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썰만 풀다가 저질러버렸다. 앙스타+반도리 크로스오버. 로젤리아와 발키리가 같은 라이브하우스를 공유한다면? 하는 상상의 그것.
마치 연재물처럼 프롤로그라고 달았는데 연재를 계속 할지는 모르겠고 써도 아마 옴니버스식으로 생각나면 쓸 듯
시점은 마리네 이후 이듬해 4월/로젤 밴드스토리 직후부터 시작해서 원작타임라인 조금씩 따라가면서 접점 만드는 식?
커플링은 유메노사키 사이드는 슈미카 / 반도리 사이드는 리사유키 메인
프롤로그 1 - 모든 것을 건 자들
"당신은 모든 걸 걸었구나. 그리고 모든 걸 걸게 만들었고."
그래서 모든 걸 잃었고. 그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만약에 내가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면 당신은 최악이라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 그것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모든 걸 잃을 뻔 한 상황에서 가까스로 머리를 조아릴 정도의 상황 파악은 했었다. 그것은 냉정한 머리가 아니라 한계까지 도달해서만 끓어오르는 마음이 나선 결과였다. 나조차도 그러리라고 믿지 않았던 기억이다. 그리고 내 옆에서 결코 유쾌하지 않은 옛 이야기를 털어낸 사람은 그 마음마저도 갖지 못해 모든 걸 잃은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그랬던 시절을 내게 고해했다. 그럴 줄 알았던 시점에서 그래도 하나의 도약이었을까.
이 중요하지 않은 듯 중요한 이야기의 발단은 별다른 게 아니었다. 라이브하우스에서 리허설을 마치고 뒷정리를 하던 도중 대기실에서 이 사람을 만났다. 같은 무대 의상을 입은 사람이 로젤리아의 앞 순서였던 것은 기억하지만, 이 사람은 아니었다. 머리색이 검은 사람이었으니까. 무엇보다 무대에 선 사람은 양쪽 눈 색이 달랐다. 렌즈라도 끼고 있었을까. 여튼 그는 같은 유닛 멤버의 리허설을 체크하기 위해 객석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소문은 들었다. 아이돌이라는 이름 하에 예술을 추구하는, 대중과 타협하지 않는 외골수. 그 자태는 사뭇 인상에 강하게 남았고, 그 유닛 멤버의 무대를 본 바로는 그 실력도 예사로운 것은 아니었다. 아이돌이라는 상업음악에 찌든 꼬리표를 굳이 고집한단 점에선 오히려 반항정신이 돋보여,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우연히 뒷정리를 하다가 마주치고,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이 될 줄은 몰랐다. 이런 일은 대체로 리사의 일이었지만, 나도 때마침 여유가 좀 있던 차였기에 이야기를 들어주게 되었다.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이었기에 어느새 나도 그 자리에 있었고, 결국 끝까지 이야기를 들었고. 그리고.
"너는 나를 비난할 셈인가?"
그래주길 바라고 온 것이겠지요. 사요였다면 그렇게 이야기했을 것고, 리사라면 그렇지 않다고 확실하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사람의 결정에 대하 쉽사리 내 입장을 결론지을 수 없었다. 틀리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옳지 않았다 해도, 내가 같은 상황이라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로젤리아가 실패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런 때가 오면 나는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반면에 프로를 자칭하면서 센터 멤버에게 라이브를 시키지 않았다는 건 프로의식 결여라고 단언할 수 있지만. 리드보컬에게 변성기가 왔다면 디스토션 페달이나 보코더로 목소리를 다르게 해서 실험이라도 해보는 건 어땠냐고 쏘아붙였지만, 그는 왜인가 기계를 통한 목소리 변조에는 결벽할 정도로 부정적이었다. 적어도 연습 정도는 성실히 시켜두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이돌이란 실망스럽네. 당신 같이 완고한 사람이면 절대 타협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라이브 퍼포먼스를 중요시하는 유닛이라면서 립싱크라니. 진실이 밝혀졌을 뿐인데 비장한 끝처럼 말하지 마."
