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로그. 상대는 알아서 상상. 드림일 수도 아닐 수도.
"이런 한적한 곳에 오는 것도 오랜만이네. 그것도 둘만이서"
그녀와 치르노는 쇼파 위에 나란히 앉아, 나른한 몸을 서로의 어깨에 기댔다. 연한 푸른색 머리카락 위로 반쯤 풀린 리본이 스륵 하고 내려왔다. 그녀는 리본을 집어 그 매무새를 고쳐주었다.
"칠칠치 못하다니까. 치르노는 역시 바보네"
"으으... 누굴 더러 바보라는 거야! 그리고 분위기 깨게 갑자기 왜 그런 소릴 해!"
"리본이 풀린 것도 모르고 있었으면서 분위기 타령 하기는... 그런 치르노가 귀엽지만"
"너, 너!"
치르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가 내뿜는 냉기의 온도도 조금 오르고 습해진 것 같다.
"에-잇." 그녀는 고쳐매고 있던 리본을 당겼다.
"끼얏!"
헐렁하게 매인 리본은 장난스러운 당김에 사르륵 하고 풀려, 적은 숱을 동여매고 있던 치르노의 머리칼 뭉치를 놓았다.
"뭐하는 짓이야!"
"미안. 손이 미끄러졌어."
"고의잖아. 바보라도 그 정도는 알아. 매일 나한테 장난만 치고!"
"바보인 거 인정했네?"
"바보 아냣!"
버럭 내뱉은 치르노는 그녀가 쥐고 있던 리본을 낚아채서는 불안한 듯 만지작거렸다. 얼굴이 여전히 빨갛다. 능글맞게 웃고 있는 그녀로부터 고개를 돌린 채, 습해져 있는 자신 주변의 공기를 추스르려 했지만, 냉기는 커녕 오히려 습기만 공기중에 차오를 뿐이었다. 그런 치르노의 노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눈꺼풀은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소파 등받이에 목을 늘어뜨린 채로 그녀는 시원한 물기를 머금은 편안한 공기를 피부로 받고 있었다. 눈꺼풀이 눈동자의 나머지 반을 덮었다.
방은 조용했다.
그대로 몇 분 간, 방은 조용한 채였다. 치르노 주변의 공기도 습기 찬 미적지근함에서 평소의 시원한 냉기로 돌아왔다.
침착과 거리가 먼 치르노에게 이런 어색한 무언은 참을 수 없이 따분했을 것이다. 특히나 지금 옆에 있는 그녀는 치르노의 연인이었다. 그리고 치르노는 자신의 산만함을 그대로 받아주는 그녀를 좋아했다.
"자는 거야?"
그녀에게선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평소처럼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옷 안에 얼음을 집어넣으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치르노는 조금 더 지나친 장난을 치고 싶었다. 치르노는 늘어진 그녀의 몸 위로 올라탔다. 움직임이 없는 걸 보니 제대로 곯아떨어진 모양이다. 살짝 열린 셔츠 사이로 그녀의 가슴골이 보이자 치르노의 얼굴이 또 빨개졌다. 하지만 그녀는 머리보다 행동이,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움직이는 소녀였다. 치르노는 지금이라도 그녀의 옷깃을 쥐고 무방비해 보이는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부딪히고 싶었다. 하지만 섣불리 그럴 수가 없었다.
"...왜"
치르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빗어내리면서 중얼거렸다. 몇번이고 가늘고 작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부드러워서 계속 쓰다듬고 싶은 감촉이었다. 치르노의 시선은 다시 무슨 일을 당하는지도 모른 채 잠자기 바쁜 눈앞의 얼굴을 향했다. 지금이 기회다, 하고 몇번이고 마음을 먹는다. 항상 뭐든지 그녀가 선수쳐 왔으니까, 여기서만큼은 자신이 선수치고 싶다는 작은 오기.
"저기"
하지만 그렇게 고집을 부릴 때마다 그녀가 자신에게 돌려준 것이, 치르노는 너무나도 신경쓰였다.
"너는 왜 나한테 그렇게... 상냥해?"
둔한 머리로 그리 어휘가 풍부하지 않은 머릿속 사전을 뒤지며, 적당한 말을 찾아 이어간다.
"내가 귀찮지 않아? 이런 바보 꼬마애가 옆에 달라붙어 다니면 성가시지 않아?"
여전히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성가시지 않다' 라고 얘기한 것처럼 느껴진 건 단순히 치르노의 착각이었을까?
"다들 나보고 바보 꼬맹이라고 하는데. 상대하기 싫다고 얼굴에 써놓은 것처럼 찡그리고, 어린애 취급만 하고. 너도 날 어린애 취급 안 하는 건 아니지만... 네가 나한테 그러는 건 달라. 나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 그쪽에서 항상 그러듯이 나는 바보니까."
그렇게 말하고 치르노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좀 더 가까이 상체를 밀착해, 정면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따뜻해"
머리를 가슴에 뉘이고는 약하게 그녀의 상체를 끌어안는다.
"나는 얼음요정인데... 차가운 게 좋아야 하는데... 따뜻한 게 좋아. 너는 따뜻해서 좋아. 이상하지?"
이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대답을 바라고 이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눈 앞의 그녀 - '연인'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르는 - 가 들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말이 새어나오고 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정확하게 그녀의 귀에, 그리고 가슴에 와닿고 있기나 한지도 치르노는 잘 모른다. 하지만 마음에 낀 성에를 당장에라도 털어내고 싶었다. 이 따뜻한 사람의 미소로, 말로, 접촉으로, 입맞춤으로-
전부 녹이고 싶었다.
"그러니까 대답해줘. 나, 이래도 되는지"
치르노는 마치 갈망하듯 연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스륵 하고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그 바보같은 자는 얼굴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치르노의 입술에 그녀가 그렇게도 좋아하고 원했던 따뜻함이 닿았다.
그렇게 대답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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