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Twitlonger 뒤지다가 발견한 흑역사급(...) 팥스타 첫 연성이자 전력60분 첫 참여글. 주제는 '메신저'. 2016년 4월 24일 작성. 백업용으로 여기에도 올림
당시 제목 안 정하고 투고했는데 txt 파일 안에는 '전할 수 없는 것'을 임시 제목으로 설정했다고 쓰여 있어서 일단 그 제목을 씀.
개화페스 때 낸 회지에도 등장하는 카게히라는 귀엽구나! 는 여기서 먼저 나왔는데, 아마가미의 리호코는 귀엽구나 소재.
-입문한지 얼마 안 되어서 쓴 글이라 캐릭터 해석, 말투 등 많이 미흡한 구석이 있습니다.
-캐릭터 붕괴 주의
그 사람이 나에게 '**'한다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지만 그걸 바라서는 안 되니까.
알람의 경쾌한 음도 진동의 소리도 죽인 전자기기의 화면으로 전해진 말들의 창이 열린다. 불규칙하지만 연속적으로 화면의 한 자리를 메우는 것은 평소에는 그 사람이 하지 않을 달콤한 말들.
'미카쨩은 귀엽구나! 미카쨩은 귀엽구나!! 미카쨩은 귀엽구나!!!'
'사랑한다 카게히라. 쭉 내 곁에 있도록. 너는 내 것이니까'
'이 세상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이건 좀 스승님 안 같나...? 그러면 이래 써보는 건..."
어느 순간부터 카게히라 미카는 자신의 동거인인 이츠키 슈보다 늦게 자기 시작했다. 언제나 밤을 새 무대 의상을 만드느라 바빴던 그 사람은 '그 날' 이후로 밤샘 작업을 하지 않게 되었다. 무대에서만큼이나 화려한 미사여구들로 치장된 그 사람의 말씨를 따라하는 것은 머리가 좋지 않아 다듬어지지 못한 말밖에 할 수 없는 자신 같은 결함품에게는 힘든 일이었지만, 같이 사는 동안에 익은 감을 따라 어색하게나마 흉내를 내어본다.
처음 이 의식을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진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어느날 뭔가에 홀린 듯 방을 나서서, 몰래 그 사람의 방에 들어가 그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나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었다. 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늘 부정하고 싶었다. 완전한 인형이 되어야 하는데 필요없는 생체 장기를 가졌다는 이유로 늘 힐책받았는데, 이런 일에서까지 발목을 잡는다. 그럼에도 이 행동은 그 심장이 자신에게 시킨 일이었다는 것이 작은 아이러니일까. 나쁜 심장, 나쁜 심장, 차라리 지금이라도 그 사람이 일어나 벌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품었지만, 미카는 무사히 그것을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안도감과 함께 눈물이 흘렀다. 기뻐서인지 슬퍼서인지도 몰랐다. 그 후 처음으로 썼던 말은, 그 사람 특유의 미학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랑한다" 라는 정제되지 않은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를 쓰고는 그 사람의 휴대전화에서 기록을 지우고 그의 방에 돌려놓은 후 그 말을 자신만 간직하면 된다. 아무도 해를 입지 않는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멋대로 각색한 이미지로 모사한 자신은 그를 더럽힌 것인가 하는 죄책감은 남았다.
이 일을 들켰다가는 안 그래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이 위태로운 관계도 끝이 난다고 생각했다. 교활한 일이 틀림없고 머리 나쁜 자신이 생각해도 참으로 조악한 놀이였다. 그렇지만 사랑받고 싶었다. 단 한번이라도 그에게 사랑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의 자그마한 세계를 구축하는 아름다운 것들이 듣는 말을 듣고 싶었다. 비록 실패작에 불과한 미천한 존재일지라도. 그렇기에 그는 이런 짓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록을 남기지 않으니 아무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슈 역시 자신의 대화 로그를 주기적으로 지우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대화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어서... 같은 이유로 아무와도 대화를 하지 않는 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역시 스승님은 이런 거보단 좀 더... 그러니까, '아아, 카게히라, 나의 사랑스러운 하이드란지아'? 하이드란지아? 시네라리아? 모르겠데이..."
여기까지 말들을 적고 문득 슬픈 생각이 난다.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이었던 세계가 보기좋게 '붕괴'하기 이전, 그는 항상 먼 곳에서 '완벽한 존재'를 찬미하는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은 절대로 들을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애정이라기보다는 시대의 명작을 품평하고 찬미하는 듯한 종류의 말이었지만, 그의 미학으로 가득찬 예술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스스로가 너무나도 작게 느껴졌다. 그래도 이제는 두 사람의 세계에 익숙해져야 한다. 아니, 언제까지나, 그가 자신을 주워와 거두었을 때부터 두 사람의 세계는 존재했다고 믿었다. 그 세계에서 카게히라 미카라는 존재는 불순물일지라도, 불순물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절대 지금 하고 있는 이 소꿉장난 같은 사랑고백 흉내는 거기에 해당하지 않지만.
