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공개된 앙상블 스타즈 글 합작 '한 겨울의 유메노사키'에 참여했던 글 백업. 주제는 '겨울'
합작 주소는 이쪽 http://snow-prince.tistory.com/
컨셉은 '전연령 포르노(?)'와 '반바지 페티시'. 아니 겨울인데 왜 반바지? -> 그렇다면 손으로 데우면 되잖아! 이런 발상을 떠올렸다. 대체 나는...
언제나처럼의 캐릭터붕괴 설정날조 왜곡된성욕(?) 등등 주의
계절이 종막을 향해 달려가기가 멀지 않았다. 살짝 더워진 올해, 여느 때보다 늦게 옷을 갈아입은 잎들도 조금씩 하얀 이불을 덮을 날을 기다리며 떨어져내릴 시기. 밖을 거니는 인간의 옷가지는 두터워지고, 창문도 머지않아 흐릿하게 덮일 것이다. 밖에 자주 나가지 않아도 차가워진 창문 가까이서 온도의 변화를 체감한 인형사는 한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슬슬 추워졌으니, 실내복을 새로 만들어줘야겠지."
이제는 순수한 혼잣말에 가까워지고 있는 마음의 대화를, 작업용 책상 한 구석에 다소곳하게 앉은, 녹색의 안구를 지닌 인형 아가씨는 그저 부드럽게 웃으며 경청할 뿐이다. 늘 추억하며 내뱉던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말도 현재라는 시간선의 마커 위에서는 다른 사람을 향하게 되었다. 자립할 수 있게 되어 스스로 사랑의 말을 고백해오게 된, 너덜너덜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인형은, 인형사가 앞을 보고 미래를 살아갈 수 있도록 손을 잡아당겨 주었다.
10월의 끝을 향하는 날, 인형사와 인형은 연을 맺었다. 여름 즈음부터 어떤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가까운 관계가 되었지만, 여전히 인형사는 그것을 섣불리 정의하지 않은 채로 지냈다. 하지만 조금씩 따뜻한 말을 해 주었고, 둘이서 같이 지내는 일상들에도 특별한 의미를 얹기 시작하고, 때로는 마음을, 때로는 몸을 맞대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틀림없는 연인간의 일상. 주변에서는 이미 두 사람이 '사귄다'고 말하고 있었고, 소문은 빠르게 교내에 퍼졌다. 마음과 마음이 맞닿아 열매와 같이 무르익어가는 결실의 계절, 인형사는 인형의 완전한 자립을 기념하여 옷을 입혀주었고, 곱게 차려입은 인형은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해맑게 웃으며, 쭈욱 함께. 이 세상의 끝까지 함께. 그런 고백을 했었다. 맨 앞줄에 앉은 아이들을 비롯해 관객들과 교내의 학생들 앞에서 고백을 받았다. 별로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어차피 연인이라고 정의만 하지 않았을 뿐, 하늘이 알고 - 하늘이 알기에 그는 아마 천국이 아니라 지옥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으리라 - 모두가 아는 관계였다. 자신을 향한 마음을 뮤즈로 삼아 춤추는 인형의 몸짓에 어울려주는 것으로, 인형사는 고백에 답했다. 무대의 막이 내리고, 회피하던 마음을 마침내 온전히 마주보게 된 그 날, 둘은 연인이라고 그 관계에 감히 이름붙였다. 공교롭게도 인형사는 그 날이 자신의 생일이었음을 기억했다. 최고의 생일이었다.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기쁨으로 포화된 가까운 추억을 되새기던 머리를 현실로 되돌리면, 인형사, 이츠키 슈는 분기점 이후의 지점에 있었다. 그렇다면, 관계를 정의한 다음은 무엇인가. 정의한다고 해서 갑자기 가까워지거나,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바뀌는 게 있을 리 만무하다. 부르는 호칭도 그대로 (이름으로 불러주려고 했지만 미카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손을 흔들어대다가 머리가 쇼트해버렸기 때문에, 당분간은 성으로 그대로 부르기로 했다). 서로를 만지는 것도 평소대로 (평소대로라고 해도 이미 끈적끈적할 정도로 많이 만지고 있었지만), 천진한 웃음도, 애정어린 잔소리도 그대로. 