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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사탕통/팝핑 캔디

[슈이즈] 녹색의 창

by 료밍 2016. 10. 29.

트위터의 #멘션온_캐릭터_2명으로_커플연성 이 해시태그용으로 던짐. 뭔 생각으로 썼는지도 도무지 모르겠음. 주제는 녹안페티시였던 거 같은데 이상하게 되어버린 듯

+원래 제안받은 커플링은 이즈미X마드모아젤이었는데, 사실상 슈이즈라서 커플링 표기 수정.


-심각한 캐릭터 붕괴와 빌어먹을 급전개 주의

-작업BGM은 霜月凛from日向美ビタースイーツ♪ - フラッター現象の顛末と単一指向性の感情論



두 쌍의 초록이 빛을 잃은 것이 자신의 앞이었음이 유난히 사무쳐오는 날 그녀를 만났다. 진짜보다도 영롱한 초록색의 합성수지 안구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이라도 있는 듯이, 내가 보고 싶었던 눈을 지닌 두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아이와 함께 하던 먼 어릴 적의 기억, 그로부터 그 아이와 멀어지고 조금 자라고 청춘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 학교에 오고 그 바보같은 왕을 모시게 된 때의 기억. 마주쳤던 눈의 색을 떠올리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나는 그녀와 마주보고 있었다. 인형일 뿐이라고 생각하기엔 기이할 정도로 사람의 추억을 자극하는 따스한 눈이었다.


"예쁘네."


스스로도 어이없이 반했다 싶었다. 반했다기보단 홀렸다고 말하는게 옳을 것이다.

예정된 대답이라도 원했는지, 나는 그녀에게 몇번이고 말을 걸어보았다. 하지만 침묵을 지킨 채 그녀는 웃을 뿐이었다. 


*


인형 아가씨를 소중하게 안으며 앉힌 무릎 위며, 말 상대라도 되어주듯 그녀가 다소곳하게 자리잡은 책상 위로 눈이 갔다. 말은 걸지 않는다. 눈과 눈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아니, 눈을 바라보는 것만이 의미를 지녔다 되도록이면 앞모습을 볼 수 있을 때 기회를 잡았다. 다행이도 내 책상은 인형의 주인의 책상과 그리 멀지도 않았다. 그래도 계속 쳐다보는 걸 알았는지, 인형 뒤의 사람 - 있다는 걸 굳이 신경쓰고 싶지는 않았다 - 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아름다우니까 이쪽을 바라보는 건 별로 신경쓰이진 않지만, 볼일이라도 있다면 빤히 쳐다보기보단 말로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별로 그쪽을 바라보진 않았어. 볼일이 있는 건 거기의 인형이라고"


그녀의 입을 빌어 말해주길 바랐지만, 내 앞에서 유독 그녀는 말하지 않는다. 그 사실이 왜인가 자존심 상했지만,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나를 보지 않는 눈이기 때문에 계속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따스한데도 불구하고. 새삼 얄미워졌기 때문에 나는 뒤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 자신에게 볼일이 없다는 것에 안도했는지, 그는 잠깐 고개를 젓고는 말을 잇지 않았다. 아쉬웠다. 


몇 날 며칠이고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역시 예상대로 그녀가 말하지 않는 대상은 나 뿐이었다. 왜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불쾌하게 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녀 뒤의 실이 감히 그녀에게 홀리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고 그녀를 옭아매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그가 기분나쁘다고 말한 우리 반의 두 녀석에게도 그녀는 상냥하게 말을 건네주는 것이었으니, 언젠가 나를 바라보며 말해주는 날도 찾아올 성 싶었다. 오지 않기에 편안할 수 있는 것인데, 왜 그렇게 나는 그녀를 갈망하고 있는 것일지, 알 길이 없었다.

혹은, 그 감정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알면서도 내가 막연하고도 망연한 생각에 취해 있을 뿐이거나. 실로 홀렸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상태잖아, 이거.

어디를 보는지 모를 그 눈에서 따스함만은 느낄 수 있어서 울고 싶었다. 늘상 웃는 그 아름다운 얼굴이 얄궂었다.


요즈음 잠도 잘 오지 않아서 겨우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올리면, 항상 꿈을 꿨다. 깨진 초록색의 보석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나는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작고 딱딱한 손이 어루만지곤 했었다. 고개를 들어보면 그녀가 있었다. 예쁜 색의 잔해 앞에 머리를 조아리면 어느새 손이 나를 쓰다듬고 있었고, 모아 꼭 쥔 손을 한 손으로 감싸지도 못하는 그 손이 어째 양 손등 전부를 감싸듯이 따뜻했다. 고개를 올리면 그녀는 실눈으로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눈동자를 숨긴 웃음이라서 서글펐다.


*


어김없는 시선의 끝. 그러나 그 시선이 끝나는 날은 오고 말았다. 커튼 뒤의 인형사가 극의 끝이라도 고하듯이, 그는 자리를 떠 내 쪽으로 걸어왔다. 드문 일이다. 누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어지간해선 고독을 선호했던 그가. 내가 꽤 불쾌하게 했던 모양이다. 뭐, 불쾌하게 했다고 해도 알 바는 아니다.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서 복화술이라고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사실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무너질 거 같아서겠지만.


"세나."

"별일이네. 먼저 와서 이야기하는 건."