일단 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말했다. 홧김에 또 쏘아붙이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음악에는 진지하기 때문에 음악에 거짓이 있다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요즘 여기서 간간히 얼굴을 보이는 아이돌 밴드 파스텔 팔레트도 핸드싱크 때문에 곤혹을 치뤘었지. 아이돌 업계에선 흔한 일인가?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이 사람은 소속사에 압박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외려 제일 큰 결정권을 가지고 압박을 가하는 건 본인이었지. 프로 경험은 있었다고 하지만 기반은 예술고등학교 쯤 되는 곳의 스쿨 아이돌이고, 일단은 학생 자치로 돌아가는 환경인 모양이었다. 뭐 어쨌든 상업음악의 생태는 나도 잘 모르지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건 기본이다. 초면부터 말하기에는 뼈아픈 말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앞으로 라이브하우스에서 얼굴을 안 볼 수 없는 사이인 이상, 잘못되는 게 있으면 말해주는 게 도리다. 이것도 리사에게 배운 것이기에, 말이 잘못 나갔다면 리사가 수습해줄 거고.
"칫."
그렇게 말하자마자 상대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자존심 때문에 좀처럼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형인가. 방금 말은 취소다. 리사에게 귀찮은 일만 시키는 건 미안하고, 이렇게 좀처럼 남의 말을 안 들어먹는 부류는 리사가 잘 다룰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니 되도록이면 내 선에서 끝내고 싶다. 아무리 사람 일을 도무지 모르는 나라도 양심은 있다. 그래도 무대에 서고 싶다는 고집만큼은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지, 미련 자락이 쉬는 한숨에 묻어나길래,
"당신은 뭘 위해서 무대에 다시 서고 싶어?"
두 숨 정도 시간을 흘려보내고 물었다. 실패하고 잘못되는 순간이더라도 무대를 계속하고 싶은 의지는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아버지의 못다핀 꿈을 내 손으로 증명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다. 아버지의 시대는 이미 완결났지만, 아버지가 소중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면목이 없어질 사람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알 것 같다는 촉이 바로 왔다. 물론, 내가 밴드를 하는 이유는 마냥 아버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아버지와 내 곁에서 항상 있어줬던, 지금은 그 앞에서 웃을 자격도 내게 주어지지 않았지만 곁에는 두고 싶다는 이기심만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일까. 지금은 유닛을 탈퇴했다는 리드보컬? 말만을 들어보면 어지간히도 아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거기까지 관계가 틀어졌다면, 그리고 그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면, 역시 그에게도 지켜보는 것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겠지.
'나도 조금만 더 리사가 하는 말에 귀 기울였다면...'
적어도 자기가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스스로 본심을 말할 자신이 없었으면 적어도 상대가 말하는 건 들어줬어야 했다. 이미 말조차 하지 못하게 한 시점에서 실격이지만. 이 역시 내가 할 주제가 되진 않는 말이었다. 나조차도 이미 로젤리아에서 내 목소리가 제일 크다는 걸 뼈저리게 알고 있다.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증거를 확보한다면 참조가 될 것이다. 완전히 남의 일만은 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생판 남에게 참견하고 있는 거겠지.
"당신이 다시 일어나고 싶으면, 주변의 목소리를 듣는 연습부터 해 둬."
그래서 한 마디만 더 참견해 두기로 했다. 과연 그 말이 이 골치아픈 이웃에게 얼마나 닿을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최대한 정직하게 말해둔다면 알아들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잠시 고개를 숙여 상념에 잠기는 듯하더니, 도로 입을 열었다.
"보기 드물게 정직한 인간이군."
"정직하지 않으면 음악을 할 수 없거든."
"인정하지. 네가 하는 말은 합리적인 조언이었다고."