이미 충분히 가깝다는 의미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단언해버리는 것은 지나치게 안일했다. 그래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 아이의 치수를 정리한 도안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조금 더 커버린 그 아이의 성장을, 그리고 그 아이를 완전히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같이 겨울을 날 채비를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작년에 만들어준 겨울 실내복도 기장이 조금 짧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가 제일 먼저 택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그의 정성을 제일 잘 담아낼 수 있는 천과 실의 방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치수를 잰 게 언제더라, 거기에 생각이 닿은 슈는 인형, 카게히라 미카를 부르기로 했다. 마지막 라이브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옷을 만드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으니, 그 새 미카도 조금은 자랐으리라. 잘 먹어서 그런가 할로윈 라이브 때도 옷을 두어번 고쳤다. 바지기장만큼은 타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종국에는 반바지로 만들어버렸지만. 미카 본인은 아직까지 작고 귀엽고 싶다며 떼쓸 때가 있지만, 잘 자라고 있어서 흐뭇한 마음이었다. 아, 한 집에 사는데도 같은 방에 없는 것만으로 이렇게 보고 싶어지는 것인가, 하고 슈는 자신의 글러먹음을 탓했다. 최근에는 한 침대에서 자는 일도 많아졌고 미카가 슈의 방에 난입해 눌러앉는 건 이미 일상이어서, 각 방을 쓴다는 것도 무색해질 정도였다. 방 주인이 오지 않는 미카의 방은 지금은 그가 모아둔 인형들만의 작은 나라가 되고 말았다. 침대 아래 가지런하게 놓인, 파스텔 핑크색 하트무늬가 수놓인 슬리퍼를 신고 방 문고리를 잡은 순간,
"스승님 있나!"
문고리는 제멋대로 움직이고 거세게 문이 안쪽으로 확 하고 밀쳐졌다. 슈는 안타깝게도 문에 맞아 성대하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전혀 환영받지 못할 존재도 아닌데 여전히 불청객 같은 방식으로 들어오는 모양새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슈는 머리 앞을 손으로 움켜쥔 채 요 말썽쟁이 인형에게 한 소리 해주고 싶다는 충동을 견뎠다.
"미, 미안하데이! 스승님아 괘않나!"
"적어도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하고 문을 열어도 되지 않느냐."
"어디 깨진 데는 없나? 혹시 머리 박았나? 피는 안 나제!"
"너는 나를 뭘로 보는 것이냐. 네 소체처럼 연해서 쉽게 상흔이 생기는 몸은 아니다."
별 거 아닌 일에도 소중한 인형사의 일이면 호들갑을 떠는, 조금 지나치게 충실한 인형. 미카는 울상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며 슈의 머리며 팔꿈치며 상처가 났을 법한 부분에 손을 대려고 했다. 슈는 정신을 차리고 미카를 덥썩 안아올렸다.
"그만해라. 난 괜찮으니까."
"응아앗?!"
예전보단 조금 무게감이 느껴지는 미카의 신체를 슈가 안아올리면, 미카는 갑자기 몸이 높아진 것에 당황하여 슈의 어깨에 꼬옥 하고 팔을 두른다. 그대로 사뿐히 침대 위에 내려놓는다. 그는 날씨가 추워지는데도 여전히 반바지 차림이었다. 푸른기 도는 초록색의 반바지 위에는 초콜릿이며 사탕 같은 과자 모양의 아플리케가 바짓단을 따라 수놓아져 있었다. 상의는 소매가 긴 것을 고집하면서 하의는 반바지를 계속 입는 것이, 뭔가의 자기주장처럼 보였다.
"바지는 계속 짧은 것을 입고 있구나. 슬슬 추워지니 계절에 맞는 옷을 입는 게 좋을 거다."
"걱정 안해도 된다. 반바지가 움직이기 편하니까. 글구..."
"그리고?"
"스승님 반바지 좋아한다 아이가?"