그렇게 그 날도 그렇게 망상을 하고, 기록을 지우고,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
문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역시 언젠가는 들키게 되어있었다. 자신보다 세 걸음, 아니 몇 걸음은 앞서있는 사람이기에 예정된 일이었겠지. 그렇게 문이 열리고, 그렇게 갈망하던 대상이 혼자만의 망상의 세계를 깨뜨린다.
"아니, 아무것도, 내는 아무것도!"
필사적으로 자신의 것이 아닌 전화를 붙잡고 몸을 웅크려 자신이 쓰고 있던 공상을 숨긴다. 혼나는 건 상관없었다. 늘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을 들키는 것만은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마음 속의 것이 북받쳐오면서 눈 앞이 물기로 흐려지고, 손에서 힘이 빠지고 말았다. 머리가 멍해지고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기에 이 자리에서 그대로 정신을 잃을 거 같이 아찔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정신을 유지했다. 변명도 할 수 없지만, 이 상황을 자초한 것은 자신이니 제대로 사과하자, 설령 버려진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버려진다면 스스로를 '폐기처분' 하는 정도의 미덕은 보여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휴대전화를 탈환해 그 화면을 봤던 슈는 형언할 수 없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이름 아래 이어지는 고백과도 같은 간지러운 말들. 나는 이런 말 하지 않는다, 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차라리 자기 쪽에서 제대로 말해주자, 라고 다짐하고는 다시 멍청한 생각이라며 그 생각을 고친다. 늘 이런식으로 자신은 미카의 마음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부정해왔다.
"그런 거였나"
한숨과 함께 측은한 듯한 미소가 슈의 얼굴에 나타난다. 이 아이, 카게히라 미카는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심장을 이름표나 옷의 장식마냥 눈에 띄는 곳에 달고 다니는 주제에, 언제나 행동에 애정의 무게가 실려있는 주제에, 정작 사랑해달라는 말 하나 못하는 바보였다. 안 그래도 자기 보존능력이 심각하게 낮은 데 더해, 자기 마음조차도 전혀 돌보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나마 어리광부리고 있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너는 어째서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지?"
"......"
궁지에 몰린 것마냥 미카에게서는 대답이 없다. 아직도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것일 터이다.
"그런 말이 듣고 싶다면 듣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을 해도 될 것을"
"그야, 주제넘는다고 생각했으니까"
고개를 숙여 숨긴 색이 다른 두 눈동자에서 계속 눈물이 떨어진다. 정말로 좋아하고 있었다. 있어서는 안될 감정이었다. 스스로 주제넘은 영역에 손을 대는 바람에, 완벽한 그 사람을 감히 흉내내어 감정을 소비하는 데 쓰는 바람에 관계가 파탄나게 생긴 것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과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들켜버린 지금은.
"스승님, 미안..."
"네 사과 따윈 듣고 싶지 않다"
그것은 심각하게 잘못 나간 말이었다.
언제나 이렇게 또 오해를 사버린다. 오해를 사기를 원한 것도 있지만, 실은 조금이라도 미카가 슈 자신의 본심에 답해주기를 바랐다. 그것이야말로 이기적인 일이다. 그런 사과를 들을 주제는 자신에게 있었던 것인가? 오히려 전하지 못하고 망설여서 이렇게까지 만든 것은 본인인데도. 항상 모진 말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이야말로 미카에게 애정을 붙이는 것을 두려워했음에도. 그걸 인정하는 순간 자신에겐 잃을 것이 또다시 늘어난다고 생각했다. 소중한 것을 만들어버리면 언젠가는 자신을 떠나가는 날을 기약해야 한다. 그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자신에게 무한한 애정을 품는 옆의 이 불쌍한 까마귀를 밀쳐내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그렇다면, 솔직해지면 되지 않는가?
그 생각이 미쳤을 때, 어느새 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카를 끌어안고 있었다.
"사랑한다"
이대로 평행선을 긋는 관계도 이제는 끝이다. 세상이 변하고, 계절이 변하는 가운데 어디까지나 정지해 있는 모형정원에 얽매이는 것도 종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사랑하면서 나아가고, 전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제일 필요했던 일.
"정말이가? 정말로 스승님은 내를"
"...지금 말하지 않으면 평생 말할 기회가 없겠지"
"그럼 내 지금 고백받은 기가?"
"멋대로 생각해라, 실패작. 어차피 내 말은 머지않아 네 작은 머리에서 흘러서 이름도 모를 곳에 버려져있을 테니까"
고백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삐걱삐걱거리는, 그야말로 손상되기 짝이 없는 잡동사니 같은 한 장면이지만. 솔직하지 못해 스스로 삭히느라 마모될 때까지 마모된 마음들은 어째서인지 꼭 맞는 한 쌍의 조각처럼 들어맞았다.
"아니, 내, 지금 너무 기뻐서. 좋아한데이, 정말로, 정말로"
두 사람은 거기에 만족했다.
그 사람이 사랑한다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우리들은 말하지 않고 있었을 뿐.
힘들어도, 괴로워도 말하지 않으면 모르니까.
그러니까 앞으로도 우리들은, 지금부터라도 사랑의 말들을 잔뜩 하며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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