그는 의외로 속 시원하게 이렇게 말했다. 무엇에도 쉽게 굽히지 않는 콧대 높은 인간인 줄 알았는데, 그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는 절박했을지도 모른다. 알지도 못하는 인디밴드의 보컬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고 조언까지 들을 정도로. 내가 로젤리아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처럼, 이 사람도 모든 걸 걸었던 사람이니까.
"지금은 몰락한 허수아비 꼴이지만, 적어도 다음에는 다시 무대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군. Valkyrie의 이츠키 슈다."
"Roselia의 미나토 유키나야. 당신처럼 모든 걸 거는 사람은 인정하니까, 앞으로 마주치면 서로 실망시키지 말자고."
리사한텐 뭐라고 전해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나는 이 이웃의 이름과 유닛명을 기억해뒀다.
"리사, 혹시 'Valkyrie'라고 알고 있어?"
"아, 걔네? 작년까진 TV에도 꽤 나왔는데 갑자기 활동중지 했던? 아깝다. 노래도 잘 하고 무대의상도 린코가 좋아할 거 같았는데. 근데 걔넨 왜?"
"노래를 잘 한다니, 리사는 라이브와 립싱크를 구분할 정도로는 귀를 밝혀야겠어."
"립싱크? 혹시 립싱크 들켜서 활동중지한 거야? 아, 맞아, 히나네 파스파레도 비슷한 사정이 있었으니까... 아이돌이란 고생길이네. 히나네랑 같은 소속사였나?"
"그건 아니야. 오히려 돌아가는 형태는 지하 아이돌에 가까워. 그보다 그 사람들, 우리 쪽 라이브하우스를 거점으로 삼을 예정인가봐."
"복귀한다고? 것도 우리 연습하는 거기서? 자숙의 의미로 인디즈로 내려왔나?"
"어쨌든 앞으로 자주 마주칠 것 같고,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해도 실력은 무시할 수 없는 프로야."
"유키나, 라이벌을 만나서 기세 등등해진 거야? 게다가 상대는 현역 아이돌? 유키나도 이제 바깥세계에 관심이 많아졌구나. 리사쨩 감동이야."
"리사, 비행기 태우지 마. 로젤리아에 친구놀이가 필요없는 만큼 라이벌 놀이도 필요없어. 로젤리아가 목표로 하는 건 정점이야."
"아, 그래? 아... 아! 맞다, 오늘 리허설에서 우리 전 순서에 있었던 남자애, 왠지 거기 백댄서랑 닮지 않았어? 옷도 비슷하고..."
프롤로그 2 - 그림자는 춤추고
라이브하우스의 뒷정리와 청소는 보통 내가 맡는다. 지하에 위치한 이 라이브하우스는 몇몇 정규 스태프 이외에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일손을 충당하고 있고, 밴드나 퍼포머 활동을 하면서 이곳에서 겸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 역시도 그랬다. 공연을 위한 자금도 벌어야 하고, 그 겸 라이브하우스 견학도 되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혼자서 리허설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객석을 돌아다니면서 쓰레기를 주웠다. 여전히 둘이서 무대에 서지는 않는다. 스승님은 내가 만족스러울 정도가 되기 전까진 무대에 같이 올라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그가 무대에서 빛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그를 빛내기 위한 최적의 무대장치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무엇도 두 번 다시 그의 무대를 배신하지 못하도록 무대장치를 공부하고 있다. 그것은 무대장치를 다루는 공부이면서, 무대장치가 되기 위한 공부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에 오는 다른 밴드나 퍼포머 그룹들의 무대도 보고 있다. 무대의 세계는 유메노사키 학원 바깥에도 있다. 스승님도 아마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학교라는 작은 사회 너머에서 경험을 쌓기로 결심한 것이겠지. 지옥같은 학교의 시스템이 존재하는 이상 스승님이 유급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력치 않으니 다른 데서라도 기반을 쌓아둬야 했다. 그런 고민을 하며 어두운 무대 아래 난간을 붙잡고 걷다보면, 기타 케이스를 어깨에 멘 사람과 마주쳤다.