정곡이었다. 아무런 악의도 없이 정곡을 찌르게 된, 너무나도 솔직하게 다가온 사실. 오래 전부터 슈가 마음에 품어온 이상형이란 잘 펄럭이는 반바지를 입은 소년이었고, 무대 의상을 고안하면서도 미카에게는 반바지가 어울리겠다면서 입혔다. 두 사람이서 유닛 활동을 하게 된 이후 지하 라이브하우스에서 가졌던 첫 라이브 때, 미카가 고안했던 디자인에서 바지만 반바지로 바꿨음에 사심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카게히라 미카에게 반바지는 아주 잘 어울렸다. 키는 조금 컸지만 아직 앳된 몸이었기에 소년 같은 매력이 있었고, 몸이 자라면서는 다리가 예쁘다는 것이 눈에 들어와서 어느 길이라도 반바지기만 하다면 소화해내는 것이 보였다. 심미적인 이유라 보기 좋다고 슈는 막연히 단정짓고 그 이상으로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 물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이상 생각했을 때 나오는 명백한 대답을 인정하면 스스로에게 환멸할 것 같았다 - 미카가 반바지를 입은 모습을 보면 좀 더 가슴 깊은 곳에서 흐뭇함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얼굴근육이 흐물하게 풀리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그렇다. 이츠키 슈라는 사람은 고고한 예술가이자, 무대의 제왕이고 신이지만, 동시에 중증 반바지 페티시스트였던 것이다.
"무슨, 무슨 소리를."
"스승님이 반바지 좋아하니까 내도 반바지 입으면 좋은 기다. 별로 추운지는 잘 몰겠고, 추우면 스승님이 여 바지 안쪽에 손 넣어서 뎁혀줄끼고"
미카는 마치 강조라도 하듯이 실내복 반바지의 기장 끝을 살짝 들어올렸다. 손이라도 넣어달라는 듯 말하는 게 놀리는 것 같았다. 한편 전혀 덮이지 않은 미카의 다리 맨살은 허옇게 건조해진 것이 눈에 보일 듯 안쓰러웠다. 역시, 눈을 떼기만 하면 조금이라도 흠집이 생기는 인형이라고 슈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카게히라, 너는 지금 내가 내 파렴치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추운 겨울이 될 때까지 반바지를 입게 하고, 내 인형의 신체 특정 부위를 탐닉하는, 그런 불수다라한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아, 아이다, 그런 기 아이고, 그냥 스승님이 좋아하니까, 글구 우리 이제는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흐음, 밖에서는 잘도 '내 스승님'이라고 말하고 다니더니만, 갑자기 마음이라도 변한 것이냐? 역시 마음이 생긴 인형이란 좀 더 세심하게 조율해야 하는 것이로군."
"응아아앗?! 그니께 말이 잘못 나온기다! 아무 사이도 아닌 게 아이고 보통 사이가 아니라고! 내 스승님 좋아하는 거는 세상이 망해뿌려도 같다! 내, 그, 보통 사이가 아니고 우리 사귀니까... 해도... 된다고... 그런 뜻이데이!"
"호오."
사귄다, 라는 직접적인 관계의 증명을 말로 내뱉을 때 얼굴을 붉히는 쪽은 어느새 슈가 아닌 미카가, 반대가 되었다. 애정에 약하다고 했던가, 조금 몰아붙이면 미카는 안절부절 못하고 얼굴을 빨갛게 하고 팔을 흔들어대며 빠져나가지 못할 말의 미로 속에서 빠져나가려 애쓴다. 요는 정직한 자의 자승자박. 그게 마냥 귀여워서 슈는 말 없이 미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아앗?"
화악, 하고 미카의 머리로 열이 쏠렸다. 슈는 슥슥 하고 조금 덥수룩하고 정리되지 않은 머리를 헝클듯 매만진다. 손가락 사이로 스치는 미카의 검푸른 머리카락이 기분 좋았다. 완전히 편안함에 몸을 맡긴 듯한 비음이 그 아이에게서 새어나왔다. 쓰다듬어주기만 하면 마치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라도 되듯이 무방비해지는 것이었다. 완전히 편안함을 느끼는, 완전히 신뢰를 맡긴 사람에게밖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머금은 인형의 얼굴. 그것이 조금 더 보고 싶어서 인형사는 이색의 안구에 눈을 맞췄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에헤헷."
