도 하지 못한다. '날'이 직접적으로 닿고, 내 살 속을 파고든다는 생각이 소름돋는다. 그 대신에 손톱깎기라는 매우 편리한 도구의 사용법을 알았다. 의미없는 몹쓸 눈물을 눈꺼풀로 짓이기면서 두 날도 살갗을 파고들어 뜯는다. 손톱을 보듯 깎아나간 살점을 입에 넣고 씹는다. 아무 맛도, 피 맛도 나지 않는 살을 씹으며, 내게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의 몇 가지 속성들도 절제할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한다. 어차피 흉터와는 뗄래야 뗄 수 없었던 사지였다. 실수투성이였던 나는 팔과 다리에 상처가 끊이지 않았다. 이것도 실수로 인한 상처라고 무마할 수 있겠지. 그러고보니 그 사람은 이 말을 들으면 몸서리칠 것이다. 남이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걸 원래 못 보던 사람이었으니까. 상냥한 사람. 지나칠 정도로. 그러나 나는 착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내 마음을 너무 놓아버렸다. 언제나 나는 경계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시도가 전부 물거품이 되었다. 물거품이 된 시도가 불러온 과오는 피거품으로 갚아야겠지. 내 자신의 명줄을 조금이라도 두텁게 해준 그였지만, 내가 인간이라는 실감을 되찾아주기 시작한 그였지만, 그 사람도 역시 이러한 결과까지 불러오고 싶어하진 않았으리라.
차라리 내가 기계였으면 좋겠다. 유지보수가 용이하고 이상이 생기면 몇번 손만 봐 주면 고쳐지고, 정 못 쓸 거라면 아예 버려지고 그대로 의식을 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간의 육체는 불편하다. 우선 아프다. 물론 육체만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따라오는 사고회로가 불편하다. 육체적인 외상이 없어도 사고회로는 아파한다. 기계의 그것만큼 정교하고 논리적이지 못한 고깃덩이 몸의 사고회로는 눅눅하게 발효되기를 반복해 썩은내 나는 망상만을 끝없이 양산해낸다. 사고회로가 죽어가는 나는 피비린내도 나지 않는 시체일 뿐. 몸보다 먼저 시체가 된 마음은 정체된 채로 자기가 담긴 무력한 고깃덩이가 늙어죽기를 바란다.
구해달라고 먼저 말하지 않았다. 시작은 사소했다. 그 때의 내 마음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밑바닥 위에서 얇게 평정을 찾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혐오는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그것은 일상화되어 있었으며 의식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조금 위쪽의 평정을 무리없이 연기할 수 있었다. 정체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 있었지만, 그것은 날카롭게 다가오지 않고 얇게 펴저 그 편평한 평정 위에 자리잡았다. 무엇도 의식하지 않고, 어떠한 변화에도 동요하지 않은 채로, 하지만 제 분수는 알듯이 밑바닥에 평평하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지극히 사소한 계기로 나를 어떻게든 움직여보려 했던 것이다. 순수한 흥미였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한두 해에 한두 명 쯤 나에게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으며, 개중에는 나의 관찰대상으로서 눈에 띄는 점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 역시도 그중 하나였다. 아마도. 마구 쥐어뜯은 팔이 욱신거린다. 그 사람은 나의 태생적인 결함을 크게 내색하지 않았고, 여타 '그 부류'의 인간이 그렇듯 그 결함이 표면적으로 자아내는 페르소나를 관찰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여러 사람의 노이즈가 섞이고, 그 사람을 둘러싼 사람들의 노이즈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노이즈에 섞이고, 몇몇 사람들의 주파수를 잡아 파장을 맞춰 보려는 시도도 하면서, 나는 그것이 즐겁다고도 생각하고, 또한
(여기서 끊겨있다. 이후에 뭘 쓰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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