"아, 안녕. 수고했어. 오늘 무대 좋았어."
"아, 안녕하세요?"
"말 놓아도 돼. 고2라며. 동갑이잖아."
분명 나 뒤에 리허설을 한 밴드의 멤버였다. 헐렁한 체육복 차림에 머리는 올려 묶고 활기 넘치는 눈웃음을 짓는 서글서글한 모습은, 무대 위에서의 강렬한 인상과는 사뭇 달랐다. 붉은 베이스 기타를 치켜들고서 부츠를 신은 발로 무대 바닥을 내려찍는 동작을 기억한다. 그러고보면 무대 의상도 왠지 스승님이 좋아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나도 이 사람처럼 무대 위와 아래의 분위기를 조금 더 잘 구분할 수 있었다면 스승님께 덜 꾸중들었을 것이다. 머릿속 내용물이 흐르듯이 웃음이 실실 흐르는 나는, 스승님이 추구하는 격식에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러고보면 그 밴드 이름은 뭐였지. 로즈 카멜리아?
"유키나랑 만났다며?"
"유키나...가 누굽니꺼, 누구고?"
"발키리의 멤버와 만났다길래."
"응아앗, 저는, 내는, 그냥 임시 객원멤버 같은 거구, 아마 스승님 이야기일 거라예... 거데이?"
한 번 무너진 후에도 여전히 우리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있다. 그것은 그리움이기도, 실망이기도 했다. 많은 말들은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나에 대한 언급을 들은 적은 없었다. 나는 실패작이고, 노래조차 부르지 않는 백댄서이자, 무대장치 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지 않는 데 있어야 했다. 그런데 발키리라는 이름을 떠올리면서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이 나라니?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래? 임시멤버라고 하기에는 인상이 되게 강한데. 노래도 그렇고 춤도 되게 강렬해서. 맞다, 그때 백댄서 하던!"
"아, 알고 있었습... 있었나?"
"아, 예전에 좀 관심이 있어서 봤어. 무대 연출이 좋아서 기억에 꽤 남았어."
"그, 감사합니다..."
"오늘 무대도 되게 신선해서 좋았고. 혼자서 퍼포먼스를 하는데, 꼭 두 사람이서 춤 추는 것 같더라.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신기했어. 요즘 아이돌은 역시 실력파 중의 실력파구나..."
그때 나는 노래도 부르지 않았고, 그 연출 속에서도 스승님과 지금은 없는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뒤로 밀려나 있었다. 지금도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처럼 춤을 추는 이유는, 항상 무대 위에서 스승님의 자리를 마련해두고 싶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나는, 스승님의 '최고 걸작'이 떠나지 않았다면 기억할 필요조차 없는 임시대용품이다. 그런데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니.
"그게... 맞아. 눈이었어. 너 눈 되게 예쁘고."
"응아앗?!"
"주변에서 눈 예쁘다고 많이 안 그래?"
붉은 베이스의 사람(일단은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의 말은 기습적이었다. 갑자기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당황스러운지라, 놀란 기색이 붉은 베이스의 사람의 눈에도 보였을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너무 까불거렸나? 갑자기 걱정이 몰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면서 내 눈을 칭찬하는 말을 계속 들으니 그 걱정도 이내 사라졌다. 내 눈을 기억하고, 꺼림칙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적어도 이 사람을 대하는 게 불편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난 이마이 리사. Roselia라고, 네 다음에 리허설하던 밴드 있지? 미나토 유키나가 거기 보컬이야."
"아, 그... 노래 잘하는 분... 디게 라이브에 힘이 들어가 있었던... 아! 맞다, 이마이 리사 씨는 로제리아에서 베이스 치는 그 사람 맞제?"