심장에 심한 타격이 왔다.
웃어보이는 미카는 귀여웠다. 역시 흔한 말은 싫지만 표현할 말이 사라지는 순간의 환희는 슈에게 제일 크게 다가오는 즐거움이고 감탄이었다. 심장이 두근, 아니 덜컹 하고 멎을 듯 크게 흔들린 것이 몸 안쪽에서부터 느껴졌다. 이제는 연인이니까, 할 수 있다면 그 앞에서는 숨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여기서 귀엽다고 말해버리면 생명의 위협이 올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항상 패배하는 건 슈 자신이다.
귀여운 연인, 사랑스러운 인형. 이 아이가 자신을 바치겠다고 선언한 만큼,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로 해도 좋을 것이라고, 그때가 된다면... 먼 미래, 혹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그 아이와 의식을 올린다면, 그 때야말로 단 하나밖에 없는 지고의 예복을 만들어주리라. 의미없는 공상이라고 여긴 것도,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생소한 일이었지만, 어째 미카의 웃는 얼굴을 보면 그런 백일몽에 빠져도 그저 좋기만 했다. 얼마나 물러진 것인가, 하고 스스로를 질책할 틈을 조금은 열어두려는 것이 자신을 끝내 잡아먹지 않았던 자존심에게 바치는 마지막 예우일 정도였다.
아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신이 미카를 방에 들인 건 새로운 옷을 만들어주기 위해, 치수를 재려고 부른 것이다. 일을 지체하는 건 성미에 안 맞았다. 게다가 다리를 저렇게 내놓게 내버려뒀다가 각질이라도 생기면 큰일이기에 그 관리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웃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렇잖아도 널 부를 생각이었으니까 본론으로 어서 들어가지. 추워졌으니 너도 새 옷이 필요한 것이다."
"아, 글나! 이번에도 반바지가?"
"아까부터 왜 그렇게 반바지에 집착하는 것이냐."
"반바지에 집착하는 건 스승님 쪽 아이가?"
또 이 패턴으로 들어가버렸다. 솔직한 것인지 영악해진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미카는 영락없이 잔망스러워졌다. 이렇게 된 이상 진짜로 반바지를 만들어주는 것도 조금 짓궂은 보복이 될 것만 같았다. 무대에 세울 때도 반바지 아래에 다리를 덮는 천의 층을 마련해놓곤 했으니, 겨울옷이라고 해서 꼭 기장을 길게 할 필요는 없었고 말이다. 이번 겨울의 실내복은 레그워머로 하자는 생각이 슈의 머릿속에 스쳤다. 레그워머라면 반바지 뿐만 아니라 원피스 잠옷 (미카는 펄럭펄럭하다는 이유로 원피스 잠옷도 좋아했다) 이랑도 곁들일 수 있다. 결론 하나를 내린 후 여유만만한 미소로 슈는 미카에게 역공을 가하기 시작했다.
"아아, 그래. 나는 반바지를 아주 좋아하지. 특히나 귀여운 남자아이의 반바지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그체, 이래야 내 스승님이제."
"그러니 네게도 귀여운 인형에게 걸맞는 신의 복식을 선사하지."
"내 지금 엄청 행복한 거 아나. 이번 겨울도 스승님이 만든 옷 입고 같이... 응앗?!"
방심하고 있던 미카의 허벅지와 바짓자락 사이의 공간으로 따뜻한 손이 비집고 들어갔다. 조금 살이 붙어 말랑해진 허벅지가 기분좋게 잡혔다. 확인하듯이 살짝 쥐고, 간지러울 정도로 손가락을 놀린다. 미카의 다리가 살살 떨리다가 이따금 요동치듯 튀었다.
"그 전에, 조금 확인해볼 게 있는 것이다."
"확인이라 카면, 아, 스승님아, 간지럽데이! 아하핫, 아핫!"
"꽤 살집이 붙었구나. 네가 드물게도 꽤 만족스러운 몸 상태를 하고 있으니 뿌듯해지는군."
"그카면서 내 만지고 싶었던 거 아이가... 앗, 으응..."
