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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사탕통/팝핑 캔디

[리사유키] 별의 날에

by 료밍 2018. 5. 11.

30분만에 쓴 단문. 정말로 단문. 퇴고 없음.

칠석에서도 어김없이 소꿉친구 분위기인 두 사람이 좋았습니다.





별의 날이었다. 이마이 리사는 칠석 축제에 가자는 말을 미나토 유키나에게 건넸다. 유키나는 싫다고도 좋다고도 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하게, 안 간다고 하지 않았다. 아직 좋고 싫음을 표현할 때는 부정문이 익숙한 말씨도 거짓말을 할 줄은 몰랐다. 그 얼굴이 붉었던 것은 명백한 긍정이었으나, 그 속내를 밝히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얼굴에 시시때때로 피어오르는 따스한 핏기가 이제는 좋기만 했다. 늘 곁에서 잡아주던 손의 온기와 같은 따스함이었으니.


시끄러운 인파의 집합 속에서 헤드폰을 벗은 것도 얼마만이었는가? 별이 가른 연인들이 만나는 날이라며 거리의 노점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별 같은 불빛을 냈다.무대 조명보다 눈부신 빛이 눈을 침범하는 것도, 유키나는 오늘따라 싫지 않았다. 무대는 항상 제게 제어권이 있는 공간이었다. 자신이 휘어잡은 분위기 속에서 관객들은 감탄하는, 일방적인 압도의 순간. 유키나의 안도감은 오롯이 그 세상에만 있었다. 무질서한 분위기 속의 분자 하나로 녹아드는 순간에는, 제 마음에 꼭꼭 걸어잠근 빗장이 훌렁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되면 새어나오는 것은 제 안의 무른 것 뿐이고, 그것은 바로 분위기 속에서 기화해버릴 부정형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괜찮았다. 리사와 손을 잡고 나란히 걸으면 편안했다. 길을 잃지 않게 꼭 잡아주는 붉은 이정표. 언제나 제 곁을 밝히는 영속적인 양지. 마음의 불을 끌 새도 없이 침투하는 따뜻한 빛에, 유키나의 승부수는 훤히 드러나는 순도 높은 속정만이 남는다.

태양처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것도 아닌, 하지만 가장 밝은 빛. 미나토 유키나에게 이마이 리사는 가장 아름다운 천체였다.


"오랜만이네. 옛날 생각 나고."

"그래?"

"아하하, 지금 이야기하긴 그랬나?"

"아냐. 지금이 좋아."


손을 잡고 거니는 마을의 활기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도 같았지만, 그리운 마음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 유키나에게 리사와의 순간은 이제 현재진행형으로 겹겹이 쌓아갈 것이었기에, 먼 옛날에 퇴적된 기억들보다도 지금 쌓아올릴 것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굳이 과거를 뒤져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 과거 너머의 공백기는 자신이 소홀한 것밖에 없었으니까. 저를 몰아붙이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그녀를 몰아붙이지 않기 위해서, 즐겨야 할 건 지금만으로 한정해두기로 유키나는 마음먹었다. 어색한 찰나를 맞이하는 것일까 조마조마하다가도, 마냥 생글거리는 리사를 보면 그것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을 놓았다.


"유키나, 사과사탕 먹을래?"


당이라도 떨어졌는지 노점의 먹거리를 눈여겨보기 무섭게 고양이처럼 밝은 눈이 그 시선을 따라간다. 이번에는 먼저 제안해볼까 하고 잔돈을 쥔 손으로 가리키기가 무섭게, 리사는 유키나 몫까지 계산을 마치고 살가운 웃음을 지으며 돌아왔다. 또 이렇게 되었지만 다음 기회는 있으니까, 하고 마음을 다졌다. 패배자가 없는 상상 속 내기에서 유키나는 이기고 싶다는 고집을 부렸다. 그것이 또 귀여웠는지 리사는 장난스레 눈에 그 모습을 담았다.


"자, 유키나, 아 해봐."


먹여주는 입장이면서 자기가 맛있는 걸 먹기라도 하는 듯 리사는 사과 사탕을 내민다. 사과사탕이 충분히 붉은 게 다행이었다. 설탕 시럽 코팅에 비친 제 얼굴이 사과만큼 붉어졌던 걸 유키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 아직까지는 말로 하지 못하는 선명한 감정을, 한 입 베어문 과실과 함께 삼킨다. 역시 단 것은 좋았다. 다음엔 내가 먹여주고 싶다. 그런 속보이는 생각밖에 할 수 없게 되는 자신에게도 한숨을 쉴 겨를이 없었다. 그저 좋았으니까. 그걸로 됐다.


사과 사탕을 나눠 갖고서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사격장에서 수십 번의 실패 끝에 결국 얻어낸 고양이 인형을 품에 안고 사랑하는 이와 손을 맞잡고 걸었다. 하늘에 별이 하나둘씩 얼굴을 내밀 때까지 같은 길을 거닐었다. 소원 쪽지가 달린 키 큰 대나무 화분 옆에서, 견우와 직녀처럼 갈라졌던 동료이자 친구네 자매의 뒷모습을 본 것도 같았다. 별에 닿을 정도로 깊은 소원은 제일 높은 곳에 달면 되겠지. 베이스를 치지 않았던 시간도, 사랑스러운 사람을 외면했던 시간도, 별 사이의 다리가 되어 이어져간다. 오늘은 인연이 돌아오는 날. 오랜 사랑이 마침내 꽃핀 별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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