"우와, 어떻게 알았어? 보통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를 제일 먼저 알아보는 사람은 잘 없는데."
이마이 리사라는 사람(이름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눈치였다. 한 명이 빠지면 소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밴드에서 못 알아보는 사람이 생긴다고? 그렇지만 아마 이 사람도 똑같이 생각했을지 모른다. 노래와 춤으로 구성되는 아이돌의 무대 위에서, 비록 노래는 하지 않더라도 내가 역할 하나를 맡은 시점에서,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 생각 차이는 밴드와 아이돌이라는 입장 차이에서 오는 걸까? 아니면 이 사람은 무언가를 쉽게 배제한다는 발상조차 할 줄 모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승님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끝내 그를 믿을 수밖에 없는 내가 그렇듯이.
"그, 내는, 무대 곳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잘 보여가, 베이스도 드럼도 금방 알아본데이. 그리고 내, 저음도 잘 듣는다. 울 스승님 목소리도 낮아가 좋아한데이."
"그런가... 그래? 나 많이 튀어?"
"되게 박력 있었데이!"
솔직한 감상이었고, 순수한 칭찬의 의미로 말했다. 하지만 뒤이은 말에 이마이 씨(일단 여기까지는 기억했다)의 놀란 얼굴이 마냥 기쁨으로 놀란 것은 아님이 드러났다. 여전히 웃고는 있지만, 미안한 듯한, 혹은 죄지은 듯한 미소였다.
"나, 너무 튀었나? 유키나가 받아야 할 스포트라이트를 내가 가져간 건 아닐까, 에헤헤... 충고 고마워. 역시 자기 눈엔 안 보이는 것도 있구나."
그녀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대번 알 수 있었다. 그녀 역시도 자신이 마땅히 비춰줘야 할 사람의 자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혼자 무대에 설 때마다 불안감을 키워가는 것처럼. 내가 두 사람 몫의 춤을 계속 선보이며, 나보다 더 무대의 주역이 되어야 할 사람의 자리를 되새기는 것처럼.
"그,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는 무대 위에 서는 사람 모두에게 돌아가는 거니까, 그걸로 부담 갖지 마라."
"그렇지만 난 유키나를 위해서 이 밴드에 자리를 만든 거니까, 유키나에게 폐를 끼칠 순 없는걸..."
"무대에 서는 걸로 폐가 될 리가 없데이. 밴드는 다 같이 하는 거 아이가. 하나하나 다 주목받는 게 맞지 않나."
밴드라면 다를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역할이 나뉘었고, 센터 개념이 있는 아이돌이라면 몰라도. 이것이 적절한 충고일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중요한 악기인데 조금 덜 화려한 소리를 낸다고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면 불공평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녀의 고민은 슬프게도 느껴졌지만, 내 입장에 비춰보면 슬퍼해야 할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스승님을 위해서 무대의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기쁜데, 왜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욱신욱신한 걸까? 여전히 이마이 씨의 말씨에서는 불안이 엿보였다. 이 상황에서 앞으로 나는 무슨 말을 해 줘야 할까? 이제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조금이라도 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고민하고 있으면 내가 안정이 되지 않았다.
"그, 이마이 씨? 이마쨩선배라고 하면 되나?"
"그냥 편하게 불러. 그리고 동갑에 학교도 다른데 선배라니, 언니같단 소리 자주 듣지만 쑥스러운데."
"그기, 친한 친구 중에서 누나 같은 아가 있어가. 가는 생일두 빠른 생일이지만 누나라 카니까 누나라고 생각하고 있데이. 암튼 리사라고 하면 울 반 딴 아랑 헷갈릴지도 몰라가, 이마쨩 정도로 하면 기억 잘 날 거 같은데 괘않나?"
"만나자마자 별명? 하핫, 우리 반에도 그런 애가 있는데 신기하네. 걘 날 리사찌라고 불러. 알기 쉬워서 좋아."
