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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사탕통/팝핑 캔디

[슈아라] 찰나와 매료의 잔향

by 료밍 2018. 1. 10.

사약충이 또!!!!!!!


이게 아니라 앙상블 스타즈 꽃말 합작 '개화! 피어나는 꽃의 축제' 에 라넌큘러스(꽃말은 매혹, 매력)로 참여한 물건. 합작 페이지는 이쪽

짧음. 퇴고 없음. 내용 없음. 살짝 상태 안좋을 때 썼음. 어쨌든 그러함. 

될 조합이라고 나만 밀고 있다. 나만... 나만... 체육제도 나왔겠다 이제 슬슬 접점 좀...





"설마 당신에게 제의를 받을 줄이야."


꽃 문양을 새긴 첨예한 공예 찻잔을 각자의 몫씩 앞에 두고, 둘은 마주봤다. 익숙한 얼굴들은 옛날과 다름없이 고고했고, 또한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찻잔을 비우는 속도로 벌 수 있는 시간과 눈빛만으로 교섭의 도구는 충분했다. 찻집 창문의 커튼 너머로 오후의 말간 빛이 스며와 기분좋은 따스함을 더했다. 그 천재 디자이너 이츠키 슈와 탑 모델 나루카미 아라시가 한 공간에 있다고 하면 당장에 이목을 끌 것이었겠지만, 숨은 명당과도 같은 외지의 이 작은 찻집에는 운 좋게도 두 사람 외의 손님은 존재하지 않았다.


"본질적으로 내 미학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난 부탁하지 않아."

"알고 있어, 당신의 그 까다로움은. 이렇게나 아름다운 나를 알아봐준 당신의 안목을 칭찬해 달라는 거지?"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군. 말이 통하는 사람이어서 다행이야."

"당신도 많이 변했구나. 사람에게 좋은 말도 할 줄 알고. 조금만 더 일찍 그럴 수 있었다면... 우후후, 이 자리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네."


아라시가 웃으며 찻잔을 입에 댄다. 좀처럼 웃지 않았던 슈도 인상에나 어깨에나 평소보다 힘을 덜 준 채, 천천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교섭의 내용은 이 시점에서 결정되어 있었다. 새로운 디자인의 화보 촬영을 맡아달라는 부탁은 둘이 만나는 순간에 성사된 일이었다. 이후의 시간은 꽃잎이 찻잔 바닥에 내려앉을 때까지의 유희였고, 그들에게는 이것이야말로 본론이었다. 용건을 담아내는 입술에 머금은 것은 차의 향보다 깊은 유혹의 내음을 담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찻잔과 찻집의 인테리어를 오가던 눈길은 심심해졌다 하면 눈 앞의 상대에게로 돌아왔다. 어느 꽃을 닮았는지 셀 수 없을, 닮은 보라색 눈동자가 그때마다 마주쳤다. 영문 모를 미소가 어김없이 뒤따라왔다.


"그래도 다행이야. 나로 인형놀이를 할 생각이었다면 거절했을 텐데."

"나는 꿈을 꾸게 하고 싶은 것이지, 꿈에 사람을 가두고 싶은 게 아닌 것이다."

"그러게. 모델을 옷갈아입히기 인형 정도로나 생각하는 사람들은 최악이니까."


일부러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피하면서, 아라시는 자신이 느낀 것만을 말했다. 이번에는 슈가 찻잔을 들었다. 자칫하면 자신을 찌를 수도 있는 이야기도 지금은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온도를 잴 것처럼 찻잔을 입술에만 잠깐 댔다 뗀다. 차의 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던 그는 눈 앞의 그녀의 입술의 움직임을 읽고서, 찻잔과 함께 꺼내려던 이야기를 내려놓았다. 가벼운 유리 소리와 함께 찻잔을 꽃잎 한 장이 유영한다. 인형극의 줄을 내려놓고, 사람의 옷을 만드는 실을 손에 대면, 나눌 말도 들을 것도 많아지는 법이었기에.


"그나저나 꿈이라니 당신이 입에 담는 건 의외 같은 말이네. 무슨 바람이라도 불었어?"

"그저, 작품을 만들던 중의 상념일 뿐인 것이다. 거기에 어떤 꿈을 담아낼지... 많은 생각이 들지."

"꿈이라, 그러면 당신이 생각하는 꿈에 대해서 조금 듣고 싶은데 괜찮을까?"


그 말에 슈는 여느때처럼 목을 가다듬고, 일상을 무대로, 꿈으로 꾸며내는 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념을 전하는 이야기는 그가 제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꿈이란 사람을 매혹시키는 것이다."

"뭐, 정론이네. 꿈 같다는 건 마음을 빼앗긴다는 거니까."

"아니, 달라. 미혹과 매혹에는 차이가 있다. 단순히 홀려버리는 게 아니야. 마음에 품고 그리는 것이지."


재밌는 이야기네. 계속해. 말하는 대신 티스푼을 찻잔에 담근 채 들은 말을 우유처럼 차에 녹이는 시늉을 한다. 나루카미 아라시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참견이 많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이리저리 참견하고 다닌 보람은 늘 있는 법이다. 지금 이 자리 역시도 따지고보면 참견투성이의 인연이 다시 이어진 결과였으니까.


