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S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미나토 유키나의 심리 중심. 심리가 많이 뒤틀렸습니다. 약 리사유키 요소 있음?
네오어스펙트 이벤트 네타 있음.
만약에 유키나가 로젤리아의 유대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생각했다)면... 하는 가정을 해 보았다.
(옆동네 최애의 '실패하지 않게 하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라는 대사가 떠오르는데, 유키나도 어쩌면 이런 심정이었을지도...)
다섯이서 밴드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큰 실패였다.
하나 둘 술렁이며 자취를 감추는 관객들을 등지고도, 한 때 고고한 디바라 일컬어진 미나토 유키나는 한 점 흔들리지 않는 자태를 과시했다. 무대 위에선 어떤 순간이라도 고아하게, 푸른 장미의 문양을 무구의 징표처럼 악기에 내건 Roselia의 철칙은, 절망적인 상황에도 쇠하지 않아야 했다. 곡이 끝나자, 그들은 의례적인 인사 하나 없이 무대 뒤로 걸어나갔다. 당황 가득한 표정을 하고도 끝까지 들어준 관객들에게 인사라도 하려던 밴드의 드러머, 우다가와 아코의 시도를 유키나가 차가운 눈길로 저지했다. 하나둘씩 무대를 떠나 대기실 입구의 그늘에 표정을 분간할 수 없게 될 즈음, 걱정 많은 베이시스트 이마이 리사가 유키나를 살폈지만, 유키나는 오랜 친구의 걱정어린 배려에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시로카네 린코는 밴드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말 하나 없이 키보드와 자재를 챙겨, 그림자처럼 뒤를 따랐다. 기시감이 느껴지지만 결코 그립지는 않은 이 모든 상황이, 히카와 사요에게는 예삿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미나토 씨?"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는 상황. 늘 Roselia에서 엄격하고 진지함의 대명사처럼 있어왔고, 한때는 유키나와 동격으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멤버였던 자신이라면, 명백히 과거로 역행하려는 조짐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말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요는 밴드 안의 제 입지를 이렇게 써먹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동생과 약속을 나눈 순간부터, 더 이상 사람을 내려다봐야만 자아가 유지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변했다고 해서 유키나까지 변할 거라는 생각은 오판이었을까.
"미나토 씨."
사요는 목 뒤로 치밀어올라오는 따가운 죄책감을 견디며 유키나를 둘러싼 침묵을 깼다.
"사요, 돌아가면 지금의 세 배는 연습할 거야."
유키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사요는 발걸음을 조금 빨리 해 유키나 옆에 나란히 섰다.
"일단 조금 휴식을 취하고 문제를 점검하죠"
"내 말 못 들었어? 돌아가면 바로 연습이야."
"유키나, 잠깐..."
"이마이 씨에게 이 이상 짐을 떠맡게 할 수는 없어요."
리사가 둘 사이에 끼어들려 하자, 사요는 기타를 메지 않은 팔로 가로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요는 유키나를 똑바로 보고 입을 열었다.
"미나토 씨, 오늘 같은 실패에 대비하기 위해선, 우선 그 이유를 모색해야겠죠. 연주의 기교를 높이는 것만큼이나..."
"Roselia에 실패는 없어."
사요의 말을 단칼에 잘라내며, 유키나는 고했다.
'실력은 좋지만 고교생 밴드일 뿐'
관객석에서 수근거리는 소리 한 가닥이 우연히 귀 밝은 유키나를 쿡쿡 찔렀다. 여태까지 Roselia는 실수 하나 없이 관객들을 실력으로 압도해 왔다. 꼴사납게 곳곳이 비어버린 관객석에서도, Roselia의 연주 실력에 토 다는 이는 없었다. 처음 페스티벌에서 낙선했을 때도, 심사위원은 그들의 실력만큼은 흠잡지 않았다. 그렇지만 미래를 기약한다느니 하는 말이 두루뭉술한 아첨이라는 것도 유키나는 모르지 않았다. 게다가 그 때도 관객들이 떠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문제는 말의 뒷 부분, '고교생 밴드'에 있을까.
