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와 자매...라기보다는 사요씨 캐릭터 스터디 차원에서 써본 단문.
부정적인 감정을 원동력으로 살아오던 사람이, 더 이상 태울 부정적인 감정이 없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함.
요즘 네거티브한 글을 계속 쓰는 건 본인 멘탈이 네거티브해서인지도...
자기혐오 소재 있음. 자학적인 사고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의를.
금속제 줄의 요철이 손가락을 스칠 때마다 같은 금속질의 메스꺼움을 목 아래부터 느낀다. 요즘들어 기타를 잡기만 하면 이 모양이었다. 감이 떨어졌나? 그것은 아니다. 악보도, 어느 현을 잡아야 하는지도 머릿속에 있다. 모자람 없도록 꾸준히 연습했으니 그 성과는 몸에 배어, 언제라도 최상의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되었다. 그럼에도 첫 음을 잡으려 하는 순간 머릿속의 모든 것이 확 날아가고 말았다. 공백이 눈 앞에서 틈을 좁혀 시야며 피부에 달라붙는다. 모든 사고도 방식도 전부 하얗게 사라진다.
나는 자꾸만 내 발목을 잡는 망연함을 깨기 위해 앰프에 기타를 연결해 한 음을 강하게 쳤다. 음악의 일부조차 되지 못하는 굉음이 방 안에 울렸다. 머리가 찡할 정도의 자극으로 스스로를 한 번 흔들면 눈이 핑그르르 돌 뿐이었다. 식은땀을 쥔 손은 그 앞을 연주하지 못하고 헤매다 잔류하던 음마저 사라질 때 덩달아 멎었다. 눈을 가리지 않게 핀으로 고정한 앞머리가 땀에 젖어 은근슬쩍 내려온다. 여름의 열기 속에서 미적지근하게 부유하는 내 자신을 자각하면 눈 앞이 핑그르르 돌았다. 몸에 힘이 빠지고, 본래는 열정이 되어야 할 이름모를 감정의 찌꺼기가 식는다. 잿빛, 잿빛이다.
"왜지? 무리할 정도로 연습한 것도 아닌데."
밴드에 자리를 잡았을 때부터 기타를 치고 있으면 마음이 개운했다. 소리에 제 모든 걸 쏟아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어지고, 기타 연주를 배운 이래로 처음으로 탁 트인 기분으로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앞으로는 모든 게 잘 될 것 같았다. 단지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쫓기듯 움직이던 팔목에서 부담을 덜었다. 최소한의 수분보충을 위한 물병과 당분 보충을 위한 불량식품 몇 개가 놓인 책상 위에는 이마이 씨가 만들어준 쿠키가 새로 자리잡았다. 우다가와 씨가 디자인하고 시로카네 씨가 만든 새 무대 의상은 잘 보이게 옷장 손잡이에 걸어두었다. Roselia는 나를 몰아세우지 않아도 나로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연습도 실력향상도 순항이었는데, 며칠 전부터 연주하려고만 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새 의욕은 사라지고 나는 갈피를 잃고 헤매게 되었다. 여태까지 무엇을 위해서 기타를 쳤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몇 번의 자가점검을 거쳐, 지나치게 안정적인 상황이 필사적으로 임할 수 없게 만들어서 그렇다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언니 괜찮아? 들어가도 돼?"
문을 두어 번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얄미운 동생의 부름이 때맞춰 내게 불을 다시 지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히나, 하고 볼멘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꾸짖으려 했다. 그러나 뒷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주인 잃은 애완동물처럼 나를 찾는 목소리가 마냥 거슬리지도 않았다. 우리는 지난 칠석 축제 때 약속을 했다. 나와 사이가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소원을 이뤄준다면 여태까지 내가 틀어버린 관계도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처음으로 이 닳디 닳은 혈육의 애증 속에서 빛을 찾았다.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녀가 하던 방식을 따라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주목했다. 그러고보면 방금 히나는 노크를 했다. 내가 방에 불쑥 들어오면 싫어한다는 것을 이제서야 학습한 것 같다. 노크를 해 줘서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그 때, 나는 필사적으로 태울 나의 일부를 잃었음을 알았다. 나 자신을 깎아 불길에 던져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은 나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 본질을 자각하지 못하게 눈을 흐렸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히나에게 죽어도 고맙다곤 말하지 않았다.