"누군가의 단순히 복제품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그저 무지를 확산시킬 뿐이다. 거기에 물들어버리면 단순한 속물이 될 뿐이야."

"그렇지만 당신은 당신의 오리지널리티를 중요시하는데, 당신에게 영향을 받아 꿈을 꾸는 게 당신의 복제가 되지 않으리라고 단언할 수 있어?"

"세상에 같은 꿈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내 이상의 파생은 존재하겠지만, 그것을 자신만의 세계로 키워나가는 건 자신의 몫이지. 나는 그것을 다소 늦게 알아버렸어. 내가 신으로 군림하면서 내 피조물로 꾸려내려고 했던 세계는 결국 내 복제만을 만들 뿐이었다."


아련함이 두 개의 보랏빛에 서린다. 옛 일에 대한 편치만은 않을 이야기를,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는 조금 더 침착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츠키 슈는 끝없이 고뇌했던 것이다. 무엇이 아름다운지와는 다른 것을. 이 사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류가 아니었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고 아라시는 느꼈다. 그것은 자신의 친우와 관련된 옛 이야기와도, 그의 존재 어딘가에 남아있는 제 닮은꼴의 이야기와도 다른 것이었다. 본질적인 타인, 그러면서 파장이 맞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로 그가 다가오는 것이 꽤나 즐거운 의외성이었다.


"신화를 전하는 자로서의 내 역할은, 그 신화를 자신의 신화로 소화해내도록 돕는 역할이다. 매혹이란 압도하고 끌어들이되, 빼앗지는 않는 것."

"요약하자면 롤 모델이 된단 거구나. 우릴 보는 사람들이 생각 없이 추종하는 게 아니라 우릴 보고 하나씩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도록 하고. 심심하면 세상도 좀 바꿔보는."

"그런 셈이지. 완전히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만."

"애초에 완전히 같을 순 없는 거 아니겠어. 완전히 같다면 매혹될 곳이 없겠지. 난 어차피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지만, 그런 날 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인걸. 아직까지 내 자신보다 내게 나은 찬사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믿지만."


그리고 뒤따른 것은 잠시뿐인 정적과, 몇 모금의 차. 그럼에도 어색할 것 하나 없이, 그 분위기를 즐기고만 있는 두 사람이었다. 얼마나 있었을까, 슈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받아주었으면 좋겠군."


옆 의자에 놓았던 포장 상자를 건네자, 뭐 이런 걸 다, 하고 장난스레 아라시가 웃었다. 상자의 리본을 풀면 부드러운 종이 완충재에 감싸인 구두 한 켤레가 모습을 드러냈다. 곧은 가지와도 같은 스트랩 여러 가닥이 곧 발이 들어갈 자리를 감싸고 있었다. 덩굴처럼 휘감는 것이 아닌, 감싸안는 듯한 뻗음이었다. 무엇보다도 눈을 사로잡는 것은 구두굽을 휘감듯이 조각된 꽃들이었다. 꽃잎이 겹쳐진 모양새는 장미꽃과는 다르다는 것을, 예전에 꽃꽂이를 취미삼아 배웠던 아라시는 대번 눈치챌 수 있었다.


"라넌큘러스구나."

"알아보는군."

"장미 선물을 하지 않는 건 현명한 선택이야. 마음에 들어."

"사랑의 언령을 담은 꽃은 가볍게 다뤄선 안 되는 게야."

"어머, 사랑이라니. 치기어릴 때 이야기가 생각나서 못 견디겠네. 지금의 난 내 자신을 사랑하는 걸로도 충분해. 그래서 마음에 든단 거지만. 당신도 어지간히도 자기만족적인 사람이구나 싶어서."


정교하게 조각된 구두굽의 길이를 가늠하고 다시금 그의 눈을 본다. 족히 10센치는 되어보인다. 학창시절에도 키 차이는 그다지 나지 않았고, 훤칠하게 자란 지금도 눈높이는 비슷했다. 웃음이 나왔다. 하이힐을 신는 것 정도는 지금 와서는 연습조차 필요없는 것이었지만, 하필 선물하는 사람이 이 사람이라니. 자신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굴던 그의 태도가 선연했다.


"근데 정말로 괜찮아? 누군가가 내려다보게 되더라도 자존심 상하지 않아?"

"너는 아름다움으로 이 세계에 군림하고 싶었던 것이니, 그 선택을 도울 수 있다면 나야말로 영광이겠군."

"고마워. 다음에 만날 때는 절대 눈을 뗄 수 없는 여왕님으로 있어줄 테니까."

"나야말로 운명의 베를 짜는 신이라도 되어야 하는 것일까. 좋다. 얼마든지 기대에 응해주지."


찻잔의 차는 이미 비워져 있었다. 짧은 매혹의 시간은 끝났지만, 운명처럼 기다리는 약속이 서로에 대한 생각을 길이 품게 했다. 누군가는 그 발에 자신의 역작을 신기는 것을, 누군가는 구두 신은 발로 높이 서서 그 자태를 과시하는 것을 꿈꾸면서. 나누어버린 매혹이 둘 사이에 꿈이 된 채로, 햇빛 드는 곳의 시간은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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