하지만 학생이라는 입장과 퍼포먼스 능력 간에는 어떤 연관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즉, 그 말은 학생, 청소년에 대한 편견이다. 진지하게 마음먹고 연습하면 그만큼 는다, 그 단순한 섭리는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별반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SWEET MUSIC SHOWER는 주니어 부문을 따로 구분해뒀는데, 그렇다면 다른 참가자들도 청소년 밴드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 중에서도 로젤리아의 연습량이나 악곡에 대한 이해도는 독보적이었다. 학교생활에 할당하는 시간 때문에 음악에 완전히 몰두할 수 없다는 말은 Roselia의 기형적일 정도로 빡빡한 연습 스케쥴이 부정할 수 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애들이 음악을 아냐는 색안경 앞에선 실력으로 압도하면 증명은 끝난다. 그렇다면 무대에서 최고의 연주를 보이는 것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대기실로 들어서서까지도 자신의 눈치를 보며 말을 고르는 사요를 본다. 어차피 우리는 사적인 이유로 음악을 하는 거라고 솔선해서 말해줬던 사요는, 동생과 화해한 탓인지 요즘은 표정도 말씨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녀의 쌍둥이 동생 히카와 히나는 아이돌 밴드 Pastel*Palettes에서 기타를 맡고 있다고 했다. 처음 데뷔했을 땐 제대로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것은 히나와 백세션 멤버였던 드러머 뿐이었다던. 어차피 아이돌 밴드라면 연주 실력은 그리 비중이 크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노래로 승부하지 않는다. 꾸며낸 모습, 연기, 음악이 아니라 캐릭터를 파는 산업. 그런 것에 밴드라는 테마를 곁들였을 뿐인, 밴드 음악을 장난으로 아는 사람들의 꼭두각시들. 핸드싱크 논란이 한 풀 꺾이고 라이브로 '승부'하겠다고 한 이후로도, 오랫동안 뮤지션의 음악을 분석하며 자란 유키나의 귀에 그들의 연주는 서툴기 짝이 없었다. 아마 '서투르지만 노력하는' 이미지를 선보이려는 거겠지. 대중음악의 생태에 생각이 미치면 유키나는 어쩔 수 없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버지가 음악을 그만둔 것도 주류의 그 요구를 거부해서였다. 아버지도 원한다면 인디즈에서 고생해서 올라왔다는 멋드러진 역경 극복 신화를 얼마든지 팔 수 있었다. 하지만 유키나의 아버지는 음악 외의 요소로 자신을 꾸며내 팔아먹기에는 너무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너무나 불합리해서, 유키나는 이를 갈면서 실력만으로 음악계를 제패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대기실의 테이블에는 어느새 먼저 자리잡은 멤버들이 있었다. 아코는 분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지 볼을 부풀리며 무대의 아쉬운 점을 털어놓고 있었고, 옆에서 린코가 아코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주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리사가 언제 가져왔는지 스포츠 드링크와 간식거리를 테이블에 차렸다. 그렇게 드럼을 치고도 진이 빠지지 않았는지, 아코는 계속 조잘대며 땀에 젖은 긴 소매를 손짓으로 휘휘 흔들어대고 있었다. 유키나는 오늘따라 그 행동이 유독 거슬렸다.
아코는 언니를 동경해서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고 했다. 최고가 될 생각이 없으면 돌아가라고 그녀를 몇 번이나 거절할 때부터 유키나는 아코의 언니 자랑을 들었다. 그 언니라 함은, Roselia와 마찬가지로 학생 밴드인 Afterglow의 드러머, 우다가와 토모에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Afterglow의 보컬은 같은 학교 후배인 미타케 란. 미묘하게 닮은꼴이지만 음악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전혀 딴 판이었던 그녀와는, 혹 학교 안에서든 라이브하우스에서든 마주치면 신경전이었다. 세상 모를 것처럼 진지하게 곡과 가사를 쓰는 데 집중하다가도 어느새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표정을 푸는 해이한 모습.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유키나는 자신이 느끼는 거북함의 실체를 점점 짐작할 수 있었다. Afterglow는 실력은 충분했다. 그 충분하다는 말이 문제다. 그들이 얼마나 음악에 조예를 쌓아가든, 그것은 그저 자기만족에만 머무를 뿐이었다. 반이 갈려도 같이 있고 싶어서. 소꿉친구끼리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친구놀이에 음악을 이용하고 있을 뿐인 사람들이, 진지하게 음악성에 대한 고민은 해 봤을까? 그럼에도 그들은 이 라이브하우스에서 큰 주목을 받아왔다. 어째서.
같은 학생 밴드. 실력은 Roselia가 한 수 위인데, 우리에게는 없고, 그들에게는 있는 것. 사람들이 학생 밴드에 요구하는 것.