"오늘따라 언니, 소리가 감기 걸린 것 같아서 걱정됐어."
걱정스러운 목소리는 평소대로라면 쓸데없는 동정이라 생각하고 당장에 쫓아냈을까. 지금은 이상하게 그럴 기력이 나지 않았다. 히나의 동기가 나인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나와 같은 비틀린 심보라곤 한 줌도 없었다. 정말 좋아하는 언니와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싶어서, 그녀는 음악에 마음을 담는 연습도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도 배우기 시작했다. 날랜 동생이 답답한 언니를 이기고 있었던 영역은 재주만이 아니었다. 히나는 저를 둘러싼 세상을 사랑할 줄 알았다. 그토록 사랑하는 것들에 닿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것이 히나의 진짜 서투름이자 가능성이었고, 나는 잔인하게도 나보다 하나라도 못한 것을 확보하기 위해 그녀를 자라지 않게 꾹 눌러두려 했다.
"방해했다면 미안! 괜찮아지면 다시 올게."
결국 히나는 내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빠른 발소리가 문에서 멀어져갔지만 경쾌함을 잃지 않았다. 아마 나와 조금이라도 사이좋아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겠지. 정작 나는, 나를 부지하기 바빠서 얼마 전의 결단도 잊고 너를 미워하던 시절로까지 돌아가려 하는데도.
많은 것이 앞으로 흐른다. 나도, 주변도 변하고 있다. 마음을 담아서 움직이고 있다.
책상 위의 쿠키 봉지도 옷장 손잡이에 걸린 무대의상도 괜시리 나를 질책하는 것 같다. 히나뿐만이 아니었다. 이마이 씨도, 우다가와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경멸했다. 어쩌면 나는 이마이 씨에게 공백기가 있었던 것에 감사했는지 모른다. 우다가와 씨가 제 언니를 감히 뛰어넘지 않고 두 번째에 머무르려 하는 것에 안도했는지 모른다. 사랑으로 움직이는 그들을 부정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성취는 언제나 발을 딛을 곳을 요구했고 나는 디딤돌 대신에 마땅히 밟고 올라갈 만한 몸뚱아리를 찾았다.
모두가 플러스를 원동력으로 앞으로 나아갈 때, 그 속에서 나만이 마이너스를 품고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가 내는 소리는 무자비하고 파괴적이었다. 나는 세상에 대한 증오를, 가까운 이들에 대한 열등감과 경멸을 태워 소리를 폭발시켜왔다. 그리고 지금은 태울 것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미래를 기약하는 주변에 발맞춰, 나도 어느새 저만치 앞에 와 있다. 그럼에도 내 소리만은 과거가 완전히 연소할 때까지 저 뒤에 머물렀다.
태울 것이 필요하다. 전처럼 연주에 녹여낼 열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남은 것은 잿더미 뿐이다. 재투성이가 된 옛 길을 파헤치면 잡히는 것 하나 없고, 그 길의 출발점에는 그을음만이 남아있다. 내가 걸어온 길을 거슬러올라가면 이 그을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분노에 사로잡혀 살던 내 망령이 내 목을 조르며 보란 듯이 그 자국으로 끌고 간다.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그리고 더 이상 불태울 것이 없는 나는 나를 처음 불사른 자리로.
처음으로 돌아가서 기타 줄을 잡는다. 목구멍까지 재가 차오른다.
"언니! 괜찮아?"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익숙한 메스꺼움이, 진득한 찌꺼기가 다시 올라온다. 습한 기침이 신체의 임계를 알렸다. 나는 당장에 화장실까지 달려가 속이 빌 때까지 게워냈다. 문을 꼭 잠갔다. 적어도 동생 보는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전시하진 않았다는 알량한 자존심이 타서 또다른 재가 되었다. 차라리 마음놓고 너를 사랑할 수 있었다면 나는 재투성이로만 남지 않을 수 있었을까. 재를 전부 토해낼 때까지 기침을 거듭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말로 이젠 쉬어야 할 때가 아닐까. 하지만 그 공백기의 끝을 기약할 수 없게 될까봐, 나는 그조차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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