이름을 불러주는 게 네가 아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서 나는 그의 성이며 이름을 입에 담기를 거절한 채 그에게 용건을 요구했다.


"너야말로 평소와 다른 것이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다니면 네 용모가 살지 않아."

"쳐다보는 게 기분나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그래."


고개를 숙이지 않았어. 내가 고개를 숙일 사람은 정해져 있다고. 그저 내가 보고 싶은 눈을 한번만이라도 더 바라보는 게 그렇게 싫은 거라면, 그냥 처음부터 그녀를 데려오지 않아도 됐잖아. 그렇다고 왜 나한테는 그녀가 말을 걸지 않느냐, 라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중한 걸 잡으라는 말은, 그게 아니었을 텐데."


인공물로 빚어진 두 눈에서 빛이 사라지고, 올린 고개의 시선은 그녀와 같은 빛을 담은 보랏빛과 마주쳤다. 아, 그 역시도 초록을 잃어버린 것인가. 슥, 하고 곱지만 부드럽지만은 않은 손이 인형의 눈꺼풀을 더듬어 내린다. 초록이 보이지 않는다. 추억으로 만들어진 여인은 그렇게 잠들어버렸다.


"너라면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잘 알고야 말고. 그렇게 대꾸하고 싶었는데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해왔던 생각을 그는 처음부터 정확히 알고 있었다. 불쾌하다는 기색이 아니었다. 같은 아픔을 안다는 오만이라고, 나는 감히 단정지어보았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어."


자리를 뜨고 걸음을 빨리 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그날 밤 꿈에서 나를 쓰다듬던 그녀를 올려다보면 처음으로 그녀가 눈을 뜬 채 웃고 있었다. 영롱하고도 아늑해야 할 눈 대신에 뻥 뚫린 구멍만이 있었다. 고개를 숙이면 그 자리에 두 개의 인형 안구가 뒹굴고 있었다. 정말로 예쁜 녹색이었다. 그것을 두 손에 그러쥐고 지키듯이 가슴에 품었다.

실로 기분나쁜 꿈이었지만, 그렇게 악몽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웃어준 것이 기뻤다. 적어도 나는 그 녹색을 손에 쥘 수 있었으니까. 제일 빛나는 곳에 그 녹색을 가져다줄 수 있을 테니까. 마른 흙 위에 누워, 인공안구를 손가락으로 집어, 서서히 해가 떠올라 빛나기 시작한 하늘로 손을 뻗었다. 정말이지, 찬란하게도 빛나고 있었다.


그걸로 정말 됐을까. 모래지옥에라도 잡힌 듯 몸이 서서히 흙 아래로 파고드는 동안에도, 나는 끝까지 예쁜 것들을 하늘에 데려다주고 싶었다. 그걸로 됐을까. 따뜻함도 차가움도 없는 눈. 그걸로 됐을까. 아무리 세게 쥐어도 내게는 자국조차 남지 않는 파편들. 거기에 슬퍼하는 것과, 그걸로 만족하는 것. 어느 하나만 할 수 없는 나.


*


한동안 꿈은 꾸지 않았다.

나와 그는 교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 앉는다.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위치였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없으니 그와는 눈빛도 말도 섞을 일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그가 뭔가 아쉬워라도 하는 듯이 가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되갚음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하고 멋대로 나쁜 쪽을 상정하는 작은 오기가 마음 속에 일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이쪽에서 선수치기로 했다.


"너, 아까부터 계속 쳐다보고..."

"아아. 그래."

"오늘은 안 데리고 왔네. 너무 쳐다봐서 닳기라도 했어?"

"별 일은 아니야. 단지 쉬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여전히 그녀는 그의 현실 속을 살아가는 일부인 걸 봐서 답지않은 말을 하는 건 오히려 저쪽이 아닐까 싶었다. 이제 이쪽에서 오만을 부려줄 차례가 아닐까. 주어조차 말하지 않은 대화로 서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 어쩐지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잠깐, 이츠키"


그제서야 '뒤의 사람' 일 뿐이던 그의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시간 되면, 밥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나 해볼까. 듣고 싶은 게 많은 모양이니까"

"별로 네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너와 같은 인간이라면 환영인 것이다."


인형을 아끼는 것으로 인형이라 부르던 존재를 지키지 못한 것을 보답받고 싶었을까. 같은 색의 눈이라고 단정짓고 내게 말을 걸어주는 것을 고대한 것도, 내가 만들어 내가 감싸고 돈 환상의 전말이었을 뿐일까.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내가 소중히 여긴 것은 소중히 여긴 것이다. 소중한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건 나쁘지 않다. 그저, 이렇게라도 눈 앞을 보기로 했다. 그래, 이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


꿈자리가 사나운 것 치고는 잘 잤다. 그 꿈이다.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같은 잔해를 앞에 두고서. 하지만.


마지막 슬픔을 삼키면, 그 초록빛을 덧쓸 수 있을 다른 색을 찾을 것만 같았다. 그 끝에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그 눈이 아닌,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초록빛 보석이 깨져 흩어진 자리를 손으로 훑어 넘기면, 이름모를 보라색이 쭉 빛나고 있었다.


난 누구 앞에서는 부서지지 않아. 적어도 네 앞에서는 말야. 주제넘은 말을 되뇌이면서 떠올린 색이, 익숙하지 않은 빛깔임이 씁쓸하면서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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