유키나가 그렇게도 부정하고 싶었던 답은 그녀의 기대를 배반하고 너무나도 쉽게 빈 자리를 채웠다.
Roselia에는 서사가 없었다.
곡의 세계관 이야기가 아니다. 대중들은 그런 걸 이해할 정도로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교생 밴드라는 딱지부터 보는 이유는 일목요연했다. 사람들은 고교생의 청춘이니 감동 실화, 인간승리 등으로 일컬어지는 번지르르한 포장을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꾸며낸 것처럼 극적이고 굴곡 가득한, 그렇지만 현실이라 생생한. Roselia에도 감히 그런 것을 기대하고 뻔뻔하게 멍청한 얼굴들을 관객석에 끌고 오는 것이 틀림없었다. 애초에 실력이니 음악성이니 하는 것들은 듣기 거슬리지 않고 따라부르기 쉬운 정도만 되면 상관없었다. 능수능란함은 과한 것이었고, '아직 고등학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어리숙함이 그들에게 기대되는 수준이었다.
아버지는 이런 바닥에서 자신만의 음악을 고집했다. 그는 대중의 구미에 맞춰 알랑거리지 않는 고고하고 고독한 뮤지션이었다. 그리고 그 말로도 유키나는 알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유키나 자신도, Roselia도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되리라는 두려움이 점차 유키나의 머릿속에서 자욱한 연기가 되어 사고를 흐렸다.
"유키나, 괜찮아? 안색 나빠 보여."
주먹을 손톱이 먹혀들어갈 정도로 꽉 쥐면, 그 위로 따뜻한 손이 겹쳤다. 꾸준한 베이스 연습으로 다시 자리잡은 굳은살이 유키나의 손등 위에 느껴졌다. 리사는 아까와 같이 유키나의 안색을 살폈다. 이마나 뺨, 목 뒤에 손을 대기도 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물통을 집어 건네보기도 했다. 유키나는 당장에라도 리사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괴로움을 털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리사의 다정함이 피부로 닿으면 닿을수록, 유키나는 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제게 지어주는 이 미소, 리사와 아버지와 셋이서 음악을 할 때와 같은, 애정의 터전. 각자 품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사연들과, 그럼에도 다섯명이서밖에 낼 수 없는 소리를 내기 위해 지내온 시간들. 헤아릴 수 없는 무게를 지닌 그 순간들을, 고작 우매한 대중들의 눈요깃거리나 삼으라고?
"물 마실래? 식은 땀 흐르는 것 좀 봐, 스태프 부를까?"
용서할 수 없다. 그것만은 할 수 없다. 지금의 실패조차도 대중이 바라는 이야깃거리의 역경으로 소비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둘 수 없다. 리사의 미소를, 사요의 결의를, 아코의 동경을, 린코의 도전을, 그리고 그 마음들을 옆에서 지켜봐온 유키나가 느끼는 무한한 감사를, 진열대의 고깃덩이처럼 뭉텅뭉텅 잘라서 팔게 놔둘 것 같은가. 유키나의 절망은 곧 분노로 매섭게 타올랐다. 또 다시 소중한 애정의 자리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리더인 유키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리사."
"유키나, 좀 괜찮아졌어? 아프면 병원 가자. 무리하지 말고 푹 쉬면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응?"
리사의 얼굴을 볼 때마다 유키나의 속은 타들어갔다. 무엇부터 고쳐나가야 할까. 대중들 앞에서 긴장 풀고 웃지 마라? 멤버들의 마음을 약하게 하지 마라? 사실은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다들 소비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거기에 제일 취약한 것이, 넘치는 애정을 쉽사리 숨기지 못하는 이마이 리사다. 이렇게 마음먹은 이상 유키나는 여태까지 쭉 곁에 있어준 그녀를 또다시 저버리고 상처주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런 식으로라도 지켜내야만 했다. 관객석 곳곳에 도사리는 허튼 생각을 찍어누를 정도로 빈틈을 줄이고 실력을 갈고 닦는 수밖에 없다. 고고한 뜻과 그를 둘러싼 더 중한 유대가 부식되지 않도록, 언제까지나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는 정점에 피어있을 수 있도록.
유키나는 차분한 척 리사의 손을 밀어내고 등을 돌렸다.
"이 이상 실패의 증거를 만들지 마. 두 번은 말하지 않아. Roselia에 실패는 없어."
실패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방부 처리된 장미정원. 미나토 유키나는 그곳으로 회귀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정원의 철문을 굳게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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