"이 정도, 손이 들어간다면 적당한가."
슈의 손길이 점점 부드러워지며 천천히 미카의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었다. 머리를 쓰다듬을 때와 같이 낮은 소리와는 다른, 조금 높은 콧소리가 났다. 반쯤 감긴 듯 나른해진, 석양과 새벽녘을 담은 눈이 자신을 만지는 손의 주인을 넋 놓고 바라본다. 미카는 이렇게 만져지는 게 언제나 좋았다. 몸에 살짝 열이 날 것 같은, 포근하고 조금 간절해질 듯한 느낌. 따뜻한 것. 누군가의 체온이 데워주는 것은 솜옷이나 이불보다 좋았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는 얼핏 들은 뉴스의 한 가닥이 생각났다. 그렇게 춥다면 계속 이렇게, 체온을 나누면 되지 않을까. 인간보다는 차갑지만 인형으로서는 따뜻한 그는 열기 어린 연인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스승님 손, 따뜻해서 좋데이. 이렇게, 조금만 가만히 있어도."
난방을 멈춰 약간 싸늘한 공기 속, 그 말 이래로 내려앉은 정적 사이, 둘의 체온만이 열원으로 존재하는 세계. 피부가 닿은 채로 그들은 서로의 몸에서 제일 민감한 곳으로 체온을 주고받으며, 그 자리에 있었다. 어쩔 줄 모른다는 듯이, 그러나 사랑스러운 것을 바라보듯 조금 홍조 띈 얼굴로 서로의 눈이며 미소가 맞닿았다. 껴안은 것도 아닌데, 손이 더 깊이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몸은 충분히 따뜻해져 있었다. 조금 더 다가가고 싶어 애타는 마음까지도 열로 환원되는 그 순간을 지키고 싶었다. 그것이 그들의 따뜻함이었다. 눈을 맞춘 것만으로 마치 몇 번이고 몸을 겹친 것 같은.
"따뜻한 거, 할까?"
"지금은 아직 할 일이 있으니, 조금 있다가는 어떻겠느냐."
"그치마안."
조금 달뜬 목소리로 미카가 보채왔다.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숨소리도 섞여 있었다. 인간의 온기를 기억해버린 인형은 무언가를 요구하는 법을 배웠다. 정말로 사랑스러운 아이, 몇 번이고 말해주고 싶어 마음 속이 간지럽게, 모서리부터 타들어가는 듯 홧홧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눈 앞의 소년을 안아버려도 좋을 것만 같았다. 그 감정에 집어삼켜지는 것은, 종전까지 슈 자신을 먹어버리려 한 감정들과는 사뭇 다르다.
"뭐, 좋다. 어차피 잘 때도 입을 거라면, 이런 때도... 생각하는 게 좋겠지."
"스승님도 요새는 꽤 솔직하네. 실은 내랑 따뜻한 거 하고 싶어서..."
"이렇게나 사랑스러우니, 나도 어찌 할 수 없지 않느냐."
이제 조금씩 말을 하자. 사랑한다고, 사랑스럽다고, 못해준 몫까지 연인을, 가족이고 가족이 될 그 아이를 불러주자. 그렇게 생각하며 슈는 미카를 품에 안고서 푹신한 침대보와 베개들의 바다에 파묻혔다.
"으응, 내도 많이 좋아한데이. 스승님 좋을 대로 해도..."
"'좋을 대로'가 아니야.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몇번이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래도 스승님이 해주는 건 다 좋아가..."
"너도 어쩔 수 없는... 아니, 이젠 그렇겐 부르지 않기로 했었지."
가벼운 실랑이가 지나고, 다시 한 번, 슈는 누운 미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좀 더, 애정에 길들일 필요가 있지만, 그러기 위한 시간은 많다. 천으로도, 피부로도, 그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주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듯 보였던 인형은, 배워 받아들인대로 이제는 서투르지 않은 어리광을 부리며, 자신을 안아주는 그이의 무게를 그대로 끌어당겼다.
올해 겨울, 인형사와 인형의 공방은 어느때보다도 따뜻하고, 어느때보다도 밤이 길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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