다행이도 이름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풀린 것 같았다. 아까의 미안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금세 아까처럼 활기 넘치는 표정이 되었다. 나도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졌다면 다행이다. 이마쨩(이걸로 정착할 수 있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잘 기억해야겠다. 꼭 오늘을 사는 것 같은 이름이다.
"아무튼 이마쨩,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는 이마쨩이 베이스도 잘 치고 쾅! 하는 거 멋있다고 생각한데이."
"고마워. 너도 되게 참신한 퍼포먼스를 하니까 자신감을 가져. 열심히 해보자, 미카."
"응아앗?! 이, 이름으로 부르면 좀... "
"미안, 나 주변 애들은 다 이름으로 부르거든. 동갑이기도 하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어."
"그, 다른 게 아이고 내 이름 별로 안 좋아해가... 그치만 이마쨩이 그게 편하면 내도 상관은 없데이."
이마쨩은 내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듯이 내 목에 걸린 스태프 출입증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러다 주머니의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고는 발걸음을 조금 급하게 돌렸다. 약속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아, 나는 이만 돌아갈게. 유키나가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아서."
"잘 가래이. 다음에 또 보자."
손을 흔드는 이마쨩에게 나도 손을 크게 흔들어주었다. 앞으로 이 라이브하우스에서 자주 만나게 될 사람인데, 좋은 사람일 것 같아서 다행이다. 아직 많은 것을 모르는 사람이지만, 낯 가리는 사람에게도 막힘없이 친절하게 대해줄 정도로 좋은 사람인 건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 짐작뿐이지만 왠지 알 것 같은 게 있었다.
이 이마이 리사라는 사람은 미나토 유키나라는 사람을 엄청 좋아하는구나, 하고.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좋아한다고 부르기엔 주제넘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온 힘을 다해 빛나게 해 주고 싶은 사람은 있었다. 그런 마음을 공유하면서 음악을 한다는 점에서는, 나도 그 사람도 숭고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스승님아, 오늘도 내 봐주느라 수고 많았데이."
"아직은 불출이지만 성과가 없진 않았단 게야."
"아, 맞다, 스승님아, 내 오늘 라이브하우스에서, Roselia의 베이시스트 씨랑 만났데이. 연주도 윽수로 잘하구, 무대 위에선 되게 멋있었다."
"아아, 그 밴드 말이군. 어중이떠중이들 사이에서 보기 드물게 고집 있는 음악성을 추구하는 자들이지. 눈여겨보고 있다면 배운 점은 있었느냐?"
"으응... 베이시스트 씨의 이름은 이마, 이마이, 이마쨩이데이. 그리고 빨간 베이스를 쓰고 쾅! 하는 게 멋있데이."
"농! 그런 것보다 연주의 기교나 선율 같은 데 집중하란 말이다."
"아, 글구 있제, 무대 위에서랑 무대 밑에서가 착착 구분이 되어가, 내도 그걸 좀 본받고 싶었다. 내는 무대 위에서도 실실 웃어서, 스승님은 격식 없다고 하니까."
"너도 아주 자각이 없는 건 아니었구나. 이제 같이 무대에 서도 부끄럽지 않겠군."
"응아아?! 스승님, 무대에 같이 서는 기가? 내 기쁘데이!"
"이대로 녹슬어갈 수는 없지 않느냐. 다음 리허설부터는 나도 참여할 것이다. 기다리도록. 적어도 제왕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대면해야 하지 않겠느냐."
"응후후, 스승님 의욕 넘치는 모습 보니까 내 진짜 기쁘데이. 기뻐가 기쁘다는 말밖에 몬 하는 바보 인형이 되었지만 그래도 기쁘데이!"
"무, 무뭐뭐, 뭐하는 것이냐, 그렇게 달라붙지 말거라! 균형을 잃을 것 같지 않은가! 정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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